[인터뷰]
[씨네 인터뷰] “한국형 범죄 누아르와는 다른 영화를 찍어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 <아수라> 김성수 감독
2016-09-29
글 : 이화정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강력계 형사 한도경(정우성)은 처절하게 파멸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본다. 이 모든 게 그를 개처럼 부리던 악덕 시장 박성배(황정민) 때문이었을까. 호형호제하던 후배 형사 문선모(주지훈)는 그를 버리고 박성배의 수하로 갔고, 자신의 약점을 쥔 독종 검사 김차인(곽도원)은 박성배를 잡겠다고 한도경의 숨통을 죄어온다. 폭력과 부패가 판을 치는 132분의 하드보일드 누아르. “<아수라>라는 버스에서 관객들이 내리지 않기를 바랐다”라고 말하는 김성수 감독은 이 지독한 소용돌이 안에서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 통증, 혼란을 관객에게도 똑같이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한다. 농담이 아니다. 이 지독한 ‘악취미’에 관객이 갑갑함을 호소한다고 해도 그는 애초 타협할 생각이 없는 듯 보인다. 끝까지 밀어붙인 그 생생한 풍경은 한국영화에서 한번도 보지 못한 생경함이자 <아수라>가 김성수 감독의 영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또 다른 성취임을 알려준다. 영화의 배경이 된 안남시의 전경을 촬영한 용산구 한남동 사나이픽처스 사무실에서 김성수 감독을 만났다.

-끝까지 내달리는 범죄 액션 누아르 영화를 만들었다. 쉽지 않은 전개다.

=그동안 형사영화, 액션영화 시나리오를 많이 받았는데 전혀 하고 싶지 않았다. 범죄 액션 누아르에서 악당의 하수인들을 보면 하나같이 답답하더라. 별다른 영광도 없이 두목에게 구박만 받다가 죽지 않나. 살아남기 위해서라지만 다들 너무 고단하고 힘겨운 캐릭터들이다. 그런데 나이 들어보니 알겠더라. 힘 없는 사람들은 어떤 줄에 서든 소모당하고 희생당한다. 나는 자기를 그렇게 내몬 주인을 무는 하수인을 그려보고 싶었다. 끝을 봐야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끝까지, 지옥까지 간 거다. 사나이픽처스의 한재덕 대표한테 이렇게 끝까지 가는 영화를 해도 되냐고 했더니 하라고 하더라. 그래서 신나게 했다. (웃음)

-해소할 지점을 주지 않고 갑갑한 채로 끝맺는다. 이렇게까지 징글징글하게 피로감을 밀어붙인 이유가 뭔가.

=시나리오를 보고 황병국 감독이 그러더라. 이대로 갈 거냐고.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반응이었다. 이 시나리오를 보고 누구를 따라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내가 생각한 게 그거였다. <아수라>는 신과 신의 인과관계가 없기를 바랐다. 범죄영화를 보면 언제나 앞 신은 다음 신의 방아쇠, 그리고 총알이 돼서 이어진다. 그렇지만 <아수라>에서는 상황이나 사건이 다른 범죄영화에서처럼 아귀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물론 그게 맞으면 재미는 있겠지만 리얼리티는 없다고 생각한다. 서사 구조나 캐릭터들이 패턴화되는 데서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좀 안 좋은 버릇이 있는데, <비트>(1997)나 <태양은 없다>(1999), <무사>(2001) 때도 그랬지만, 너무 짜여서 전개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소위 말하는 ‘한국형 범죄 누아르’와는 다른 영화를 찍어보자, 막연하게 그런 생각에서 출발했다.

-악을 상정하되 그 악을 처단할 때 오는 쾌감이 제거되어 있다. 그 지점이 최근 한국형 누아르의 전개 방식과 가장 큰 차이로 다가오기도 한다.

=처단할 수 있으면 악이 아니다. 사람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선한 논리나 환경으로 가면 사람들은 선한 척하고 살아가고, 그 사회 시스템이 경쟁하고 악한 구조라면 또 그 생활을 따라 살아가게 된다. 각자 처한 환경이나 구조에 맞춰 생존 방식을 택할 뿐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사람들이 가진 선악 개념은 희미하다. 오늘 악을 행하면 그다음날은 좀 착하게 살려고 하지 않나. 그렇게 모두들 선과 악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산다.

-개발을 둘러싼 각종 이권이 개입하고, 마약이 거래되는 영화 속 안남시는 악인들이 판을 치는 도시다. 흡사 멕시코 갱단을 연상하게 하는 설정이다. 리얼함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악이 지배하는 판타지적인 속성도 강하다.

=영화 속 안남시를 <배트맨> 시리즈의 ‘고담시’처럼 만들고 싶었다. 그 도시를 지배하는 사람과 견제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게 모두가 악인인 세상에서는 평범한 사람들도 그들에게 빌붙어서, 그 ‘유통구조’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완전히 <씬 시티>처럼 그리면 리얼하지 않아 보일 것 같더라. 그래서 19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 저개발의 열병을 앓던 변두리 도시였던 성남이나 안양 같은 지역을 상정했다. 한국은 여전히 장관을 임명하고 있는 국가다. 지배자들은 투기세력과 결탁해 부를 축적해온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그 지배 아래 낙후되고 어둡고 부패한 도시에 도시 빈민이 존재하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한도경은 악의 생태계 안에서 말단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 악의 틈새에 끼어서 한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사람이다. 몸부림칠수록 더 옥죄어드는 거다. 그가 처한 딜레마를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나의 보호자이자 파트롱(후원자)이었던 사람에게서 결국 보호받지 못하는 걸 알게 되면서, 그를 물게 되었으면 했다.

-극 전반부에는 부감으로 낙후된 공간을 조망한다. 부패한 뒷골목은 마치 홍콩 누아르의 배경이 연상된다.

=실제 그런 곳을 찾다가 사나이픽처스 옥상을 가보니 딱 어울리더라. 한남동을 바탕으로 찍되 분위기를 더 내기 위해 다른 곳들을 찍어와서 합성했다. 특히 오승욱 감독의 <무뢰한>에 나온 그런 분위기를 좋아하는데, 같은 제작사 작품이다 보니 그 작품을 준비할때 모아둔 데이터가 꽤 많았다. 그중에서도 40년 넘은 공간만 골라냈다. 우리가 보여주고자 하는 공간은 세월이 곧 미술이 되는 공간이었다. 그런 곳만 찾아서 찍고, 세트에도 그 흔적이 묻어나는 물건들을 채웠다.

-넓게 조망된 안남시의 풍경을 제외하고는 영화 대부분이 패쇄적으로 한정된 숏들로 구성된다. 한도경을 중심으로 경찰 한도경과 시장 박성배, 박성배와 검사 김차인, 또 한도경과 호형호제하던 후배 형사 문선모 등 캐릭터간의 맞대결로 사건이 좁혀지는데 그 역학관계가 공간으로도 구현된다.

=넓은 설정숏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외부가 보이지 않도록 설계했다. 거의 등장하지 않는 창문들도 더러워서 밖이 잘 안 보이거나 닫혀 있다. 특히 중반의 카액션 장면 이후에는 그런 장치가 한층 심화된다. 폐소공포증이 느껴질 정도로 사람들을 가두고 싶어서 카메라를 조금씩 인물에게 다가가게 했다. 장례식장 장면에서 여러 명이 등장할 때만 다중숏을 쓰고, 나머지는 망원렌즈를 점차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사람에게만 집중했다. 인물과 인물 사이에 개입되는 것 없이 찍었다. 스토리나 사건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인물들의 관계,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의 느낌을 확실히 보여주고 싶었다. 관계가 더 가까워지기도 하고 서로 비틀어지기도 하고 속이기도 하고 역전되는 그런 관계 말이다. 배우 윤지혜씨는 여러 번 와서, 이 현장에 있기가 힘들다고 토로하더라. 스탭들도 갇혀 있는 것 같다고, 잠을 자도 악몽을 꾸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어둠의 세계에 완전히 갇혀서 나오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캐릭터들이 경험하는 분위기가 현장에서 만들어진 거다. 그런 느낌이 좋더라. 관객에게도 마찬가지다. 눈 돌리지 못하게, 장기판만 보게 하고 싶었다. 지금 영화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아수라>의 인물들이 겪는 생생함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폭력적인 장면들의 수위를 작정하고 끝까지 밀어붙이면서 오는 효과도 크다.

=사실 보통 한국 액션영화에 비해 강도가 세지는 않다. 한국영화에서 이미 무수히 반복된 액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같은 상황에서 제일 피해야 하는 앵글을 일부러 택해서 의도적으로 세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예를 들어 초반에 한도경이 작대기 (김원해)를 때리는 장면을 보면 대개 이럴 경우 뒤에서 앵글을 잡고 관객도 그런 장면을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우리는 맞는 사람 앞에서 차는 사람을 잡는다. 이렇게 우리가 관습적으로 보던 묘사방식이나 편집의 포인트를 피해 찍으니 관객이 그 장면에 불편함을 느끼고, 충격적으로 받아들인다. 주인공이 폭력과 권력의 사슬 안에서 옥죄어지다 괴멸하는 영화라 폭력의 생생함과 통렬함이 느껴져야 한다고 봤다. 어느 하나 쉽게 넘어가질 않길 바랐다. 비주얼뿐만 아니라 맞을 때 사운드도 낯선 느낌을 주려고 애썼다. 사운드를 연출할 때도 녹음실에서 사람들이 싫다고 고개를 돌리는 소리를 듣고, ‘이거다!’ 하고 썼다.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에 이은 정우성과의 협업에서 볼 때 <아수라>는 청년의 순수한 열망과 희망이 제거된 중년 남성이 겪는 살풍경으로도 비쳐진다.

=샘 페킨파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작품을 좋아하는 건 그들의 영화 속 인물들의 행동이 그럴듯해서다. 내 마음이 그렇고, 그런 영향권 안에 있고, 그게 내가 가진 세계관이고 싶은 거다. 다들 좋은 말을 하지만 실생활에서 보면 제대로 된 도덕관념이나 윤리적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 없다고 본다. 나는 지금 이 사회가 가진 문제들에 있어서, 특히 남자들이 문제라고 본다. 여전히 유신 잔당들이 판을 치고 있고, 그들은 하나같이 남자들이다. 그리고 그 남자들이 말하는 의리, 충성 같은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남자들을 가지고 이야기해야 했다.

-이모개 감독의 촬영은 이 영화의 스타일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일등공신이다.

=준비하면서 사무실에 필름누아르의 고전 작품들 스틸 컷을 일렬로 창문에 붙여놓았다. 그러다가 실제 범죄 현장이나 암흑가, 정치인들을 찍은 르포사진들을 모아두었다. 그 사진들을 보다보니 영화 스틸들은 오히려 너무 많이 본 식상한 장면처럼 보여 다 떼버렸다. 이모개 촬영감독에게 그 르포사진들을 보여줬더니 영화를 어떻게 찍어야 할지 감이 온다고 하더라. 멋있게 찍는 게 아니라 진짜 날것같이 찍자는 마음으로 접근했다. 영화를 배울 때 모든 걸 빛과 어둠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배웠다. 필름누아르의 고전적인 방식을 현대적으로 차용하고 싶었다. 완전한 어둠과 광원이 같이 존재하도록 했다. 인물들이 움직이는 운동감과 구도감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인물들을 보면 언제나 움직이고 있다. 그들이 움직이면서 화면 안에서 빛과 어둠이 달라지게 디자인했다. 황정민과 곽도원은 연극 무대에 많이 섰던 사람들이라 정말 잘했고, 다른 배우들도 이렇게 고전적으로 세팅된 조명을 너무 재밌어했다. 촬영감독과 조명감독의 공이 컸다.

-한도경이 필리핀 조직과 맞붙는 빗속의 카체이스 장면은 이 영화를 대표하는 액션 장면이다. 비오는 밤, 차의 속도전, 몽환적인 빛이 주는 효과가 강렬했다.

=<아수라>의 카체이스 장면은 누구를 쫓아가는 게 아니라 한도경의 스트레스가 극대화되는 장면, 그 내면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한도경으로서는 지금까지 자신이 견지하고 있던 균형이 무너지면서 곤경에 처한 거다. 그 혼란을 보여주고 싶어서 비오는 카체이스 장면을 넣자고 했다. 워낙 위험한 촬영이라 해외에서도 몇 카트만 비를 뿌리고 나중에 CG를 입히는데, 내가 그걸 하자고 한 거다. 허명행 무술감독이 처음에 듣더니 아니나 다를까 미쳤다며 안 된다고 하더니 다음날 결국 하자고 하더라. 아, 진짜 후회했다. 일단 그렇게 시작은 했으니 끝까지 가야 했는데 돈과 물량과 시간, 위험도로 볼 때 너무 힘들었다. 물론 그렇게 해서 90퍼센트 만족하는 장면이 나올 수 있었다.

-전작 <감기>(2013)는 흥행에 고배를 마셨다. 3년 만에 연출한 <아수라>는 그 ‘실패’ 이후에 다시 매진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도전 지점이 있었을 것 같다.

=<감기>는 오랜만에 찍은 작품(<감기> 이전작 <영어완전정복>은 2003년에 연출했다)이라 흥행감독으로 다시 영화계에 귀환하고 싶은 욕심이 컸다. 그래서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수용하면서 찍었는데 흥행 논리로 간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더라. 나이를 먹고 보니 그런 접근으로 영화를 하는 건 더더욱 아니라는 생각이 커졌다. 내가 재밌고, 신나고, 창피하지 않은 영화를 찍고 싶었다. 설령 그 계산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내가 고민하고 생각한 문체나 화법으로 사람들에게 “내가 만든 영화인데 이거 한번 보세요” 하고 싶었다. 그게 형편없다면 더이상 할 필요가 없는 거고, 재밌다면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아수라>는 감독으로서 내 존재 이유이자, 내가 활동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내게는 일종의 씻김굿 역할을 해주었다. 하고 싶은 걸 다 했으니 개인적인 만족도는 높다. 이제 관객과 만나게 됐으니 자연스럽게 나는 이 영화와 작별을 하게 될 거다. 가진 걸 모두 쏟은 뒤라 지금은 몸에 힘이 빠졌다. 이 영화에서 빠져나오면 다음 영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객관적으로 보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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