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죽여주는 여자>
2016-10-05
글 : 김성훈
<죽여주는 여자>

소영(윤여정)은 ‘박카스 할머니’다. 종로에서 할아버지들을 상대로 자양강장제와 몸을 팔며 하루를 살아간다. 노인들 사이에서 죽여주는 솜씨로 명성이 자자하고, 경쟁자들 사이에서 손님을 독차지한다고 온갖 시샘을 한몸에 받는 그녀다. 일진이 사나웠는지 성병에 걸린 그녀는 병원을 찾는다. 그곳에서 한 필리핀 여자가 5년 동안 연락을 끊고 자신과 아들 민호(최현준)를 피한 의사를 홧김에 가위로 찌르는 광경을 목격한다. 소영은 사건 현장에서 도망쳐 나온 민호를 찾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온다. 소영의 집은 트랜스젠더인 집주인 티나(안아주), 한쪽 다리가 불구인 성인 피겨 작가 도훈(윤계상) 등 친절한 이웃들이 모여 살고 있다. 경찰의 박카스 단속 바람이 거세지면서 소영은 영업하기가 만만치 않다. 어느 날, 그녀는 한때 자신의 단골 손님이었던 송 노인(전무송)을 우연히 만나고, 그에게서 단골 손님이었던 한 노인이 풍에 걸려 병상에 누워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듣는다. 그래서 병문안을 갔다가 그 노인으로부터 자신을 죽여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폐품과 병 줍는 일을 제외하면 65살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대한민국에서 소영은 노인들에게 성적 서비스를 제공해 노인들이 아직도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일을 한다. 거동이 불편하고 기억력도 잃게 돼 삶이 더이상 무의미하고, 혼자 외롭게 살아갈 자신이 없는, 그러니까 죽음과 가까운 곳에 다다른 노인들이 그런 그녀에게 삶을 진짜 끝내게 해달라고 제안하는 상황이 무척 아이러니하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상황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삶을 더이상 지속시킬 수 없는 노인들의 처지를 연민하고, 그들의 부탁 때문에 갈등하는 윤여정의 깊은 표정에 결국 설득되고야 만다. 죽음과 다름없는 삶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노인들과 그런 그들에게 짧은 순간만이라도 삶의 쾌락을 선사하는 소영을 통해 영화는 “어떻게하면 잘 죽을 수 있는지”라는 질문을 던지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지금은 100살 시대라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가 되려면 갈 길이 한참 먼 한국에서 100살까지 살아가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해 보인다. 이재용 감독의 신작으로 제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 초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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