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과 함께 작업한 사람들의 공통된 발언은 그가 욕심 많고 치열하게 준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준의 대답이 의외다. “승부욕? 없다. 욕심? 적당한 편이다. 내가 독종이란 얘기? 글쎄 난 잘 모르겠다.” 오히려 본인은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라면서 “카메라 울렁증” 얘기까지 꺼낸다. “자신감이 많이 부족해서 카메라 앞에서 곧잘 얼어버린다. 유해진 선배님을 보면서 그런 자신감이 부러웠다. 드라마에 함께 출연 중인 최지우 선배님과도 그런 얘기를 나눈 적 있다. ‘모든 사람이 널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짜릿하지 않니?’라고 물으시기에 ‘아니요, 전 부담스럽습니다’ 하고 답했다. (웃음) 내면에서 나오는 자신감을 나도 갖고 싶다.” 이준은 엄격하게 스스로를 단련해온 사람 특유의 겸손함이 몸에 밴 사람 같았다.
나약하고 우유부단하고 대책 없고 무모한 <럭키>의 재성은 짐작 가능하듯 이준과는 정반대되는 성정의 캐릭터다. 인기도, 돈도, 의욕도 없어 급기야 죽기로 결심한 무명배우 재성은 목욕재계 후 다시 ‘거사’를 치를 결심을 한다. 그런데 목욕탕에서 마주친 돈 많아 보이는 형욱이 기절하자 ‘죽기 전에 딱 하루만 멋있게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목욕탕 옷장 열쇠를 바꿔치기한다. 하지만 형욱의 펜트하우스에 발을 들이는 순간, 하루는 이틀이 되고 이틀은 일주일이 된다. 자신과는 도무지 교집합을 찾아볼 수 없는 막막한 캐릭터를 이준이 자처해서 떠안은 이유는 “형욱 캐릭터가 너무 웃겨서”란다. “보통은 내 캐릭터를 우선해서 보지만 이 영화는 그러지 않았다. 영화 자체가 유쾌하고 재밌었다. 형욱이 처한 코믹한 상황이 잘 살 수 있도록 연결고리 역할을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극 전체가 살 수 있으니까.” 자신이 욕심내야 할 것은 분량이 아니라 “캐릭터의 진정성”이라는 것을 이준은 잘 돌파하기알고 있다. 어쭙잖은 눈속임으로는 캐릭터의 진정성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마찬가지.
그래서 재성의 첫 등장 신이 중요했다. 등장 신에서 재성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밧줄에 목을 매려 한다. 관객은 그것이 연출된 “쇼”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준으로선 ‘이 사람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런 결심을 했을까’ 하는 그간의 사정을 단번에 납득시켜야 했다. 그래서 손발톱을 길렀다. 머리는 사흘 정도 감지 않았다. 의욕상실자의 외형에 최대한 가까워지기 위한 선택이었다. “몸의 상태라든지 살결의 느낌 같은 게 제대로 표현되지 않으면 관객이 재성에게 몰입하지 못한 채 영화를 따라가게 될 것 같았다. 관객을 속일 수 있는 만큼 속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니 손톱, 발톱이 보이진 않더라. (웃음)” 보여주기 위한 준비가 아니었기에 섭섭함은 없었다. 불편하고 힘들고 티 나지 않아도 정공법으로 상황을 돌파해 나가면 “작품을 대하는 스스로의 마음가짐이 변한다”. 이준은 그 변화된 마음가짐이 어떻게든 작품에 드러날 것이라 믿는다. 그 정공법이 <럭키>에서도 통했음은 물론이다.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을 완전히 내려놓고 연기에만 전념한 지 3년. 이준은 서서히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닌자 어쌔신>(2009), <배우는 배우다>(2013) 같은 초기작에서 강렬한 카리스마를 내뿜었던 그는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2015), <럭키> 그리고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캐리어를 끄는 여자>에서처럼 눈에 힘 뺀 캐릭터도 훌륭히 소화하고 있다. 아이돌이라는 타이틀 뒤에 숨을 수 없어 연기에 대한 책임감이 더 커진 것은 아닐까 싶었지만 그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책임감의 무게에는 별 차이가 없다고 했다. 다만 예전과의 차이라면 요즘은 “어떻게든 ‘내 인생’을 살아보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라고. 스물아홉의 끝자락. 싱숭생숭한 마음을 안고 그는 다시 <캐리어를 끄는 여자>의 촬영장으로 향했다. 카메라가 돌아가면 또 무섭게 몰두할 것이다. 연기를 하고 있어 행복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