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전 집행위원장 1심 선고공판 현장을 가다
2016-11-02
글 : 이주현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검찰의 의견과 법원의 의견이 같아서 당혹스럽다. 변호사와 상의해 항소 절차를 밟겠다.”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전 집행위원장이 법정을 나서며 기자들에게 현재의 심경을 전했다.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합니다.”

지난 10월26일 오전 10시, 부산지방법원에서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전 집행위원장(이하 이용관 전 위원장)의 1심 선고공판이 이루어졌다. “결과를 일단 기다려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법정으로 들어선 이용관 전 위원장은 판결 이후 “예상치 못한 결과라 당혹스럽다.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용관 전 위원장의 변호를 맡은 강윤희 변호사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나왔다”며 법원의 판결에 아쉬움을 표했다. “우리는 무죄를 다퉜지만 유죄 판결이 나왔다. 피해액인 2750만원이 모두 회복된 사안이고, 사적으로 유용한 것이 아닌데도 집행유예가 나왔다. 이것이 과연 집행유예까지 받을 사안인가 의문이 든다.”

부산지방법원 355호 법정 복도에 붙은 공판안내장. ‘업무상 횡령’죄로 재판 중인 이용관 전 위원장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2014년 다큐멘터리 <다이빙벨>(감독 이상호, 안해룡) 상영으로 촉발된 일이 이렇게까지 번졌다. <다이빙벨> 상영을 취소하라는 부산시장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듬해 강도 높은 감사원 조사가 시작됐고, 부산시는 업무상 횡령 혐의로 이용관 전 위원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지난 5월, 부산국제영화제와 케이블 채널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려던 A업체에 협찬 중개수수료 2750만원을 편법 지급했다는 혐의로 이용관 전 위원장 등을 기소했다. 영화전문 상영채널 공동사업이 무산되자 A업체는 손실 보전을 수차례 요구했고, 영화제 측은 A업체가 협찬을 중개한 것처럼 서류를 편법으로 써서 중개수수료를 지급했다. 이 과정에서 이용관 전 위원장은 사후 보고를 받았고 손실 보전을 지시하거나 본인이 직접 결재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함께 기소된 양헌규 전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장이 독자적으로 집행한 일이라고 진술했음에도 불구하고 1심 재판부는 “이용관 전 위원장이 이 사실을 사전에 몰랐을 리 없고, 중개수수료 지급을 묵시적으로 승인하고 직접 결재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결론내렸다. 이날 선고공판에서 부산지법 윤희찬 부장판사는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가 A업체에 손실 보전을 해줄 아무런 이유가 없었음에도 2750만원을 지급해 조직위에 손해를 가했으며, 정상적인 지급으로 가장하기 위해 허위의 협찬 중개수수료를 지급하는 방법을 사용한 점이 인정된다. 이것은 단순 실수로 볼 수 없다”고 양형의 이유를 설명했다. 강윤희 변호사는 “명시적 승인이 아닌 묵시적 승인을 ‘공모’로 인정해 집행유예를 내린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한편 이용관 전 위원장과 함께 기소된 전양준 전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에게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강성호 전 사무국장에게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양헌규 전 사무국장에게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이 선고됐다.

배우 유지태(왼쪽)와 김의성(오른쪽 두 번째)이 공판 시작 전 이용관 전 위원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새벽 기차를 타고 한걸음에 부산까지 달려온 두 배우는 조용히 재판을 방청한 뒤 서울로 돌아갔다.

‘설마’가 ‘현실’이 된 상황에서, 이날 법정을 가득 메운 영화인들의 표정은 당혹스러움으로 일그러졌다. 부산지법 355호 법정은 이용관 전 위원장을 응원하러온 영화인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배우 김의성과 유지태는 오전 6시25분 KTX를 타고 부산에 왔다. “후배 영화인들이 이처럼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입을 모았다. ‘IINDEPENDENT FILM FESTIVAL for BUSAN’이라는 피켓을 들고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을 밟았던 김의성은 여러 방편으로 부산국제영화제의 독립성 및 자율성 보장에 힘을 실어준 영화인 중 한명이다. 유지태 역시 독립영화 후원 상영회를 꾸준히 열면서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 묵묵히 힘써온 배우다. 이용관 전 위원장은 두 배우가 참석할 줄 “전혀 몰랐다”면서 공판이 끝난 뒤 부산에 와준 영화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한국 사회의 참담한 현실이 영화계에 그대로 드러나다

낭희섭 독립영화협의회 대표는 선고공판 당일 현장에서 ‘이 땅의 양심과 상식을 지켜보는 영화인연대’ 이름으로 성명서를 돌렸다. “오늘의 참담한 사건은 단지 영화 한편(<다이빙벨>)의 상영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세월호로 드러난 한국 사회의 참담한 현실이 영화계에 그대로 드러난 것입니다. 영화인들이 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등에 대한 부당한 탄압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무죄를 주장하며 연대한 것은 이런 현실을 바로잡기 위함입니다. 오늘 법원의 결정과 무관하게 이용관 등은 무죄입니다”라고 이용관 전 위원장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표했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감독조합,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등 9개 단체로 구성된 영화단체연대회의도 이날 오후 성명서를 내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명예가 회복될 때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국제영화제 남동철, 박도신, 박진형 프로그래머를 비롯해 영화제 관계자들도 상당수 선고공판을 방청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1심 선고 결과에 대해 “영화제 사람들 모두 착잡한 마음이다. 부산국제영화제쪽에서도 힘을 보탤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 한다”고 말했다. 김의성, 유지태 두 배우와 동행한 정상진 엣나인필름 대표 역시 “항소심 재판비용 모금을 영화인들과 고민해볼 생각이다”고 했다. 한편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과 강수연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도쿄국제영화제 참석으로 이날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항소장은 이미 제출됐다. 강윤희 변호사는 항소심에서 “이용관 전 위원장이 직접 결재를 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집중적으로 입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르면 11월, 늦어도 12월에는 항소심 기일이 잡힐 것이라고 한다. 또다시 법정공방을 준비해야 하는 이용관 전 위원장은 “각오는 돼 있다”며 의지를 다졌다. 영화인들의 응원과 지지가 있으니 결코 외로운 싸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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