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커버스타] 희망이 있을 거라는 믿음 - <판도라> 김남길, 문정희
2016-12-06
글 : 이예지
사진 : 백종헌

지옥이 있다면 여기일까. 부패와 무능으로 재난을 초래한 정부는 국민 안전보다 국정 안정을 앞세우고, 컨트롤타워의 부재 속에서 국민들은 희생양이 된다. 현 시국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강진이 발생해 원자력발전소가 붕괴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 <판도라> 이야기다. 한국의 현주소를 그려낸 재난영화 <판도라>에 출연한 김남길과 문정희의 소회도 각별했다. “공감 가는 이야기였다. 컨트롤타워가 골든타임을 놓치면 자연재해도 인재가 되는데 하물며 지금은…. (웃음) 나뿐 아니라 모두가 같은 마음일 거다.” 김남길의 말에 문정희도 십분 동의한다. “국가적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다. 영화를 보고 많이 울었다. 세월호를 비롯한 여러 사고들에 미흡하게 대응했던 것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재난 속에서 끈끈한 가족애로 뭉친 그들은 각각 원자력발전소 직원 재혁과 그의 형수 정혜 역을 맡아 재난을 최전선에서 맞닥뜨린 시민이 됐다. 현실적인 성격의 재혁은 회사나 국가에 충성심이나 애착이 없는 인물이다. 일견 까칠해 보이지만 가족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구시렁거리면서도 결국 중요한 일은 다 떠맡기도 한다. 박정우 감독은 김남길에게서 이런 소시민적 히어로의 모습을 찾았다. “감독님이 나와 이야기를 나눠보더니 기존의 도회적이고 차가운 이미지 말고 동네 형 같은 모습을 보여주자고 하시더라. 재혁은 내 실제 모습과 닮았다. 청개구리처럼 반골 기질도 좀 있고. 투덜거리면서 다 해주는 스타일이다. (웃음)” 김남길은 분장도 거의 하지 않고, 무릎이 나온 본인의 추리닝을 입고 재혁이 됐다. 편한 모습으로 시작했지만 목숨 걸고 사투를 벌이는 인물인 만큼 역할의 무게감도 상당했을 터다. “몸이 힘든 건 괜찮았다. 하지만 후반부 사투를 벌이는 장면의 정서를 표현하는 건 무척 외롭고 힘들더라.” 배우로서 그가 느낀 고독과 괴로움은 배역에게도 진짜 감정이었다. “재혁은 세상을 구하려는 판타지 속 멋진 영웅이 아니다. 할리우드영화 속 영웅처럼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멋지게 돌아서는 게 아니라, 겁에 질려 소리도 지르고 엄마도 찾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이런 평범한 재혁이 어떻게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내가 안 나서면 가족들이 죽으니까. 세상을 구하는 영웅은 못되어도, 가족은 지켜야 하지 않겠나.”

남편을 사고로 떠나보내고 홀로 아들을 키우는 정혜 역시 가족을 사랑하는 인물이다. 싹싹한 며느리이자 형수, 아들바라기 엄마인 그는 “내 엄마일 수도 있고, 며느리일 수도 있고, 이웃일 수도 있는” 역할을 대변한다. “옆에 있는 이를 챙기고 같이 살아야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한편 그는 나라님 말이라면 곧이곧대로 믿는 시어머니와 갈등을 빚기도 한다. 문정희는 “정혜는 구시대적으로 생각지 않는 인물이다. 시어머니와의 대립을 통해 진보적인 세대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연가시>에서도 재난을 겪어본 그에겐 “배역이 비슷해 보이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없지 않았다. “이야기가 정말 좋았다. 영화가 좋아야 하는 게 첫 번째고, 그다음이 역할이니까. 훌륭한 배우들이 많이 나오지만 각기 비중은 그렇게 크지 않은데, 나중에 얘기해보니 다들 이런 마음에 십시일반 마음을 같이했더라.” 이 영화의 어떤 점이 그의 마음을 그토록 끈 걸까. “박정우 감독은 늘 깨어 있고, 사회와의 끈을 놓지 않으려 노력하는 감독이다. 영화는 응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의 통렬함도 좋았지만 따듯함도 좋았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을 때 그 안엔 역경과 고난도 있지만 희망도 있다. 어려움을 겪어도 희망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 시각이 좋더라.”

현 시국과 닮아 있는 시의적절한 영화지만 <판도라>가 만들어지기까진 4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처음엔 개봉한다는 사실만으로 좋았다. 하지만 지금 시국이 난리가 나면서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게 영화인지 모를 상황이 됐는데, 이런 때엔 사실 연예뉴스보다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관객이 영화를 볼 때가 아니라 시국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한다면 그것 또한 좋은 일이다.” 김남길의 사려 깊은 말에 문정희가 덧붙인다. “문화예술은 보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정화 작용이 있잖나. 영화에서 시국에 대한 카타르시스와 함께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절망 속에서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애일 테니까.”

김남길 스타일리스트 황혜정(by intrend)·헤어 kei(미장원by태현)·메이크업 하나(미장원by태현)·의상협찬 비비안 웨스트우드, 더 캐시미어, 카날리, 지미추 / 문정희 스타일리스트 김영주·헤어 차진(파인트리)·메이크업 강연진(파인트리)·의상협찬 토리버치, 에스까다, 에트로컬렉션, 다니엘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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