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보고]
[현지보고] <아가씨> 류성희 미술감독 벌컨상 수상
2016-12-09
글 : 김나희 (클래식음악평론가)
벌컨상을 수상한 류성희 미술감독.

지난 1080호에 <아가씨>와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12세 관람가 등급에 대한 글(포커스 ‘프랑스 공화국, 프랑스 국민의 이름으로’)을 보내왔던 김나희 평론가가 프랑스 파리에서 있었던 류성희 미술감독의 벌컨상 시상식을 다녀왔다. 칸국제영화제에서 선정되는 벌컨상은 현재 세계영화계에서 영화 기술부문에 대한 가장 중요한 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심사를 맡았던 프랑스영화기술인조합(CST)의 피에르 윌리엄 글렌 회장은 “보통 심사위원들간에 이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우리는 <아가씨>를 보고 만장일치로 수상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남과 여>(1966)로 익히 알려진 클로드 를르슈 감독이 시상자로 나섰던 현장 소식을 전한다. <아가씨>는 최근 LA비평가협회 올해의 외국어영화상, 미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 금요일인 12월2일, 파리 시내 고블랭가에 위치한 영화관 시네마 레 포벳(Cinema les Fauvettes)에서 벌컨상 시상식이 열렸다. 프랑스영화기술인조합에서 예년과 같이 11월에 진행하려던 시상식이었으나 올해는 수상자인 <아가씨>의 류성희 미술감독의 빠듯한 일정에 맞춰 12월 초로 날짜를 조금 옮겨 열린 행사였다.

극장 앞은 연륜이 엿보이는 나이 지긋한 이들부터 앳된 얼굴의 영화 종사자들까지 다양한 사람들로 일찌감치 북적였다. 1951년에 그 역사가 시작된 이 상이 처음 제정되었을 때에는 “그랑프리 테크닉”(Grand Prix Technique)이라는 이름으로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에서 영화 기술부문에 대한 가장 중요한 상으로 기능해왔으며, 2001년까지 존재했다가 사라졌다. 2003년, 벌컨상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부활해 칸영화제의 일환으로 운영되며 수상작 발표는 칸영화제 기간 동안 진행된다. 다만 프랑스영화기술인조합이 독자적으로 현직 테크니션들로 구성된 자체 심사위원단을 구성해 가장 뛰어난 기술적 성취를 이룬 하나의 작품을 선정하며, 이후 파리에서 단독 시상식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예술감독(미술감독)의 존재로 인해 가능했던”

올해 수상한 <아가씨>는 심사위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동의한 결과였으며, 류성희 미술감독에게 상을 수여하는 수상자로는 <남과 여>로 한국 팬들에게도 익숙한 영화감독 클로드 를르슈가 나섰다. 프랑스영화기술인조합의 회장을 맡은 피에르 윌리엄 글렌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시상식을 진행했다. 스크립터, 촬영감독, 제작자, 편집자, 음향감독, 영화감독 등으로 구성된 7명의 심사위원단이 소개되었고 이어서 클로드 를르슈 감독이 직접 류성희 감독에게 상패를 전달했다.

피에르 윌리엄 글렌은 마이크를 잡고 “우리는 한국영화를 21세기 들어서야 발견했지만 놀라운 성장을 거듭해 매년 100편 넘는 영화가 제작되고 있으며 세계영화계에서 그 입지를 점차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올해의 수상작인 <아가씨>를 통해 이렇게 주목해야 할 한국영화계에서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얼마나 고무적인가. 앞으로의 한국영화가 더욱 기대된다”며 시상식의 문을 열었다. 바쁜 일정에도 시상자로 참석한 클로드 를르슈 감독 역시 소감을 밝혔다. “흔히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라고들 말한다. 아니면 시나리오작가 혹은 배우들을 말한다. 그들이 마치 이 장르를 장악하거나 소유한 예술가들인 것처럼 이야기되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영화인들은 눈앞에 존재하는 것 이상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영화의 현장을 구성하는 테크니션들로 인해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며 감독의 창의성은 현실로 구현될 수 있다. 어떤 지점에서 영화를 바라보든, 이 예술은 개별적인 기술들이 집약적으로 결합해 완성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오늘 이렇게 놀라운 영화를 우리에게 가져다준 류성희 감독에게 상을 직접 줄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쁘다. 한국을 정말 좋아하는데 한국영화가 가진 에너지와 내가 그곳에서 경험한 따뜻한 환대를 잊지 못할 것이다. 오늘 자리한 류성희 감독은, 예술감독(미술감독)의 존재로 인해 이렇게 훌륭한 예술적 성취를 이룬 영화가 완성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다.”

상패를 수여된 후 소감을 묻자 류성희 감독은 “어린 시절 클로드 를르슈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서 공부하고 영감을 받았는데 이렇게 직접 그에게 상을 받게 되다니 너무 떨린다”며 설렘을 감추지 않았다. “(홍익대 도예과)학생일 때부터 영화를 꿈꿨지만 당시는 독재정권 시절이었던 터라 검열이 심해 영화를 공부한다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원하는 대로 마음껏 영화를 볼 수도 없었고, 어딘가에서 체계적으로 영화미술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지 않았다. 스스로 칸영화제 수상작 위주로 영화를 하나씩 찾아보면서 꿈을 키웠다. 프랑스 문화원에서 틀어주는 프랑스영화들이 내가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이 기억으로 앞으로 더욱 열심히 영화를 만들겠다.” 통역을 통해 전해지는 류 감독의 소감에 홀을 메운 사람들은 따뜻한 박수를 보냈다.

<아가씨> 상영을 앞두고 다시 마이크를 잡은 피에르 윌리엄 글렌은 “감독의 창의성이 제약 없이 발휘될 수 있도록 하는 근본적인 시작점은 영화적인 기술이며,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는 이 영화를 겨우 세번밖에 보지 않았고 그 덕분에 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걸작 <아가씨>는 여전히 질리지 않는 작품이라 언제든 다시 보고 싶다. 여러분이 <아가씨>를 이미 관람했든 아니든, 우리가 영화로 상상할 수 있는 ‘완벽’이라는 개념을 형상화할 수 있다면 그 지점에 도달하는 데 가뿐하게 성공했으며, 그것을 과시하거나 일부러 드러내지도 않고 오로지 영화적 서사, 내러티브를 전달하기 위해 기술적 성취가 사용되고 있어서 이 영화는 더욱 빛난다. 최신의 진보적 기술과 감독 내면의 창의성이 상호보완적으로 결합하면서 완성된 예술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아가씨>를 보면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평을 덧붙였다.

영화가 끝나고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는 상영관을 가득 채운 현직 테크니션들의 날카롭고 현실적인 질문들이 쏟아졌다. 제한된 시간 안에 류성희 감독도 모두 답하기에는 까다롭다고 할 정도로 영화를 업으로 삼은 이들만이 할 수 있는 전문성이 돋보이는 질문들이었다. “이런 미장센과 카메라 무브가 대체 어떻게 가능했나. 카메라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은데 그 모든 걸 고려해 세트를 구성했나”, “프랑스영화계에는 예술감독(미술감독)이 존재하지 않는다. 박찬욱이라는 감독과 어떤 방식으로 일을 했나” 등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만장일치로 수상 결정

시네아스트의 존재와 그 영향력이 대단한 프랑스영화계에서는 감독이라는 존재를 푸르트벵글러나 첼리비다케, 카라얀 등 절대적 카리스마로 무장한 20세기의 악명 높은 지휘자들에 비하기도 한다. 마치 신처럼 자신의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와 디테일들을 하나하나 결정하는 위치에 놓인 감독 대신, 한국영화계에서 그동안 국제적 명성을 얻고 이름을 널리 알린 박찬욱, 김지운, 봉준호 등의 감독들과 함께해온 류성희 감독의 성취에 대해 질문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류성희 감독은 “나 역시 미술감독이라는 자리가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에 영화계에 발을 디뎠고 나지 않은 길을 직접 내듯 일을 시작해 여기까지 왔으며, 상업적 성공이 중시되는 한국영화계에서 작가주의적 색채를 지닌 감독들을 만났으니 운이 좋았다”고 답했다.

이어진 칵테일 파티에서 심사위원들을 만나 더 자세한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50년 넘게 스크립터로 일해왔다는 클로딘 톨레르는 프랑스영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누벨바그’로 대표되는 작가주의적 영화들과 평론가들 집단인 ‘카이에 뒤 시네마’ 만 떠올린다며 그건 그저 한면만을 알고 지나가는 것이라며 방점을 찍었다. “지난 50년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한 시대가 완전히 바뀌었다. 반 세기 동안 현장에서 스크립터로 일하면서, 유망주에서 스타가 된 감독, 그리고 명성을 잃고 초라해지거나 더이상 영화를 찍지 못하게 된 감독들을 다 겪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은 폭력적인 부분이 있었고 모두가 다 쉽게 적응한 건 아니었다. 예술가들의 창의성이 언제나 진보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그동안 기술적으로 영화가 꾸준히 진보해왔다는 사실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보통 심사위원들간에 이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올해 칸영화제에서 우리는 <아가씨>를 보고 만장일치로 수상을 결정했다.” 피에르 윌리엄 글렌은 “지난 10월 리옹 뤼미에르 페스티벌에서 박찬욱의 전작들을 보았다. 그가 폭력이라는 요소를 우아하고도 서정적으로, 숭고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놀랍다. 얼핏 불가능한 영화적 도전 같기도 하지만, 류성희 같은 뛰어난 재능의 미술감독 덕분에 이 불가능할 것 같은 서정적인 폭력이 그의 영화에서 가능해졌다”며 류성희 감독에 대한 찬사를 다시 한번 덧붙였다.

사진 알랭 퀴르블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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