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커버스타] 더 대담하게 - <마스터> 이병헌
2016-12-20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 없는 남자. <마스터>의 진현필에 대한 이병헌의 첫인상이었다. “나쁜 짓을 하는 악당들에겐 보통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과거의 전력이나 배경이 있다. 그런데 진현필은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악역이더라.” 그의 말대로 범죄사기집단 원네트워크의 회장 진현필은 명분 있고 과거 있는, 사연 많은 악당들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그를 움직이는 건 오로지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싶은 순수한 욕망이다. “처음부터 나쁜 생각으로 기업을 일으킨 사람이다. 이렇게 연민도 이해도 되지 않는 인물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박창이 이후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는 악당에게 자기만의 논리를 부여하는 것. 이는 <마스터>에 참여하는 순간부터 조의석 감독과 함께 가장 고심한 문제였다고 이병헌은 말한다. 그리고 그들의 고민은, 영화 속 진현필의 대사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얘기는 이미 20세기에 끝났어. 평생을 고생해도 흙수저 인생인 인간들. 달콤한 꿈이라도 꾸게 해주고 싶을 뿐.”

자신의 말을 듣기 위해 모여든 수많은 관객 앞에서 ‘달콤한 꿈’을 약속하는 진현필의 연설 장면은 단연 <마스터>의 백미다. 가슴에 커다란 꽃을 달고, 악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다정한 목소리로 관객에게 꿈과 희망을 얘기하는 이 악당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이단 종교 단체의 교주를 모티브로 삼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실제로 사기꾼들이 연설을 하는 다양한 영상을 봤다. 특히 사이비 교주들이 나온 영상을 봤는데, 내가 믿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이질감이 느껴지더라. 결국은 영화적으로 표현하는 쪽을 선택했다.” 이병헌이 연기하는 진 회장은 무대 위에서 아는 형, 옆집 아저씨, 소박한 친구 같은 모습이다. 결국 사기의 핵심은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자연스럽게 침투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그가 내렸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3조원 규모의 대국민 사기극에 성공한 뒤 필리핀으로 도주한 진현필의 모습은 진짜 악당에 가깝다. “보통의 사기꾼 같았으면 본인의 신변보호에만 신경쓰고 도망다니는 데 급급했겠지만 이 친구는 더 큰 사기극을 꿈꾼다. 좀더 과감하고, 대담해졌다고 해야 할까.” 흰색 커트 머리와 수염, 화려한 의상은 적정선을 넘어버린 악당의 변화를 표현하기 위한 고민의 결과였다고 그는 말한다.

한편 이병헌에게 <마스터>는 동시대 가장 주목할 만한 행보를 걷고 있는 두 후배 배우와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갖는 작품이다. “각자의 나이대에서 독보적일만큼 좋은 배우들이기에 함께 출연하는 게 기대되면서도, 평소 잘 알던 친구들이 아니었기에 어떤 조합을 이룰지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았”던 마음은 고사날 첫 리딩을 하는 자리에서 확신으로 바뀌었다. “우빈이는 시나리오를 한 100번 읽고 오는 애 같았다. 정말 많은 준비가 되어 있고, 어떤 장면에서 자신이 해야 할 몫을 정확히 인지하면서도 그 안에서 정말 신나게 노는 느낌이었다. 동원씨는 액션을 정말 잘하더라. 필리핀의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액션을 준비한다고 스탭들과 쉬지 않고 권투 연습을 하는 모습에 놀랐다.”

이병헌에게 2016년은 풍성한 결실의 해로 기억될 듯하다. <미스컨덕트>와 <밀정>, <매그니피센트 7>과 <마스터>에 이르기까지 할리우드와 충무로 영화 현장을 오가며 작업했던 수많은 작품을 관객에게 선보이는 동시에 <내부자들>(2015)로 청룡영화상 등 각종 시상식의 러브콜을 한몸에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만큼 턱시도를 많이 입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기쁘고 고마운 일이지만 가끔은 모든 걸 내려놓고서 내가 했던 작업들을 되돌아봐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남한산성> 촬영으로 당분간 바쁘겠지만, 2017년에는 꼭 정리의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축하는 즐기되 안주하지 않겠다는 자세. 2016년의 끝자락에 선 이 톱스타의 균형감각은 여전하다.

스타일리스트 박만현 이사, 김미현 실장 / 헤어 임정호 원장 / 메이크업 김정남 원장 / 의상협찬 MARK RONSON, ROAD AND TAILOR, CARMINA by UNIPAIR, LOAKE, ALL SAI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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