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발과 선글라스를 벗어던지고 헐레벌떡 범인을 쫓는 품새를 보니 어째 좀 어설프다. 온몸에 힘이 들어간 북쪽 형사 철령(현빈)과 달리 어떤 사명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숨겨둔 필살기는커녕 제 한몸 간수하기조차 어려워 보이는데, 대체 무슨 실력으로 남북 공조수사의 남쪽 대표로 선택받았는지 알 길이 없다. 유해진이 연기한 진태는 위장수사 실패 때문에 정직 처분을 받고 있다가 철령의 공조수사 파트너로 낙점된 남한 형사다. 진태의 임무는 공조수사를 하면서 북한의 또 다른 속내가 있는지 철령을 감시하는 것이다. “아주 평범한 15년차 형사다. 집에 가면 딸과 아내에게 꼼짝하지 못하는 가장이고. 매일 어렵고 힘들게 살다가 남북 공조수사라는 생소하고 큰일이 닥친 거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유해진이 공조수사에 참여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전작 <극비수사>(감독 곽경택, 2015)에서 형사 공길용(김윤석)과 짝을 이뤄 실종된 아이를 찾아낸 적이 있다. 물론 그 영화에서 그는 형사가 아닌 도사였다. 이 얘기를 듣던 유해진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극비수사>의 공조수사가 정적이라면 <공조>의 그것은 동적”이라고 말한다. <극비수사>가 시종일관 진중한 이야기였다면 <공조>는 액션이 많은 버디무비이고, 도사와 형사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으로 한 얘기인 듯하다. 또 형사는 한국영화에서 가장 흔한 직업 중 하나이지만 유해진이 형사를 연기한 건 <광복절 특사>(감독 김상진, 2002)의 ‘짭새’ 이후 거의 15년 만이다. “연기 생활을 하는 동안 형사 역할이 들어온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가 <공조>에 출연하기로 한 건 “버디무비라는 장르 때문도, 형사라는 직업 때문도 아니”다. “북에서 내려온 특수한 사람인 철령과 말로만 특수 형사인, 남쪽의 평범한 진태가 만나는 상황이 어떻게 그려질까 궁금했다. 그러면서 한핏줄인 둘 사이에 끈끈한 정이 생기는 게 좋았다.” 10년 전이라면 몰라도 남북 공조가 완전히 무너진 시대에서 남과 북이 함께 수사를 한다는 설정이 누구에게나 신선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건 사실이다.
자신의 속내를 감춘 채 다른 사람의 속내를 알아차려야 하는 설정인 만큼 철령과 가까워져서도, 멀어져서도 안 되는 게 관건이다. 그러면서 시종일관 티격태격해야 하는 버디무비의 맛도 살려야 하고, 남과 북이라는 다른 환경 때문에 발생하는 블랙코미디도 신경 써야 하는 이야기다. 촬영현장에서 유해진은 “현빈, 김성훈 감독과 계속 대화를 나누며 만들어가야” 했다. “그렇다고 촬영이 끝난 뒤 남자 셋이서 술을 많이 마시진 못했다. 감독님은 술을 잘 못 드시고, 매일 큰 액션 신이 많으니 다칠 위험이 크잖나. 나 말고 현빈씨가. (웃음) ‘혼술’은 많이 했다.”
유해진에게 2016년은 “보너스를 많이 받은 해”였다. ‘원톱’으로 출연한 코미디영화 <럭키>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작품이 개봉할 때마다 ‘제발 손익분기점만 넘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원이 있다. <럭키>가 이렇게까지 성공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어렸을 때 이렇게 흥행에 성공하면 한없이 좋아하기만 했을 텐데, 지금은 흥행해서 좋으면서도 앞으로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더라.” 그의 다음 작품은 장훈 감독의 신작 <택시운전사>다. 유해진이 맡은 역할은 1980년 광주에 사는 택시운전사다. “크지 않은 평범한 역할인데 이 영화에 출연한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시나리오가 좋았고, 또 하나는 송강호 선배와 함께할 수 있다는 거였다.” 평범한 남자가 역사적 소용돌이에 휘말린다는 점에서 <공조>의 진태나 <택시운전사>의 택시운전사나 비슷한 궤적을 그리는 것 같다. “그렇다. 어떻게 보면 세상을 움직여가는 사람은 특수한 몇몇 사람보다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이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