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장영엽의 영화비평]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에 담긴 변화와 질문
2017-01-10
글 : 장영엽 (편집장)

앤솔러지(외전) 이전에 익스펜디드 유니버스(이하 EU)가 있었다. <스타워즈>의 드넓은 세계 속에서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이하 <로그 원>)가 어떤 의미인지를 말하기 위해서는 배경 설명이 좀 필요하다. 2014년 이전까지, 이 세계엔 조지 루카스가 창조해낸 6편의 <스타워즈> 영화 외에 이들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된 수많은 콘텐츠들이 존재했다. 소설과 코믹스, 애니메이션과 게임. 단순한 팬픽이 아니라 조지 루카스의 공식적인 승인과 전문 작가들의 손을 거쳐 완성된 이 작품들은 루카스의 <스타워즈> 시리즈와 단일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지난 35년간 <스타워즈>의 우주를 확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루카스필름을 인수한 디즈니는 <스타워즈> EU의 리부트를 선언하며 여섯편의 본편 영화와 애니메이션 <스타워즈: 클론전쟁>(2008)을 제외하고는 2014년 이후 루카스필름의 승인을 받은 작품들만 공식 캐넌으로 인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사랑해왔던 EU의 작품들이 더이상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에 격분한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동시에 많은 이들은 디즈니와 루카스필름이 함께 구축해나갈 캐넌의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로그 원>은 <스타워즈> EU의 리부트 이후 공식 캐넌에 속한 <스타워즈> 앤솔러지 3부작의 첫 번째 영화라는 점에서 많은 기대를 불러모은 작품이다. 디즈니와 루카스필름이 지향하는 새로운 확장우주의 면모를 짐작해볼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지난 7편의 <스타워즈> 영화와 <로그 원>의 가장 큰 차이점은 포스를 사용하는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동안 <스타워즈>의 세계에서 포스는 영웅과 악당이 지녀야 할 필수적인 자질이었다. 원한다고 해서 가질 수 없고, 태어날 때부터 미디클로리언 수치가 남다르게 높은 이들에게만 부여되는 이 능력은 <스타워즈>의 신화적이고 운명론적인 서사의 핵심이었다. 성장하는 환경에 따라 자신의 능력을 뒤늦게 각성할 수 있고, 자라서 영웅이 될지 악당이 될지는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것이지만, 처음부터 세계를 구원하거나 멸망시킬 정도의 강력한 힘을 가진 자들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전조감은 7부작의 인물과 이야기가 어느 지점 이상 뻗어나가지 못하는 한계로도 작용한 것 같다.

냉혹하고 어두운 저항의 서사

앤솔러지 3부작의 시작점인 <로그 원>은 포스의 영향력이 희미한 시대로 눈길을 돌린다.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와 <스타워즈 에피소드4: 새로운 희망> 사이, 말하자면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다스 베이더로 변해 공화국을 멸망시키는 데 일조하고, 제다이의 씨가 마른 절망의 시기가 바로 <로그 원>의 시대적 배경이다. 그런데 포스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던 영웅들이 사라진 시대는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균등한 기회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선택받은 자가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자라면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제국군에 의해 어머니를 잃고 유능한 과학자였던 아버지를 빼앗긴 진 어소(펠리시티 존스), 유년 시절부터 제국군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로 살아온 카시안 안도르(디에고 루나), 진 어소의 아버지 겔런 어소(매즈 미켈슨)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반군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은 전향한 파일럿 보디 룩(리즈 아메드)과 휠 사원 출신의 눈먼 수호자 치루트 임웨(견자단) 등 <로그 원>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모두 동등한 출발점에 서 있다. 이처럼 포스를 지닌 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스타워즈> 고유의 영웅 신화에서 벗어나 보다 현실적인 필치로 확장된 세계관을 펼쳐 보이려는 건 디즈니와 루카스필름이 지향하는 앤솔러지 3부작의 큰 밑그림이라 짐작되기도 한다. <로그 원> 이후 제작될 후속 앤솔러지 두편의 주인공이 각각 한 솔로와 보바 펫이라는점- 역시 포스와는 거리가 먼, 지극히 속물적인 인물들이다-이 이러한 짐작에 힘을 실어준다.

신화적 인물과 낭만적인 모험이 사라진 시대의 풍경은 더없이 어둡다. 아마 <로그 원>은 지금까지 선보인 여덟편의 <스타워즈> 영화를 통틀어 가장 진중하고 통렬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기밀을 전하는 정보원에게 블라스터를 난사하는 비열한 모습이나, 주요 등장인물이 거의 벌집이 되어 장렬하게 전사하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건 기존의 <스타워즈> 영화에서 거의 목도할 수 없었던 장면들이다. 이번 작품으로 <스타워즈>의 세계에 새롭게 승선한 개러스 에드워즈가 <로그 원>을 통해 보여주려는 건 냉혹한 리얼리즘이다. 괴생명체와의 사투를 다룬 데뷔작 <몬스터즈>(2010)와 <고질라>(2014) 등의 작품을 통해 재난 상황 속에서 혼란을 겪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스펙터클하게 펼쳐 보인 바 있는 그는 이번 영화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게릴라전을 실감나게 구현해냈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 스카리프 행성에서 벌어지는 제국군과 반군의 전투 시퀀스는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근사하다. 자자 빙크스나 츄바카, R2D2나 C-3PO처럼 소소한 웃음을 선사하는 캐릭터 하나 없이 영화의 러닝타임 대부분을 냉혹하고 어두운 저항의 서사로 채웠다는 건 <로그 원>과 개러스 에드워즈의 또 다른 도전일 것이다. 오랜 논의 끝에 재촬영을 결심했다는 영화의 엔딩 또한 기존의 <스타워즈> 영화와는 다른 묵직함으로 다가온다.

새 시대의 여성 캐릭터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로그 원>이 선보인 진 어소와 겔런 어소의 부녀 관계였다. <스타워즈>의 팬들이라면 누구나 이 시리즈가 혈연간의 징글징글한 애증의 드라마이기도 하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대개 이전의 <스타워즈> 영화에서 이 드라마는 아버지와 아들의 차지였다. 루크 스카이워커와 아나킨스카이워커, 카일로 렌과 한 솔로, 오비완 케노비와 아나킨 스카이워커. 아버지와 아들, 혹은 유사 부자 관계인 이들은 상대방을 제거하거나 치명적인 상처를 입혀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로그 원>에서 보여지는 어소 부녀의 관계는 오이디푸스의 운명을 타고난 <스타워즈> 세계관의 부자 관계와는 좀 다르다. 제국군에 납치당해 데스스타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겔런은 진에게 찾아나서야 할 존재이자 구원해야 할 대상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자리를 노리는 사이, 딸은 아버지의 구원을 도모하는 것이다. 진의 이러한 태도는 <스타워즈> 세계 속 또 다른 강력한 여성 캐릭터들, 레아와 레이의 행보와 비교해보아도 흥미롭다. 신공화국과 퍼스트오더의 이야기로 새 시대를 열어젖힌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이후, 떠나는 건 언제나 남자들이고 그들을 찾아나서는 건 그녀들이었다. 제자의 배신으로 상처받고 잠적한 루크 스카이워커를 찾기로 결심하는 건 레아 장군이며, 그런 루크를 마침내 찾아 라이트세이버를 건네는 인물은 레이가 아니던가. 비련의 여인 파드메와 비키니를 입고 도움의 눈빛을 보내던 과거의 레아 공주를 생각한다면, 확실히 <스타워즈>가 열어젖힌 새 시대의 여성 캐릭터들은 한층 강인하고 주체적인 존재들이다. <로그 원>에서도 여전히 진을 제외한 대부분의 캐릭터가 남성이라는 점에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지만, 분명한 건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과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여성 캐릭터가 <스타워즈>의 세계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언젠가 다스 베이더를 닮은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 악역 캐릭터가 등장하는 날도 오게 될까. ‘무리에서 이탈하다’라는 뜻을 지닌 <로그 원>이라는 제목의 의미처럼, 스카이워커 가문의 이야기로부터 벗어나려 했던 앤솔러지 3부작의 시작은 이처럼 많은 변화와 질문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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