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작업으로 명성을 얻은 단편 <별의 목소리>부터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 순위에서 2위를 기록한 <너의 이름은.>까지 신카이 마코토 작품 면면에 흐르는 본질은 변함이 없다. 극사실주의 정밀화 같은 배경들을 꿰매어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시키는 절실함. 온갖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헤치고 너에게 달려가는 맑은 질주. 형식과 내용 측면에서 모두 신카이 마코토는 확고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작가다. 함부로 예단하고 싶진 않지만 이번 영화는 신카이 마코토의 역량이 만개한 정점이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흥행 때문만은 아니다. 다소 마니악한 측면이 있던 신카이 마코토의 세계가 극적으로 확장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안도 마사시, 다나카 마사요시 등 일본 최고의 스탭과 함께 일궈낸 보편타당한 서사라는 점에서 더욱 인상적이다. 국내에서 그간 신카이 마코토를 애정해온 팬덤도 한층 두터워져 이번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내한 상영회까지 이뤄졌다. 여기 일본 애니메이션의 현재를 증명하는 신카이 마코토와의 만남을 전한다.
-그간 여섯 차례 이상 한국을 방문했지만 이번 방문은 한층 더 특별할 것 같다.
=관객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직접 초청해주셨는데 수입 애니메이션 중에선 처음 있는 일이라고 들었다. 영화를 만들 때마다 한국을 찾았지만 이번처럼 큰 규모의 개봉은 처음이다. 어제 만난 한국 관객은 대부분 열성 팬들이라 전작을 거의 다 보고 오셨다. 개봉 첫날 관객수가 1위였다고 들었다. 일본 흥행과는 또 다른 느낌이며 믿기지 않는다. 꿈처럼 행복한 기분이다.
-록밴드 래드윔프스가 참여한 O.S.T는 서사의 중요한 지점을 담당한다. <전전전세>를 비롯한 네곡의 주제가는 뮤직비디오처럼 직접 가사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는데.
=래드윔프스에게 음악을 맡긴 건 우선 개인적으로 그들 팬이기 때문이다. (웃음) 그들의 음악적 세계관이 내 작품과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슬픔이나 사랑을 우주, 운명과 연관지어 표현하는 작품관이 마음에 들었다. 처음부터 과잉이다 싶을 만큼 음악으로 넘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 주제가를 여러 개 부탁했다. 각본을 전달한 뒤 몇 개월 후 곡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너무 뛰어난 곡들이라 거꾸로 완성된 음악에 맞춰 연출을 수정하기도 했다. 서로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작업이었다.
-포토리얼리즘이라고 해도 좋을 극사실주의의 배경은 이제 트레이드 마크가 된 것 같다. 영화의 배경이 된 장소가 인기 관광코스가 되기도 한다. 사진 촬영을 해서 반영한다고 들었는데 이번 작품의 배경이 된 곳은 어디인가.
=도쿄와 이토모리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도쿄는 주로 내가 사는 동네 주위를 담았다. 신주쿠에서 요쓰야까지 매일 스튜디오로 가는 길에서 다른 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아름다운 풍경들을 골랐다. 이토모리의 경우 가공의 마을이라 일본인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시골의 이미지를 모티브로 했다.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 리얼리티에 특히 공을 들였다. 세세한 길, 호수, 주변의 담과 표지판 등이 모두 담긴 지도를 제작했다. 마을을 하나 설계했다고 보면 된다. 마을은 가공이지만 디테일은 사실이다. 가드레일이나 담벼락의 높이까지 실물 사이즈에 맞춰 채워넣었다. 한편 신당이 있는 성지는 특정장소라기보다는 내가 동경하는 이미지를 그렸다. 영화를 본 후 비슷한 지형을 사진으로 보내온 팬들도 있었는데 그곳만큼은 온전히 상상의 장소다.
-최근 스마트폰 앱 ‘에버필터’가 <초속5센티미터>의 배경을 무단 도용한 것도 배경의 아름다움을 역설하는 사례인 것 같다. 사실적인 배경 묘사에 이토록 공을 들이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20년 전 애니메이션을 연출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다. 당시엔 게임회사의 디자인 직원이었고 주로 판타지 속 배경들을 그렸다. 모두 아름답기만 한 상상 속 풍경이었는데 당시 내가 감흥을 받은 것들은 만원 전철의 출퇴근 풍경, 자동판매기의 디자인 등 일상 속의 소소한 대상이었다. 내 주변에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그리고 싶은 마음, 내 삶을 긍정하기 위해 시작한 작업이 지금까지 이어져왔고 고스란히 나의 개성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시공간이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이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건 데뷔작부터 일관된 주제다. 하지만 꿈, 우주 등 세세한 설정은 매번 바뀌는데 이번 작품의 출발은 무엇이었나.
=기본적으론 만난 뒤의 이야기 대신 마지막에야 만나는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었다. 우리 모두 운명의 누군가와 만나기 이전의 상태니까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꿈이란 걸 알았더라면 눈뜨지 않았을 것을’이란 와카(오노노 고마치가 지은 일본 단가)의 한 구절도 영감을 줬고, 남녀의 몸이 바뀌는 소설과 만화의 영향도 받았다. 모티브는 늘 복합적이다.
-일문학 전공으로 소설을 쓴다. 소설 <너의 이름은.>도 직접 집필했다. 애니메이션을 연출할 때와 차이가 있다면.
=어려운 질문인데. (웃음) 소설에서만 표현하는 것과 영상으로 구현했을 때 효과적인 것이 나뉜다. 감정 흐름이나 사고의 움직임은 소설이 편하다. 그렇다고 쓰면 되니까. 반면 영상은 더 많은 정보로 짧은 시간 리얼하게 조합이 가능하다. 소설은 비유에도 적합한데 예를 들어 ‘미아처럼 불안한 표정’이란 문장을 영상으로 옮길 때 불안한 표정은 가능해도 ‘미아처럼’을 묘사하긴 어렵다. 각기 장단과 역할이 다른 만큼 각 영역에서 최대한 잘할 수 있는 것들을 만끽하려 한다.
-안도 마사시, 다나카 마사요시 등 일본 최고의 스탭들이 참여했다. 혼자서 작업할 때와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사실 혼자 하는 작업이나 다수가 참여하는 작업이나 내 기분상으로 큰 차이는 없다. 손에 든 재료로 무엇을 얼마나 훌륭하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혼자 할 때는 내 능력, 내 개인기 안에서 최선을 다했고 팀으로 할 땐 각각의 능력과 기술들이 내 무기가 된다. 무기의 숫자와 활용범위가 늘어나는 풍요로운 작업이다. 다만 통일감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다. 몇 사람이 함께하건 흔들리지 않는 축이 필요하다. 기술적으로는 비디오 콘티(신카이 감독은 그림 콘티 대신 비디오 콘티를 제작한다)를 가능한 한 높은 완성도로 혼자 그린다. 내용상으로는 내가 감흥을 받은 것, 마음이 쓰이는 것, 흥미롭다고 느낀 것을 테마로 해야 한다. 다른 시나리오를 받아서 작업하는 건 못할 것 같다. 결국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결과에 도달해야 한다는 목표는 변함없다.
-일부에선 소위 ‘세카이계’(일본 서브컬처의 분류 중 하나로 아즈마 히로키에 따르면 세계의 위기 앞에서 너와 나의 사적인 관계성에 집중하는 형태로 사회적인 요소를 소거한 이야기를 칭한다.-편집자)의 대표작이었던 <별의 목소리>의 감독이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는 평도 있었다. 동일본 대지진에 대한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싶었나.
=‘세카이계’에 갇힌 감독이 사회적인 지점으로 나아갔다는 비평을 들었다. 어떤 해석이든 존중한다. 동일본 대지진은 내게도 변화를 미쳤고 그 일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여기저기 담긴 했다. 하지만 <너의 이름은.>의 첫 번째 목적은 누구나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106분 동안 두근두근하기도 하고 눈물도 나고 행복해지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고 개인적으로는 결과에 만족한다.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 2위에 올라서며 곧잘 미야자키 하야오나 호소다 마모루와 비교되기도 한다. 흥행 이후 바뀐 것들이 있나. 상업성에 혼을 팔았다는 일부의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흥행에 따른 외적인 변화는 없다. 개봉 후 지금까지 최대한 많은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어 미디어에 적극 노출했는데 아마 이번 인터뷰가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지금은 가끔 알아보는 분들이 있지만 점차 줄어들 테니 순조롭게 일상으로 복귀하겠지. 1600만명 넘는 분들이 봐주신 만큼 다양한 의견을 들었다. 긍정하는 부분도 있고, 뜨끔한 지적도 있었다. 칭찬이든 비난이든 관객에겐 말할 권리가 있다. 각자 원하는 방향으로 다양하게 해석해주는 게 도리어 기쁘고 보람 있다. 다만 사정을 다 아는 업계 사람들이 흥행을 위해 작가성을 포기했다고 하는 것에 대해선 솔직히 화가 난다. 굳이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음에도 최선을 다해 최상의 결과물로 화답하는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