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people] <다른 길이 있다> 조창호 감독
2017-01-19
글 : 송경원
사진 : 최성열

상상할 줄 아는 사람은 단언하지 않는다. 자신이 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 사려 깊은 태도가 <피터팬의 공식>(2005)을 세상에 내어놓는 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폭풍전야>(2010) 이후 7년 만에 세 번째 장편 <다른 길이 있다>로 돌아온 조창호 감독은 여전히 신중하고 차분했다. 자살을 하려는 남자와 여자의 스쳐지나가는 인연에 대해 그린 <다른 길이 있다>는 자살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단지 소재로 낭비하지 않는다. 그들 각자의 사정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는 대신 가만히 지켜보고 다독이는 이 영화는 해답이 아닌 질문에 가깝다. <폭풍전야>의 부진한 흥행에 책임을 느낀 조창호 감독은 그동안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과 오랜 번민을 떨치고 이 영화를 통해 응답한다. 제 목소리를 내는 작은 영화가 관객과 만나기 어려운 시대, 여기 소중하고 기억할 만한 다른 길이 있다.

-7년 만이다. 차기작을 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 다시 영화를 만들 거라 생각지 않았다. <폭풍전야> 때 기대하던 분들에게 실망을 안겨드린 후 영화를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관객, 투자자, 배우들, 심지어 내가 직접 쓴 시나리오에도 미안한 영화였다. 실제로도 잠시 떠나 생활하던 중 동반자살 사건을 뉴스에서 접했다. 그때가 겨울 즈음이었는데 마침 구리한강시민공원에 나갔다가 얼음이 얼어 있는 걸 보고 중앙으로 걸어가보고 싶어졌다. 막상 가보니 중앙은 얼음이 두껍지 않아 다시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너무 깊이 들어와 돌아가기도 위험해진 거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기어오다가 쉬는 도중 하늘을 보니 너무 맑았다. 문득 동반자살 뉴스가 생각나면서 그 사람들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하게 됐다. 우연한 만남이나 스쳐지나간 인연들이 누군가가 자살에까지 이르지 않도록 위로가 될 수는 없었을까. 그런 이들에게 말을 붙여보고 싶어 영화를 다시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겨서 다시 영화를 시작할 용기를 얻었단 말인가.

=전작 이후엔 죄를 짓고 도망간 기분이었다. <다른 길이 있다>는 버거운 현실로부터 끊임없이 멀어지고자 배회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영화다. 이야기를 건네는 대상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다. 용기라기보다는 필요라고 표현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영화의 무대를 춘천으로 고른 이유는 무엇인가.

=뉴스를 접할 즈음에 춘천으로 이사를 왔다. 유년 시절을 춘천 인근 홍천에서 보냈는데 다른 이들에게 설명하면 가깝다며 같은 동네로 치더라. (웃음) 여러 이유가 있는데 제일 첫 번째는 춘천이 전국에서 가장 살고 싶은 도시라는 광고를 봤기 때문이다. 그런 도시를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방문하는 아이러니가 긴장감을 줄 것 같았다. 자연이 주는 치유와 그에 따른 미세한 변화를 잡아내기도 적합한 곳이다. 처음 한강 위 얼음에 누워서 떠올린 이미지, 아픔을 가진 인물들이 광활한 얼음 위를 걷는 이미지를 그리기에도 춘천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강원문화재단의 로케이션 지원작이기도 하다.

=선후를 따지면 춘천에서 찍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지원서를 냈다. 알다시피 투자를 받는 건 지난한 작업이다. 2014년에 지웠했지만 1년가량을 기다려 영화는 2015년 겨울 무렵에 완성했다. 사실 개봉까지 이렇게 오래 걸리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예전에도 수월하진 않았지만 작은 영화의 개봉이 이 정도로 험난해졌으리라곤. 이 영화 자체가 내게 위안이 되는 부분이 있어서 기다림의 시간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배급 홍보를 담당해준 회사 무브먼트를 만나려고 그랬나 싶기도 하고. (웃음) 이번에 직접 제작까지 맡은 건 변명할 여지를 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몇년 사이 시장 상황이 예상보다 훨씬 어려워진 걸 알고 놀랐다. 한 개인이 아무리 잘 만들어도 짜여진 판 안에서 소비되는 구조들을 느낀다.

-삶의 막다른 길에 몰린 사람들이란 다소 무거운 소재와 달리 영상은 무척 아름답다.

=배경을 도드라지게 하려는 욕심은 없었다. 그렇게 느껴졌다면 애쓰지 않았지만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던 춘천의 아름다운 풍광, 자연이 가진 치유의 힘 때문이 아닐까. 이야기를 쓸 때 나를 괴롭혔던 부분은 죽음에 대한 단언이었다. ‘겨우 저런 이유로 죽고 싶었나’라며 누군가의 죽음을 단정하는 방식은 살아 있는 이들의 폭력이다. 작은 이유라도 그 사람에겐 죽음에 이를 만한 무게였을 거라 보고 상대의 입장을 상상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배우들과도 그 부분에 대해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어떻게 연기하자고 단정하거나 확신하지 말자. 서로의 생각을 의심하자. 내가 보는 것을 의심하면서 매 행동, 매 상황 불확실한 걸음을 내딛는 작업이었다. 분위기, 배경, 연기 모두 ‘자살을 할 것 같은 얼굴과 행동’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을 따르지 않으려 했다.

-김재욱과 서예지 두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

=김재욱 배우는 착함과 불확실함, 서예지 배우는 신뢰라는 단어가 연상된다. 수완 역은 막연히 착한 사람이 했으면 싶었다. 확신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분위기가 필요했다. 김재욱 배우는 눈빛이 무척 마음에 들었고 실제로 만나보니 알고 있던 이미지보다 훨씬 착한 사람이라 다행이었다. 나 이제 죽을 사람이다, 심각하다는 분위기를 풍기지 않길 바랐다는데 그런 분위기를 잘 소화해줬다. 그에 비해 정원은 훨씬 직진하는 캐릭터다. 선택에 쉽게 딴지 걸기 힘든 단호함이 필요했는데 서예지 배우가 지닌 자질과 일맥상통했다.

-어떻게 보면 영화 자체가 삶과 죽음에 대한 하나의 질문 같다. 자살에 대해 함부로 결론내리거나 서사화하는 대신 운명 같은 스쳐지나감에 주목한다.

=이런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울 땐 창작자의 윤리적인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모르고 죄를 지을 수는 있지만 알면서도 거짓을 취하진 말자는 생각으로 임했다. 적어도 내가 아는 부분에 있어선 정확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자살충동의 이유를 설정하는 건 고통의 질량을 재단하는 무모한 행위나 다름없지만 그럼에도 이야기를 끌고 나가기 위해선 최소한의 ‘왜’가 필요하긴 하다. 가능한 한 ‘검은 새와 흰 새의 어두운 공모에서 두 남녀의 희망의 연대로 이르는 작은 서사’란 최초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썼다. 결과적으로는 적절한 균형을 잡아냈다고 생각한다.

-엔딩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이 갈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보신 분들 중에선 이들을 둘러싼 상황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는데 무책임한 거 아니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쉽게 바뀐 상황을 제시하거나 급하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건 판타지라는 이름의 거짓이 아닐까 싶다. 상황은 그렇게 쉽게 변할 수 없다. 우연한 스침이 주는 위로는 그저 인식하는 지점이 달라지는 정도일 거다. 하지만 누군가의 아픔을 이해하거나 자신의 아픔을 보여줄 수 있는 관계의 변화는 때론 단순한 상황 변화보다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 짧은 여행과 스쳐지나가는 만남을 통해 타인과 연대할 수 있는 지점이 생겼다는 게 중요하다. 그것이야말로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자 조심스럽게 희망이란 이름으로 부를 만한 변화가 아닐까.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관객에게 선보이는 영화다. 어떤 영화로 기억되었으면 하나.

=영화를 기획할 때부터 완성되는 과정을 되돌아보니 이 영화로부터 많은 것을 선물받은 기분이다. 이 영화를 위해서라도 영화로부터 받은 것들을 관객에게 돌려줘야지 하는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노고가 많으셨고 앞으로도 한참 수고하실 촛불 시민들에게 잠시라도 휴식 같은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