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매켄지의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2016)는 텍사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서부시대에 인디언을 밀어내고 땅을 차지한 사람들의 후손이고, 이제는 반대로 그들이 대기업과 금융 시스템에 의해서 자신의 땅에서 쫓겨날 운명에 처해 있다. 태너(벤 포스터)와 토비(크리스 파인) 형제는 함께 은행털이로 돈을 모으고 있다. 소도시 은행을 대상으로 소액권 현금만을 강탈하고, 모은 돈은 인디언 보호구역의 카지노에서 자금세탁을 한다. 텍사스 지역은행만을 대상으로 하는 이들의 계획은, 동일한 은행으로부터 받은 대출을 갚지 못하면 은행으로 소유권이 넘어가는 농장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시도이다. 그래서 <로스트 인 더스트>가 왜 땅에 관한 영화인지를 설명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미국 서부 개발의 역사
미국의 서부시대는 토지 분할의 역사라 말할 수 있다. 독립전쟁 후 영국으로부터 서부의 광대한 토지를 양도받은 동부 13개 주정부는 미개척지, 서부 개발을 고민한다. 효율적인 토지 측량과 분할에 대한 고민은 새로운 ‘직각 측량 시스템’을 사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존에 동부지역에서 사용되던 영국식 측량법은, 오래된 나무 같은 잘 변하지 않는 기점을 정하고, 나침반을 사용해서 방향과 거리를 표기하며 토지의 경계를 차례로 서술하는 방법이다. 토지의 경계를 하천이나 숲 같은 자연 지장물들로 표현하던 이 오래된 방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불규칙한 패치워크 형태의 토지 경계 지도를 만들어낸다. 가보기도 쉽지 않았을 서부의 땅이 갑자기 생겨났을 때, 이 오래된 시스템의 사용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직각 측량 시스템을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각변의 길이가 6마일인 동일한 크기의 정사각형으로 서부지역 전체를 분할하는 것이다. 타운십(township)이라고 명명된 이 정사각형의 토지는 다시 각변을 6등분해서 36개의 작은 그리드로 구성되어 있다. 36개의 토지 중 일부는 교육과 공공 용도로 제한되고, 나머지가 민간 용도로 계획된 것이다. 이 사각형 그리드는 점점 작게 세분화되다가 밀집된 도시지역에서는, 최종적으로 길을 따라 배치되는 미국식 직사각형 주택필지가 된다. 미국 중서부 지역의 평원을 자동차 좌석 높이가 아니라 하늘에서 본다면 이러한 측량 방법이 만들어낸 그리드 패턴의 토지와 각 토지에 섬처럼 흩어진 집들을 볼 수 있다.
작게는 주택필지부터 크게는 대농장까지, 모든 크기의 토지를 예외 없이 한 시스템으로 규정하는 이 직각 측량 방법은, 자연으로서의 땅이 통제될 수 있는 시스템의 영역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유의 개념을 갖고 있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지는 인디언들의 격렬한 저항은 땅을 소유하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에 의해 무력화되고, 인디언들은 보호구역이란 이름의 한정된 지역 안에 격리되었다.
서부 개발의 기폭제가 되었던 골드러시, 랜드러시, 오일러시 같은 사회적 현상 중에서 랜드러시는 서부의 변화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1862년에 제정된 홈스테드법은 동부 13개주 밖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 집을 짓고 농사를 한 사람들에게 160~640에이커의 공유지 땅을 무상으로 나누어주는 법이다. 이 법에 따라 미국 토지의 약 10%에 해당하는 크기의 땅이 독립 자영농의 소유가 되었다.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출연한 영화 <파 앤드 어웨이>(1992)에는 홈스테드법의 시대에 있었을 법한 이벤트, 말을 타고 경주를 해서, 먼저 도달한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땅을 소유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어도 우리가 아는 많은 서부영화 속 목장이나 농장들은 무상으로 땅을 받기 위해 서부로 달려온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텍사스는 서부지역의 다른 주들과는 다르게 복합적인 토지측량시스템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미국의 축소판 같은 형태이다. 먼저 개발된 동부지역과 남부지역은 스페인 식민지와 멕시코 시대의 유산으로 동부 13주와 같이 ‘영국식 측량 시스템’을 갖고 있고, 리오그란데 같은 강을 따라서는 프랑스 정착지 때 조성된 좁고 긴 필지가 발견된다. 그리고 철도가 건설되면서 함께 유입 된 연방정부의 직각 측량 기법은 변형된 방식으로 텍사스의 서부에 적용되었다.
구글 지도에서 텍사스 서부를 항공사진으로 보면 미국 중서부의 평원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드 패턴 안에 원들과 상처처럼 보이는 수많은 자국들이 나타난다. 원형 패턴은 중심을 따라 회전하며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관개시스템이 만들어낸 흔적이고, 상처처럼 보이는 자국은 석유시추의 흔적들이다. 텍사스는 척박한 농장 사이에 석유가 발견되면 누구나 하루아침에 백만장자가 되는 시간을 경험했던 장소이다.
토지를 상속하는 전통적인 규범 중에 장자상속과 말자상속이 있다. 두 가지 다 기본적인 의도는 토지가 끝없이 분할되지 않고, 경제성을 갖고 있는 최소한의 크기를 유지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상속 형태가 적용되지 못하는 토지는 후손들에게 상속 되기를 반복하면서, 끊임없이 작게 쪼개지거나 아무도 어찌할 수 없는 공동의 소유가 된다. 마이클 헬러 교수는 그의 책 <소유의 역습 그리드락>에서 ‘그리드락’이란 개념으로 재산권 행사가 불가능한 이러한 상태, 지나치게 많은 소유권으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을 설명한다. 장자상속이나 말자상속의 현대적인 방식은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자식에게 상속하는 것이다.
‘랜드러시’에서 ‘시티러시’로
교도소에 가까웠던 삶을 살았던 형 태너와 달리 농장을 돌보며 어머니의 임종을 함께한 동생 토비는 어머니로부터 농장을 상속 받는다. 농장에서 발견된 석유는 이 형제가 위험을 무릅쓰고 은행강도를 벌이게 된 이유이다. 소도시를 찾아가며 은행을 터는 이들의 계획은 한 폐쇄된 지점에서 의도했던 길을 벗어난다. 대안으로 찾은 은행에서, 주민들과 총격전이 벌어지고 동생 토비는 부상을 입는다. 이들은 가까스로 현장을 도망쳐나오는 데 성공하지만 경찰의 추격으로 잡힐 위기에 처한다. 태너는 동생 토비가 도망칠 수 있도록 경찰을 평원으로 유인하고, 경찰과 총격을 벌이다 살해된다. 형의 죽음 덕분에 경찰의 의심에서 벗어난 토비는 대출을 갚고 농장을 자신의 자식들에게 신탁 상속한다. 토비는 마침내, 자신의 표현대로 지독한 병 같은, 대를 이어 이어져오던 지겨운 가난을 끊어내는 데 성공한다.
서부의 개발역사가 ‘랜드러시’의 시대라면 지금은 ‘시티러시’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지금은 도시를 넘어서, 도시도 전세계적 규모의 금융 시스템과 대기업 조직으로 대체되는 시대이다. 개인 소유 토지 경제를 인디언이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이 새로운 시스템은 모든 개인의 삶을 비켜간다.
그리고, <로스트 인 더스트>가 실제로 촬영된 장소는 뉴멕시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