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격렬한 상실의 고통과 마주했을 때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 <맨체스터 바이 더 씨>
2017-02-15
글 : 이예지

보스턴에서 아파트 관리인으로 일하는 리(케이시 애플렉)는 혼자 무미건조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는 형 조(카일 챈들러)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고향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향하고, 형의 죽음 후 조카 패트릭(루카스 헤지스)의 후견인이 된다. 리는 패트릭과 보스턴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패트릭은 자신이 뿌리내린 고향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한편 전 부인 랜디(미셸 윌리엄스)에게서 연락이 오고, 잊을 수 없는 과거의 기억이 리를 점점 조여온다.

“모르겠어요.” 리가 궁지에 몰릴 때마다 탄식처럼 내뱉는 말이다. 격렬한 상실의 고통과 마주했을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어쩌면 그것을 마주하고 극복하기보다는 ‘모른다’는 회피와 망각에 몸을 의탁하는 것일 터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겪고 마음의 문을 닫은 남자, 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외면했던 것은 끝내 귀환하고야 말고, 소금기 섞인 겨울바람에 외면하고 있었던 상처가 다시금 에여온다. 카메라는 무기력한 리의 모습과 그의 내면의 동요를 좇는다. 바다가 성큼 보이는 마을을 배경으로 인물들 사이의 거리, 대화의 간격, 대사의 행간들은 황량하면서 정갈하게 배치되어 있다. 알비노니의 <아다지오>와 함께 어우러지는 회상 숏들은 감정을 극도로 절제하고 있는 리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복기되는 상기의 과정과 그것이 일으키는 파문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유 캔 카운트 온 미>(2000)를 만든 케네스 로너건 감독의 작품으로, 리를 연기한 케이시 애플렉의 성추행 사건이 인물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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