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커버스타] 진심과 열정으로 - <재심> 정우
2017-02-21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최성열

콧소리 섞인 정우의 시원한 웃음에는 넉살 좋은 사람 특유의 여유가 배어 있다. 그 웃음 한방이면 심각한 일도 금세 아무렇지 않은 것이 될 것 같다. 하지만 때때로 그런 웃음에는 온갖 걱정을 제 안에 싸짊어지고 사는 이의 속 깊은 배려가 숨어 있기도 하다. “서글서글하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사실 낯가림이 정말 심하다”는 정우는 그래서 더 호방하게 웃는다. 그가 연기해온 인물들이 딱 정우같았다. 겉으로는 무심히 웃어넘기지만 은근한 말과 행동으로 그가 지금 상대방을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교복 바지춤에 손을 찌르고 세상 무서울 것 없다는 듯 굴지만 사실은 두근 반 세근 반 가슴을 졸이던 <바람>(2009)의 고교생 짱구도 그랬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2013)의 정 많은 쓰레기, 순정으로 눈물 짓던 <쎄시봉>(2015)의 오근태, 웃음을 사랑한 <히말라야>(2015)의 박무택을 통과하며 그는 선한 얼굴로 애정을 불렀다. 살인 누명을 쓴 청년을 변론하겠다고 나선 <재심>(2016)의 이준영 변호사를 통해서도 다시금 정우를 발견해본다.

-법정 공방이 오가는 법정 드라마라 생각했는데 준영이 현우(강하늘)의 변론을 맡기까지의 과정에 방점이 찍힌 휴먼 드라마더라.

=억지 신파가 아니라 다행이다. 그래도 요즘은 자극적인 영화들이 워낙 많으니 조미료를 더 가미해야 했나 싶기도 하다. (웃음)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배우로서는 어떤 기대가 있었나.

=다음 장이 궁금해지는 시나리오를 오랜만에 만났다. 준영은 변호사 하면 떠올릴 법한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있어서 내가 만들어갈 여지가 많았다. 법정 변론 장면이 많지 않은 건 조금 아쉽지만.

-<재심> 촬영장에서 집중력이 상당했다고 들었다.

=영화 촬영과 사적인 생활에 경계를 두는 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재심>은 가랑비에 옷이 젖어들 듯 촬영을 할수록 감정이 점점 더 올라왔다. 촬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도 영화와 현장의 여운이 남는 경험이 정말 낯설었다. 작품의 묵직한 내용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연기를 이해하고 연기에 몰입하는 방식에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닌가.

=<히말라야> 촬영 중반에 체력적으로 많이 지쳤다. 그때 내가 내 연기에 어느 순간 타협하고 있더라. 현장에서 긴장감을 느끼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너무 두려웠다. 한동안 자괴감에 빠져 그 이유를 찾으려 했다. 다행히 <재심>을 만나면서 연기에 대한 애정의 온도가 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감독님께 내가 먼저 의견을 제시하고 테이크도 여러 번 가보려 하고. <히말라야> 이후 오래 기다린 만큼 연기에 갈증이 있어서 열성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반대로 힘이 넘쳤달까. (웃음) 균형을 잡기가 어려웠다.

-준영은 영화의 묵직한 이야기 안에 웃을 수 있는 지점들을 만들어주는 동시에 변론을 맡은 후부터는 진지한 면모를 보여줘야 했다.

=그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올릴 수 있을까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자칫 오버하면 작품의 성격을 해칠 수 있고 너무 조용하게 가면 영화가 시종 진지해져버리니까. 여기서도 균형이 중요했다.

-밥벌이로서의 직업 변호사 준영이 현우 사건에 투신하게 되는 변화의 시점, 그 전후를 설득력 있게 만들어가야 했다.

=캐릭터가 바뀔 때 그 지점을 확 드러내는 방식이 쑥스럽다. 나라는 사람이 그런 것 같다. 사람은 갑자기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두번 준영의 심리에 변화가 있는 지점을 슬쩍슬쩍 심어뒀다. 그렇게 해서 영화의 처음과 끝의 재판장에 선 준영의 눈빛과 태도에서 변화가 감지됐으면 했다.

-<쎄시봉> <히말라야>에 이어 <재심>까지 실화에 바탕한 영화다. 배우가 캐릭터의 리얼리티를 구축해나갈 때 실존 인물이 있다는 건 그렇지 않은 경우와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나.

=부담감과 즐거움이 공존한다. 혹여나 내가 해석한 인물의 이미지가 실존 인물의 그것인 양 굳어버릴까봐 늘 조심스럽다. 반면 ‘내가 만약 저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접근으로 인물을 내게로 끌어와 나만의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건 즐거움이다.

-줄곧 선한 기운에 누구에게나 호감을 사는 속 깊은 캐릭터들을 연기해왔다.

=그런 캐릭터가 좋다. 내가 공감이 잘되는 인물들이기도 하고. 어쩌면 인간 정우가 작품마다 나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본인이 잘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을 보여줬다면, 해보지 않았거나 잘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드는 영역의 것도 시도해보고 싶지 않나.

=이제는 욕심이 난다. 기존과는 다른 방식, 장르, 시대의 작품들도 해보고 싶다. 깨지더라도 해봐야지. (웃음) 다음이 궁금해지는 배우가 되면 좋겠다.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오래도록 배우로 살아가고 싶으니까.

스타일리스트 박상정 실장 / 헤어 요닝 지경미 원장 / 메이크업 요닝 나래 실장 / 의상협찬 로드앤테일러, 산드로옴므, 유니페어, 브룩스브라더스, 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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