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이었다. 나는 진지했다. 그러니까 지구 안에 맨틀과 핵이 있다는 건데, 그걸 어떻게 믿죠? 들어가본 사람이라도 있나요? 제 생각엔 지구 안에 또 지구가 있고 그 안에 또 지구가 있고 그런데 그게 너무 커서 우주라고 뭉뚱그려 말하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저 하늘 너머 은하계 너머 또 그 너머 너머 자꾸 넘어가면 다른 지구의 맨틀 같은 게 나오는 거죠. 수업시간에 그림을 그리다 걸린 나는 주절거리고 있었다. 머리를 한대 맞겠군. 대신 팥빙수(가벌자가 손으로 팥빙수 기계와 유사한 모양을 만든 후 피벌자의 머리통을 끼워 작동시키는 형태의 벌)를 당했고, 동시에 이런 말을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한 게 네가 처음은 아니다.
테드 창 얘기라는 걸 당시엔 몰랐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꿈과 희망과 절망의 내용이 바뀌던 시절이었고, 나는 내 낙서와 심오한 상상력을 반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날렸기 때문이다(지적 호기심 따위는 없었다).
1990년 테드 창이 첫 발표한 단편 <바빌론의 탑>은 하늘의 천장을 파고 들어가는 광부들의 이야기다. 테드 창은 이 미래적인 소설 속에서 가장 원시적인 인간의 모습을 재현했다. 그리고 이런 문장으로 많은 것을 전달한다.
어떻게 광기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는 것일까. 견고한 하늘 아래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발아래에 지면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면 비명을 지르게 될까? 어쩌면 인간은 이런 장소에서 살도록 만들어지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인간의 본성이 인간이 하늘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막는다면, 인간은 지상에 남아 있는 것이 마땅하리라.
훗날 이 소설을 읽을 때 나는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세라펠라다 금광 사진을 떠올렸는데 아마 사람마다 비슷하게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일 수도 있고, 성경의 바벨탑일 수도, 혹은 제2롯데월드일 수도 있다. 창작노트에서 테드 창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피레네의 성>을 본 후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그의 작품이 발표된 지 20년이 넘었다. 그사이 아바타와 증강현실은 일상 용어가 됐고, 로봇청소기에서부터 알파고까지 등장했다. 시험관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 다음 세대의 시험관을 시험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놀랍게도 테드 창의 단편 모음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는 이 모든 ‘과학’이 거의 다 들어 있다. 이쯤 되면 샤먼(모든 종교를 포함한!)과 과학은 가장 절친한 친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테드 창이 다시 언급된 건 지난해 가을이었다. 싱가포르 시인의 입을 통해서였다.
-너희 대단히 멋있다.
광화문에 모인 촛불을 보고 그녀가 한 말이었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싱가포르는 아프가니스탄보다도 언론의 자유가 적다고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상황이 그녀가 부러워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2016년 한국의 많은 작가들은 ‘블랙’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니까. 어찌 보면 그건 당연하다. 반대하거나 기억하는 일 두 가지를 빼면 대체 작가가 할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테드 창의 문장을 빌리자면 블랙이라 명명된 작가들이 하고 싶은 것은 ‘교란이 아니라 복구’일 것이다. 하여튼 싱가포르의 작가들은 그래서 반정부적인 내용은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고 자기들끼리 소통할 수 있는 은밀한 사인을 쓴다고 했다. 그리고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
-나의 워너비는 테드 창이야. SF는 가장 좋은 ‘시크릿 사인’이니까.
그리고 그녀가 곧 쓸 SF소설에 대해 얘기해줬다. 서울과 뉴욕과 싱가포르를 배경으로 한 페미니즘적 요소가 가득한 그 소설을 나는 기대하고 있다. 테드 창이 대단한 건 어마무시한 과학적 상상력을 20년 전에 소설이라는 장르를 빌려 형상화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유는 환상이 아니다. 그것은 순차적 의식이라는 맥락에서는 완벽한 현실이다.’ ‘모든 사유는 아픔이 올때, 피해를 당하고 적을 응시할 때 시작된다.’ 이런 문장으로 그는 독자를 부추기는데, 이런 ‘블랙’ 요소는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물론 그 방향은 독자 자신만이 알 수 있겠지만 말이다.
<일흔두 글자>에서는 ‘인간은 그 이름의 산물일 동시에 그 매개체가 될 것’이라는 명명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펼치는 동시에 거의 맹렬히 자본주의를 비판한다.
자본주의자들은 너무나도 오래 자기들의 금고 속에 이름을 숨겨두었고 특허권과 자물쇠와 열쇠로 그것을 지켰으며, 단지 글자를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부를 축적해왔다. 그러는 동안에도 우리 일반인은 1실링을 벌기 위해 땀을 흘려야 했다. 그자들은 알파벳을 쥐어짜 마지막 1페니까지 뽑아내고, 그런 다음에야 우리에게 찌꺼기를 던져준다.
작가 자신은 자신의 소설이 ‘절대적으로 공학적’이라고 강조하지만 SF소설이라고 굳이 분류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다. 같은 소설의 이 구절로 대신하면 될까. “왜 그걸 자연철학이라고 부르는지 난 모르겠어. 그냥 일종의 신학 수업이라고 인정해버리면 될 텐데”라는 구절을 “왜 테드 창의 소설을 SF소설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어. 그냥 좋은 소설이라고 하면 될 텐데”라고 말이다. 그는 이 한권의 단편 모음집에서 언어에 대한 고찰, 종교에 대한 성찰, 자본주의와 계급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변주해낸다.
그리고 2017년. 드디어 그의 원작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컨택트>를 만났다. 극장에서 내 상상력과 감독의 상상력을 비교하게 됐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감독에게 거의 고마움을 느꼈다. 체경과 주변 풍광의 장광은 별도로 하더라도 ‘흘려 쓴 낙서 같은 느낌의 문자’와 ‘물을 뒤집어쓴 개가 후드득 몸을 흔들어 털가죽에서 물을 떨쳐내는 소리’를 어떻게 더이상 잘 표현해낼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소설에서 보여준 시니컬한 문장들은 좀 묻혔고, 루이스가 끌어안아야 할 ‘비극적인 미래’는 할리우드의 모성에 대한 낭만적 해석으로 가려져 매우 아름답게 비쳤다. 물론 원작 자체가 낭만적 해석을 줄 여지가 다분하긴 하다. 쉽게 말해 루이스에게 보여준 미래가 딸의 따스한 체온, 성장의 아픔과 기쁨, 그리고 비극적 최후가 아니라 미래의 남편의 데이트 폭력, 강간, 낙태, 회복할 수 없는 빈곤 같은 것이었다 해도 기꺼이 그 길을 다시 선택할 수 있었을까, 라고 나는 상상하는 것이다. 내 상상력이 너무 가혹한 걸까.
테드 창 소설의 또 다른 장점은 가상의 장치를 설명하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든 읽는 순간 즉각적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운명이 적힌 ‘세월의 책’의 간극, 즉 그 모순일 것이다. 자신의 운명이 적힌 ‘세월의 책’을 읽는다면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각각의 운명이 정해졌다면 그래서 세월의 책에 기록됐다면, 그것을 본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기에 비극적 운명과 그것을 끌어안는 인간의 자유의지만큼 좋은 것은 없겠지. 이것은 독자의 숙제로 남겠지만 비교적 명료하게 정의를 내려준 것도 있다.
“벌써 무슨 얘긴지 알고 있는데 왜 나더러 읽어달라는 거야?”
“얘기를 듣고 싶으니까.”
이야기의 속성에 대해 이만큼 간결하게 말해준 작가가 또 있을까?
읽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테드 창 어학사전
■ 호르몬 k 뇌손상을 회복시켜주는 호르몬으로 지능을 향상시킨다. 가벼운 뇌졸중 환자보다는 더 큰 손상을 입어야 지능이 더 많이 향상된다.
■ 호문쿨루스 정자인간. 언뜻 보면 거품 같지만 극히 미세한 정자인간으로 둥그런 머리와 머리카락 같은 팔다리가 서로 들러붙어 희끄무레하고 조밀한 거품을 이루고 있다.
■ 칼리(칼리아그노시아) ‘미’를 느낄 수 없는 프로그램. 칼리를 실행하면 사람 얼굴의 느낌은 살아 있지만 미추의 차이를 느낄 수 없게 돼 그로 인한 차별적 행태를 막을 수 있다.
■ 명명학자 자동인형에 이름을 호명해 새로운 생명체로 움직이게 하는 직업.
■ 체경(looking glass) 외계인의 기계장치. 미국 전역에는 9개, 전세계에는 112개가 있다. 쌍방향 통신장치로서 기능하고, 궤도상의 우주선들과의 연락에 쓰인다.
■ 헵타포드 외계인을 지칭. 그리스어에서 7을 뜻하는 헵타와 발을 뜻하는 파드를 합친 조어.
■ 어의문자 인간 언어의 문자와 대략 조응하는 헵타포드의 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