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의 블랙 위도우 캐릭터처럼 액션 연기를 요하는 역할을 자주 맡아왔다.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이하 <고스트 인 더 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원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즐기는 편이다. 내가 하는 일의 가장 재미있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카메라가 돌고 있는 동안에 나에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 물론 기나긴 준비 과정이 힘들고 지루할 때가 있지만 그 모든 준비 과정을 실전에 도입해 사용할 때면 짜릿하다.
-메이저를 연기하기 위해 어떤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나. 마블의 블랙 위도우나 <언더 더 스킨>의 외계인 역시 복합적인 인물이었는데, 이처럼 과거에 맡은 역할이 도움이 되기도 했나.
=메이저는 유니크한 인물이다. 그녀의 머리 뒤쪽에는 아홉 가지 다른 모습들이 숨겨져 있다. 메이저의 자아가 내면에 잠재된 ‘어둠’에 끌려가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 작품에서처럼 캐릭터의 내면을 깊숙이 파고든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오랫동안 자아를 찾기 위해 여정에 오르는 캐릭터를 연기해온 것 같은데, 그건 아마도 나 자신의 일부가 투영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감독과 처음부터 같은 비전을 가지고 이 작품에 참여했나.
=나는 원작 애니메이션을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원작과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챙겨보며 철학적인 아이디어나 질문거리를 많이 얻게 되었다. 원작을 보면 실존주의와 테크놀로지에 대한 내용이 많은데, 솔직히 이 캐릭터 자체의 여정을 완벽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부분적인 여백을 메우는 정도랄까. 그래서 메이저가 세 가지 다른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아이디어를 냈고, 루퍼트 역시 그 아이디어에 매력을 느꼈다. 이번 작품은 말하자면 메이저의 성장통을 다룬 영화다. 내가 연기하는 메이저는 10대 소녀다.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기억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소녀가 여인이 되는 과정을 다룬다. 메이저가 인류를 보호해야 하는 일종의 히어로로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이야기라고 할까.
-영화를 위해 사전 준비 작업을 많이 했다고 들었는데, 어떤 방식으로 캐릭터에 접근했나.
=상당히 철학적인 면으로 접근했다. 원본능(ID)과 자아, 초자아가 있지 않나. 메이저 역시 이 세개의 자아로 구성돼 있는데, 남들이 생각하는 자신과 실제 자신, 자신이 되고 싶어 하는 모습이 서로 투쟁을 하게 된다. 매 순간 어느 자아가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지 생각하며 캐릭터에 접근했다. 기계로 작동되는 몸속에 인간의 두뇌가 들어갔을 때 기계 눈으로 본 세상은 어떻고, 움직임은 어떠할지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해봤다.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만일 자신을 더 나은 모습으로 디자인할 수 있다면, 뭘 바꾸고 싶은가.
=난 괜찮다. (폭소) 나 자신에 만족한다. 대부분의 파트가 잘 작동하고 있으니까. 모두가 각자에게 맞는 모습으로 디자인이 되어서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편이다. 가끔 팔이 한두개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봤다. (웃음)
-기타노 다케시 등 일본 배우들과의 작업은 어땠나.
=다케시와의 작업은 특이했다. 그는 영어를 잘 못했고, 나 역시 일어를 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하는 장면을 통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유대가 얼마나 강하고 신비로운지 체감할 수 있었다. 문화적 배경은 물론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두 배우가 공감대를 형성하여 교감할 수 있었다. 우리만의 언어를 찾았다고나 할까. 멋진 경험이었다. 세트장에 함께 있을 때에도 재미있었다. 극중 그의 사무실에 다도 세트가 있었는데, 다케시는 루퍼트와 나를 앉혀놓고 제대로 다도하는 방법을 20여분 동안 설명해주더라. ‘어메이징’한 경험이었다.
-공개된 일부 장면들을 볼 때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일본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한 작품이니만큼 문화적인 특성을 고려하는 노력이 있었는지.
=루퍼트는 프로덕션을 시작할 때부터 다문화를 대변하는 인물들이 등장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번 작품은 그가 상상한 미래의 이미지다.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이민해 정착할 수 있는 미래의 새로운 대도시다. 다양한 문화가 접목돼 있는. 어떻게 보면 서로 잘 맞지 않는 다른 파트가 얽혀 있는 형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가 이야기하려는 내용에 어울리는 비전이었기 때문에 나 역시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시각적으로도 흥미롭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극중 메이저가 착용하고 나오는 보디 슈트는 많이 불편했을 것 같다.
=촬영장에서 모두가 보디 슈트를 ‘보디 콘돔’이라고 불렀다. 거기다가 살색이었으니까. (폭소) 처음 착용할 때 몇 차례는 어려웠다. 슈트를 입고 땀을 많이 흘려서 아마도 10파운드 정도 살이 빠진 것 같다. 그래도 격투 장면 등에서는 고무에 가까운 재질이라 엑스트라 패딩 같은 효과를 줘서 도움이 됐다. 맞아도 덜 아팠다고나 할까. 장단점이 있더라. 처음 입고 세트장에 나갔을 땐 모두 “워우” 하면서 시선을 피하곤 했는데, 이틀 정도 지나니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다들 하던 일만 하고 눈길 한번 안 주더라.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