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배우는 <화녀>보다 <충녀>에서 더 멋진데, 혹시 영화 바꿔도 되나요?”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캐릭터 하나만 고르는 건 너무 잔인한데, 주인공 4명을 다 하면 안 되나요?” “1970년대, 1980년대, 그렇게 시대별로 3명 꼽는 것도 힘든데 한국영화 역사 전체에서 3명이라니, 너무 힘듭니다.” 어느덧 창간 22주년 1100호, 특집은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여성 캐릭터다. 먼저 설문에 응답해주신 200여명의 영화인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앞서 인용한 것처럼 설문에 답하기 위해 지난 한국영화를 통째로 복습하는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개인적으로도 무척 흥미로운 지점이 많았다. 특집에 참여한 이화정, 이주현, 송경원, 정지혜 기자가 세세히 논평했다시피 영화현장 종사자와 영화평론가의 의견은 여기서도 갈렸고, 답변자 저마다 취향과 지향 사이에서 충돌하는 느낌이었다. 가령 공동 1위로 꼽힌 <마더>와 <친절한 금자씨>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같은 김기영 감독의 작품이라도 <하녀>와 <화녀>와 <충녀> 사이에서 무게중심의 이동이 그러했다.
아무래도 아쉬운 건, 최고의 페미니즘 캐릭터인지 최고의 연기 캐릭터인지 ‘최고’라는 표현이 담고 있는 모호성에 대한 지적을 비켜갈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저마다 시야각이 가까운 시대로 좁혀지다보니 1990년대 이전까지로 확장하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그 지점에 대해서는 송경원, 정지혜 기자의 보론을 참고해주시길 바란다. 아무튼 “설문 답장을 고민하며 문득 어떤 영화가 떠올라 오랜만에 다시 찾아보게 됐는데, 당장 리메이크 시나리오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한 감독의 얘기가 인상적이었다. “한국영화에 멋진 언니들이 정말 많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오히려 옛날에 그런 영화들이 더 많았다. 어쩌면 지금이 그때보다 더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다”는 다른 제작자의 얘기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혹시나 독자 여러분들도 그런 즐거운 고민의 시간을 갖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온라인상으로 독자 집계도 가질 예정이니 많이 참여해주시라.
한편 <옥자>의 봉준호 감독이 후반작업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가운데, 창간 기념호 단독 인터뷰로 특별한 시간을 내주어 역시 깊은 감사 인사를 전한다. 창간기념호 부록 또한 20주년의 송강호, 21주년의 박찬욱에 이어 봉준호 별책부록이다. 다만 배송과 유통 문제로 정기구독자와 더불어 온라인 도서사이트 예스24를 통해서만 한정판 패키지로 판매될 예정이라 양해를 부탁드린다. 이번주 주말인 4월 8일(토) 혹은 9일(일)에 구매 페이지가 뜰 예정으로 준비수량 소진 시 판매는 종료된다. 또 올해 연기 인생 60년을 맞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특별전을 여는 배우 안성기도 만났다. <씨네21> 역사상 가장 자주 표지 주인공이 되었던 배우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김영진, 최은영 평론가는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중심으로 최근 한국영화의 어떤 단면을 들여다보는 소중한 원고를 보내왔다. 장영엽, 김현수 기자는 각각 ‘에세이필름’과 ‘VFX’라는 당대 영화의 서로 다른 두 얼굴을 사유해보았다. 또 김성훈 기자가 주축이 되어 <씨네21>과 <한겨레21>이 모태펀드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추후 지속적으로 공동 취재하기로 했다. 창간 22주년을 맞아 여전히 세상은 넓고 영화는 많고 할 일은 끝이 없다고 느낀다. 그렇게 남은 1년도(벌써 4월!) 열심히 달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