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특별시민>의 특별한 점
2017-04-26
글 : 송경원
정치인이라는 이상하고 흥미로운 생물을 바라보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대선을 코앞에 둔 지금 서울시장 선거를 소재로 한 <특별시민>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건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선거판이라는 소재, 최민식과 곽도원 등 대표배우, 이런 몇 가지 조합을 거치면 대략적으로 예상되는 그림이 있다. 하지만 <특별시민>은 정치영화의 전형적인 틀을 조금씩 비켜간다. 기대와 달라서 실망할 수도 있고, 뚝심 있는 전개에 만족을 표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건 이 영화가 최근 찍어내듯 쏟아지는 기획영화와는 확실히 다른 면모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특별시민>의 특별한 점이 무엇인지, 박인제 감독의 인터뷰와 함께 살펴봤다.

부패한 정치인, 음모가 난무하는 선거판,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력들, 오늘의 아군이 어제의 적이 되고 피아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혼전. 어딘지 익숙한 그림이다. <특별시민>은 서울시장 선거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정치쇼의 민낯을 선보인다. 이미 수차례 봤던 이야기, 닳고 닳은 소재라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되짚어보면 한국영화에서 정치와 선거를 전면에 내세운 한국영화는 의외로 그리 많지 않다. 대신 최근 몇년 사이 어떤 형태로든 한국영화에 녹아들어간 소재는 정치의 부패와 관료사회의 무능, 마비된 시스템에 관한 지적들이었다. 아마도 <특별시민>을 보며 일말의 기시감이 드는 건 이와 같은 소재의 부분적인 유사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선거를 소재로 삼는 순간 필연적으로 나쁜 놈들이 나와서 정치판을 활보하고 아수라판을 만드는 또 한편의 정치영화, 사회풍자영화처럼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특별시민>은 최근 한국 장르영화들이 재탕, 삼탕 반복하는 현실 반영이나 풍자와는 다른 면모들을 보인다. 우선 부분적인 디테일이 살아 있다. 적어도 최근 한국영화들이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1차원적으로 투영하던 현실 모사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해석의 고민들이 묻어난다. 물론 완벽히 만족스럽다고 하긴 어렵다. 하지만 틀을 따를 수밖에 없는 상업기획영화의 한계를 감안했을 때 일말의 가능성을 부분적으로나마 보여준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반갑다.

현실과 장르영화라는 두 가지 기시감

사실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소재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선거판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목을 사로잡는다. <특별시민>의 가장 강력한 힘은 타이밍과 소재, 그리고 소위 말하는 연기 잘하는 배우들에게서 온다. 이중 타이밍은 기획했다기보다는 공교로운 측면이 있지만 그만큼 기시감이 짙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필연적으로 이 영화를 보는 한국 관객이라면 곧 닥쳐올 대선, 또는 지나왔던 정치적 상황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영화의 의도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한편으로는 굉장한 강점이지만 부담감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상상력을 발휘하든 현실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특별시민>은 꽤 영리한 선택을 한다. 의식적으로 반영하려고 하거나 애써 피하기보다는 선거판에서 일어날 법한 상황과 현실적인 캐릭터라는 상식선에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이다. 적어도 이 이야기는 말이 되고, 영화 속 인물들은 고민을 한다.

변종구(최민식)는 뒷배 없이 맨손으로 정치를 시작해 최초의 3선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정치 9단이다. 그에겐 안팎으로 적이 많다. 치고 올라오는 상대편 서울시장 후보 양진주(라미란)의 기세를 꺾어야 하는 한편 자신이 소속된 정당인 새자유당 내에서 정치적 견제에 시달린다. 아군 캠프 선거대책본부장인 심혁수(곽도원)는 일시적으로 한배를 타고 있지만 당내 대선 경쟁자인 김 대표(김홍파)의 심복이다. 심혁수는 변종구와 180도 다른 인물이다. 공장 노동자 출신에서 지금의 자리에 오른 변종구와 달리 검사 출신으로 정치에 입문한 엘리트다. 그렇다고 대척점에 선 인물이라고 보긴 힘들다. 본질적으로 변종구와 심혁수는 정치적 권력욕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향한다. 다만 서 있는 위치와 입장이 다를 뿐이다. 영화는 서울시장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젊은 광고전문가 박경(심은경)이 변종구 캠프에 합류하며 시작된다. 요컨대 이 영화의 주인공은 선거판이라는 무대 그 자체이며 한판 쇼를 벌이는 배우는 변종구 및 정치인들, 그리고 박경이라는 청년이다. 관객은 박경의 시점에 이입해 정치라는 변화무쌍한 생물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특별시민>에는 두 가지 기시감이 작동한다. 하나는 현실과 영화의 비교, 나머지 하나는 정치풍자를 소재로 한 여타 다른 영화들과의 비교다. 현실과 비교했을 때 서울시장 선거판은 강렬한 사실감을 자아낸다. 다행스러운 건 현실을 녹여내는 방식이 1차원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가 경험한 정치 현실들, 뉴스에서 봤던 유사한 장면들이 수차례 반복되지만 한편으론 정확히 일대일로 조응하진 않는 게 중요하다. 가령 변종구가 공장 부지에서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는 장면을 보며 아마도 이재명 성남시장의 대선 출마 선언을 떠올리겠지만 이는 현실을 그대로 모사하고 싶었던 장면이라기보다는 변종구라는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더 효과적인 장치로 작동한다. 실제로 박인제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한참 전에 만들어놓은 장면인데, 이재명 시장의 출마 선언을 보고 도리어 난감했다”고 밝혔다. <특별시민>이 현실을 반영하는 방식은 대체로 이와 같다. 특정 현실을 보고 그 화면을 고스란히 차용한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정치와 선거라는 큰 판을 구상하고 그 안에서 합리적(혹은 한국적)으로 움직이는 인물을 구상한 쪽에 가깝다. 그간 한국의 정치 현실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왔는지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그럴싸한 판을 깔았을 뿐, 현실을 판화처럼 찍어낸 것이 아니란 말이다.

반면 <내부자들>(2015)부터 <마스터>(2016), <더 킹>(2016)까지 최근 일련의 한국영화들은 소재를 이야기의 부품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현실 ‘반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인용’이란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김영진 평론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스크린 위에 물리적 현실을 재현하려는 노력 대신 근사한 전시적 이미지에 봉사하는 기능적 숏들만으로도 서사가 완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안이함의 소산”(<씨네21> 1090호, 김영진의 영화비평 ‘최근 한국영화의 낭비되는 이미지 문법에 관하여’)이다. 따라 해야 할 장면을 먼저 정해놓고 인물과 캐릭터를 가져다놓으니 때로는 겉돌고, 때로는 기능적으로 소비된다. 조금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말이 안 된다. 근사한 이미지 몇개를 이어붙이곤 리얼리티라고 칭하며, 현실에서 퍼온 에피소드를 기계적으로 넣었다고 할 수도 있다. 반면 <특별시민>은 적어도 말은 된다. 이 영화의 본질은 현실 반영의 정치극이라기보다는 권력을 테마로 한 캐릭터 드라마에 가깝다. 그걸 가장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무대가 선거판이었을 따름이다. 그러다보니 1차적으론 인물과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흐른다. 2차적으론 굳이 현실의 특정 에피소드를 애써 모사하지 않아도 그와 유사하거나 비슷한 범주에 있는 일들이 절로 연상된다. 상식적인 선에서의 기시감이라고 해야 할까. 한 단계 에둘러가는 현실과의 유사함은 영화 속 풍자를 훨씬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장치다. 제대로 된 풍자라면 현실을 베껴오는 것이 아니라 화자의 해석이 필요하다. <특별시민> 속 몇몇 장면들이 현실을 연상시키는 방식에는 그걸 위한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확보되어 있다.

디테일이 힘이다

<특별시민>은 기억에 남는 대사,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있는 영화다. 전체적인 드라마와 인물의 행동들이 말이 되는 흐름을 갖추고 난 뒤 영화가 열심히 채워넣는 것은 디테일이다. 관객이 즐기는 것 역시 깨알 같은 장면들이다. 가령 영화 초반 선거 캠프에 뛰어든 박경이 자신의 역량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기발한 TV광고 아이디어를 내는 장면은 2003년 아르헨티나 대선 후보 리카르도 로페스 무르피의 사례를 차용했다. 정치판의 신인이라는 위치와 기발한 아이디어가 맞물리며 박경의 시점을 따라가도록 돕는 재치 있는 에피소드라 할 만하다. 그 밖에 캐릭터마다 인상적인 대사나 장면들을 적어도 하나 이상은 배치하고 있다. 예컨대 변종구의 출마연설 장면에서 정치인 변종구의 뒷덜미에 맺힌 땀방울을 잠깐 보여주는데, 변종구의 권력욕과 무관하게 그 순간만큼은 열정 등의 진심이 묻어난다. 답답한 마음에 무당을 찾아가 “당신이 진짜라는 걸 사람들이 몰라”라는 말을 들을 때의 변종구의 모습은 그야말로 인간적이다. 그 순간에야 인간 변종구의 얼굴이 나온다는게 이 영화의 ‘웃픈’ 지점이라 할 만하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비린내 나는 정치인들을 단순한 악역이나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특별시민>은 정치에 대한 질문이라기보다는 정치인이라는 흥미로운 생물에 대한 캐릭터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이상한 생물이다. 권력을 왜 얻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지워지고 어떻게 얻을 것인가에 집중할 때 정치인은 괴물이 된다. <특별시민>은 개인의 부도덕함은 능력과 별개의 문제일 수도 있음을 알려준다. 변종구는 공권력을 사유화하여 함부로 사용하고 있지만 동시에 싱크홀이라는 재난이 발생하면 주변의 눈치를 보는 차원에서라도 가장 먼저 현장으로 달려갈 줄 아는 감각을 지닌 인물이다. 재선에 성공하고 3선에 도전할 만큼 나름 행정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목격하는 건 재난 현장에서 몰래 고급 도시락을 시켜 먹는 그의 민낯이다. 영화는 그걸 인간적인 모습이라고 포장하거나 부도덕한 행위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변종구, 심혁수라는 흥미로운 괴물들을 보여주고 이들의 상대편에서 자신의 관점을 키워나가는 박경을 배치한다.

<특별시민>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자고 계도를 하기보다는 그 비틀린 캐릭터들의 욕망을 충실히 표현하고 관찰하는 영화다. 박인제 감독은 전작 <모비딕>(2011)에서도 그랬지만, 각 캐릭터의 심리나 성격을 드러내는 디테일한 소품들을 자주 활용하는 편이다. 변종구와 심혁수가 함께 있는 장면에서 꼭 등장하는 강아지는 아마도 정치인과 개를 연결시키는 듯하고, 심혁수를 상징하는 구두라는 소품 역시 겉모습에 집착하고 보기엔 그럴싸하지만 일그러진 일면이 있는 그의 캐릭터를 압축하고 있다. 그 밖에 선거 현수막의 눈 부분을 선거사무소 창밖에 배치한 숏이라든지, 인물의 상황에 따라 부감과 앙각을 구분해서 배치하는 숏 등은 개별 장면에도 의미를 부여하려는 감독의 노력을 읽어낼 수 있는 순간들이다. 당연한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최근 한국영화들의 면면을 다시 한번 확인하라고 권하고 싶다. 서사적으로 전혀 관계없는 장면들을 단지 멋지다는 이유(혹은 장르적인 변명)를 들어 무리하게, 맥락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상대적으로 <특별시민>은 개별 숏 하나에도 캐릭터성을 부여하는 등 디테일에 신경을 쓰고 있다. 다소 도식적일지라도 매 장면과 캐릭터마다 의미화된 소품과 장면들을 부여하는 건 드라마와 캐릭터들을 촘촘한 그물처럼 엮어나가는 바탕이 된다.

기획영화의 한계와 불균질함

물론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중반의 사건을 기점으로 영화의 톤이 불균질하게 흩어진다는 점이다. 초·중반까지가 박경과 변종구의 상승을 그린 드라마라면 후반은 위기와 갈등을 돌파해 나가면서 민낯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영화가 애초에 맞추려 했던 초점이 흐트러진다는 사실이다. 캐릭터의 변화에만 집중해서 본다면 어느 정도 납득하고 따라갈 수 있겠지만 장르적으로 전혀 다른 영화 두편이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인물의 자연스러운 반응과 변화를 따른다기보다는 마치 정해진 결말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 것처럼 무리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박경의 성장담이라는 메인 플롯이 점점 주변으로 밀려난다는 인상을 주는 게 아쉽다. 물론 이건 최민식과 곽도원의 대결이라는 흥미진진한 볼거리에 좀더 무게를 싣기 위함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문제다. 나름 현실적으로 깔아둔 인물 설정, 균형잡힌 캐릭터의 배치들이 결국에는 한쪽으로 쏠리면서 기껏 배치한 캐릭터들(특히 몇몇 여성 캐릭터)이 그저 배경에 가까운 역할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아마도 모든 문제의 시작은 변종구의 약점을 설정하면서 발생하는 것 같다. <특별시민>은 반전이 없다는 게 반전인 영화다. 적어도 말이 된다는 게 강점이지만 동시에 예상을 한치도 빗나가지 않는다는 건 후반의 흥미를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원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시민>은 현실을 조악한 판화처럼 찍어내는 최근의 한국영화들에 비해 어여쁜 부분들이 있다. 기획영화라는 틀, 장르영화가 바라는 클리셰에 온전히 기대지 않고 감독이 하고자 하는 바를 어느 정도 달성하고 있다. 정확히는 한국적인 정치 상황들에 일대일 대응하지 않고 감독과 배우라는 필터를 거친 후 녹여냈다. 중요한 건 작금의 한국 사회가 자연스럽게 배어난다는 ‘인상’이다. 덕분에 인물이 갑자기 사라지는 등 비중의 불균형은 있을지언정 영화에서 겉돌진 않는다. 무엇보다 배우의 이미지만 따와 파편적으로 소모시키진 않는다는 측면에서 장르보다는 감독의 개성과 시선이 먼저 다가오는 영화다. 물론 고르지 못한 장면의 완성도나 전개의 불균질함이 아쉽긴 하다. 아쉽다는 건 좋았던 부분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뜻이다.

기획영화의 홍수 속에서 감독들의 이름이 점차 희미해진다는 걸 떠올려보면 <특별시민>이 부분적으로 성취한 고집 혹은 고지식함은 확실히 칭찬받아 마땅한 부분이다. 이 정도에 만족해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긴 하지만, 솔직히 요즘 이 정도로 이야기와 캐릭터라는 기본에 충실한 영화를 만나기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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