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건씨를 대통령으로 뽑아달라고 말해보세요.” “그가 후보자로 나오면 지지하시겠습니까?” 이준익 감독의 황당한 질문에 고소영이 이내 손사래를 친다. “아니요. 절대요. 절대 안 돼요. 남편으로, 아이 아빠로는 좋은 점이 많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는 아니죠.” 단호한 거부 멘트와 함께, 스튜디오가 금세 웃음바다가 된다. “지지하는 후보가 탈락하면요?” “투표하지 마세요, 라고 한번 해보세요.” “설마 그날 투표 안 하시는 거 아니에요?” 멘트를 유도하는 이준익 감독이 카메라 앞에 선 이들을 향해 무리한 질문을 쉴 새 없이, 서슴없이 던진다. 그 가운데 “투표 독려해야지. 의무니까! 투표는 권리 이전에 의무니까”라고 힘주어 말하는 배우 이순재의 발언이 무게를 더한다. 선거 때마다 지지한 후보의 당선률이 저조했다는 류준열은 이번만큼은 꼭 “내가 뽑은 대통령”이 당선되길 바란다며, 투표 참여를 약속한다. 세상 믿음직한 류준열의 목소리로 “이 영상을 다섯명의 지인에게 공유해주세요”라고 말하자 없는 지인도 만들어야겠다 싶어진다. “이준익 감독님 부름에 달려왔다”는 류준열처럼, 이번엔 그의 뒤를 이어 래퍼 비와이가 가세한다. “나의 소신을 표현하는 것이 랩이죠. 투표도 랩과 마찬가지로 내가 가진 생각을 표현하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럼 랩으로 선거 독려 한번 해주면 어떨까요? 제작진의 즉석 요청에 그가 라임이 딱 맞는 즉흥랩을 선사한다(부디 편집에서도 살아남길!).
지진희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지 않더라도 투표 결과에 따르겠다. 다른 분들도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안 되더라도, 그런 마음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2017년 4월 16일, 강남의 한 스튜디오. 마침 다시 또 4월 16일이다. 5월 9일 19대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둔 주말. 투표를 독려하는 영상 ‘0509 장미대선 프로젝트’의 촬영을 위해 배우 고소영을 비롯해 이준익 감독, 배우 이순재·박근형·지진희·류준열, 래퍼 비와이 등이 오전부터 참여해 선거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의견을 가감 없이 피력했다. 일주일 내내 열린 스튜디오를 다녀가는 이들만 해도 무려 38명. 한재림·변영주·이해영 감독과 작가 노희경, 배우 배종옥·김성령·이병헌·정우성·배성우·이서진·조진웅·고수·진구·박정민·박서준·고아성·이준·한예리 그리고 일반인 참여자가 함께한다. 이들 모두 성별과 나이, 지지정당을 초월해 모두가 유권자라는 개념 아래 구성되었다. 영상에는 참여하지 않은 이들도 응원을 보탰으며 여운혁, 나영석 프로듀서도 아이디어를 전달해주었다.
고소영
“소외된 여성 유권자, 아이들을 안심하고 키울 수 있는 미래를 위한 배려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꼼꼼히 체크하고 있다.”
이순재
“우리 젊은이들의 역량을 살려줄 리더십이 필요하다. 반대한 사람까지 지지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정책을 실현하기를.”
‘0509 장미대선 프로젝트’는 주최도 없고, 제작비 지원이나 배후 단체도 존재하지 않는, 스스로 자생해서 여기까지 온 투표 독려 영상이다. 2012년 미국 대선 당시 ‘No Vote, No Voice’란 주제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비롯해 배우 해리슨 포드·톰 크루즈·윌 스미스·줄리아 로버츠·저스틴 비버 등 할리우드 영화인들이 참여해 만든 영상에서 모티브를 얻어, ‘심각하지 않게, 재밌는 영상으로 민주주의에서의 투표가 즐거운 행사가 되도록 하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대통령 탄핵 이후, 새로운 정치,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는 유례없는 선거인 만큼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데 뜻을 같이한 이들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명하고 모여들었다. 총대를 멘 사람은 이준익 감독과 BH엔터테인먼트의 손석우 대표, 그리고 노희경 작가다. 한 사람의 아이디어가 씨앗이 되어 전해지고, 지인이 참여하고, 또 그 뜻을 서로에게 전달하면서 생각보다 일이 커졌다. 출연도, 프로젝트 디렉터도, 영상 촬영 작업도, 스튜디오 대여도, 투표도장이 프린트 된 티셔츠 제작 하나까지도 모두 십시일반 재능기부로 이루어졌다. “여러분의 세상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조금씩 바꿔봅시다.” 류준열의 당부 멘트처럼, 한 사람의 투표가 그 작은 시작이다. ‘0509 장미대선 프로젝트’ 영상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SNS를 비롯해 유튜브, 페이스북 등을 통해서 4월 25일 공개된다.
류준열
“여러분에게 잘 보이려 하는 후보에게 투표하시라. 후보 시절이 아니라 당선 후, 임기 내내 애쓰고 땀 흘릴 그런 후보에게.”
박근형
“상식적인 사람을 뽑자. 이번엔 정신 똑바로 차리고 똑똑하게 찍어야 한다. 그러려면 똑똑한 국민이 되어야 한다.”
비와이
“지금까지 살아온 걸 정답화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구세대적인 사고방식에서 탈피, 이제 바뀌어야 한다.”
“이 투표 결과가 앞으로 100년의 시작” 이준익 감독
-현장에서 할리우드 선거 독려 영상 속 스티븐 스필버그처럼 직접 총괄 디렉팅을 하고 있다.
=스필버그 역할은 아니고, 나도 한명의 참가자일 뿐인데 현장에 와보니 현장 진행을 해줄 사람이 없는 거지. 그러니 하는 수밖에 없다. (웃음) 2012년 대선 때도 감독조합에서 투표 참여 캠페인 영상 ‘Vote & Change’를 만들었다. 그때는 감독 박찬욱·김지운·류승완·봉준호, 배우 정진영 등과 함께 참여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협조로 홈페이지, SNS 등을 통해 이번 영상을 배포한다.
-다양한 성별과 연령대의 감독, 배우, 작가 등이 참여한다.
=뻔하지 않게 재밌는 영상을 만들어보자 했는데, 그렇다고 재미가 너무 앞서다보면 좋은 의도가 호도될 수 있다. 특정 세대나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참여하면 좋겠다 싶더라. 80대의 이순재 선생님부터 20대의 비와이까지, 영화인, 래퍼도 다같이 함께하자, 이런 의도로 참여를 유도했다.
-10명 정도의 참여를 예상했는데 참여 인원만 38명에 달한다. 호응이 컸다고 들었다.
=이번 선거는 대통령 탄핵 이후 전 국민이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는 자각으로 임하고 있다. 우리 모두 탄핵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동안 누적된 원인이 무엇인지 깊이 있게 담론화할 필요가 있는데 선거 열풍에 그 본질이 묻힐까 우려된다. 역사영화에 관심이 많고 역사영화를 만드는 입장으로서, 그 관점을 더 확장해서 이번 선거에 임하려 한다. 탄핵에 이르기까지가 지난 100년 동안의 국가적 트라우마를 압축하는 것이었다면, 탄핵 이후 투표 결과가 앞으로 대한민국 100년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어떤 후보를 지지하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추상적인 성장론, 대통합 등의 거대담론보다는 실생활에 반영되는 상식적인 체계에 대한 해답을 구할 수 있는 후보가 필요하다. 인사정책이든 한·일관계든 한·미관계든 대북관계든. 균형속에서 일상의 평안함을 찾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행복은 성공으로 가늠되는 게 아니라 일상의 평화가 기초 단위인데, 지난 몇년간 대한민국에는 그 일상이 깨진 채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우리 모두 큰 기대가 없다. 제발 상식적인 사회에서 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