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에이리언: 커버넌트>가 내놓은 해답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이슈들
2017-05-17
글 : 송경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38년 만에 답을 내놓았다. 1979년 첫선을 보인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은 SF 호러라는 장르적 외피와는 별개로 인류의 기원, 외계생명체의 정체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이후 여러 감독의 손을 거치며 본격적인 장르영화의 길을 걸었던 시리즈가 먼 길을 돌아 리들리 스콧의 손에 돌아왔을 때, 리들리 스콧은 자신이 제시한 질문의 답을 하기로 결심했다. <에이리언> 프리퀄 3부작인 <프로메테우스>는 그렇게 시작했다. 프리퀄의 두 번째 영화에 해당하는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좀더 명확한 방식으로 답을 내놓는다. 동시에 오리지널 시리즈 1편인 <에이리언>의 장점을 취해 시리즈 전통 팬들을 향한 구애도 시작했다.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어떤 식으로든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영화다. 리들리 스콧이 제시하는 진화는 당신을 향한 또 하나의 질문이다. 당신은 이 새로운 에일리언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질문은 던져졌고 이제 직접 답을 찾아나설 차례다.

태초에 <에이리언>(1979)이 있었다. 에일리언은 느닷없이 불쑥 나타났다. 설명되지 않는 존재의 등장은 경이와 공포를 함께 안긴다. 외계생명체의 한 전형을 만들어낸 에일리언은 하나의 질문이었다. 어디서 왔는지, 목적은 무엇인지, 어떻게 탄생했는지 물음표에 둘러싸인 채 오직 압도적인 외형으로만 자신을 증명해온 미지의 생명체는 매혹적인 흡인력을 발휘했다. 관객은 H. R. 기거의 손끝에서 태어난 기괴하고 창의적인 디자인을 마주하며 페이스허거, 체스트버스터 등 이름을 붙여나갔다. 정확히 말해 그 이름들은 그들의 것이라기보다는 형태를 묘사한 우리의 감상에 가깝다. 에일리언이 장르의 바이블로 자리잡아가는 과정은 이와 같다. 관객은 미지의 존재에 열광하고 긴 시간 동안 자문자답하며 빈칸을 상상력으로 메워왔다. 왜냐하면 리들리 스콧이 내놓은 1편 이후 시리즈는 아무런 답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이리언>은 1편 이후 여전사 리플리와 외계인의 대결이라는 틀만 유지한 채 외형을 강화해왔지만 ‘당신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은 오랜 시간 공백으로 남겨져왔다. 그렇게 33년이 훌쩍 지난 2012년, 리들리 스콧은 드디어 <프로메테우스>를 통해 답을 내놓기 위한 여정의 첫발을 내딛었다. <에이리언> 프리퀄 3부작의 문을 연 <프로메테우스>는 일부러 ‘에일리언’이란 존재를 지우고 출발했다. 에일리언의 기원을 직접 더듬어가는 대신 인간을 만들었다고 믿어지는 엔지니어들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에일리언에 얽힌 비밀의 편린이 드러난다. <프로메테우스>는 인류의 기원에 대한 질문이자 새로운 종의 탄생에 관한 창세기라 해도 무방하다. 창조자와 피조물이라는 관계의 순수성을 부각시키고자 에둘러 먼 길을 돌아간 셈이다.

에일리언에 대한 질문과 답

프로메테우스호의 여정으로부터 10년 뒤 커버넌트호를 무대로 한 <에이리언: 커버넌트>(이하 <커버넌트>)는 제목처럼 본격적으로 에일리언에 얽힌 질문에 대한 답을 꺼내기 시작한다. 행성 개척 임무를 띤 커버넌트호는 새로운 행성을 찾아 7년10개월 동안 우주를 항해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인공지능 로봇 월터(마이클 파스빈더)는 홀로 깨어 긴 여정 동안 가수면 상태에 놓인 2천여명의 승객과 12명의 승무원을 돌본다. 어느날 예상치 못한 자기폭풍이 커버넌트호를 덮치고 선장이 미처 깨어나지 못한 채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중간에 깨어난 나머지 승무원들은 사고 수습을 하는 와중에 인근의 행성에서 온 정체불명의 신호를 포착한다. 선장 대행을 맡은 오람(빌리 크루덥)은 다니엘스(캐서린 워터스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근의 행성이 개척지로 적합한지 탐색하기로 결정한다. 그곳에는 미지의 위협과 예상치 못한 존재가 커버넌트호 승무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리들리 스콧의 구상에 따르면 <커버넌트>는 <에이리언> 프리퀄의 3부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프로메테우스>와 <커버넌트> 사이에는 10년간의 공백이 있으며 아마도 2편은 이 공백을 메울 것으로 예상된다. 두 영화 사이 시간의 간극을 잇는 존재는 1편에 등장한 인공지능 로봇 데이비드(마이클 파스빈더)다. 10년 전 엘리자베스쇼(누미 라파스)와 데이비드는 엔지니어의 우주선을 타고 엔지니어들이 살고 있는 행성으로 날아왔다. 커버넌트호의 승무원들은 엘리자베스 쇼가 남긴 전파를 따라 이 행성까지 찾아왔지만 개척지가 될 수 있으리라 여긴 행성에서 마주한 것은 데이비드가 보유한 제노모프 인자들이다. 이 생물학적 폭탄을 가지고 엔지니어들의 행성을 절멸시킨 데이비드는 벌써 10년째 제노모프의 인자로 다양한 생물의 창조를 실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커버넌트>는 필연적으로 <프로메테우스>와의 비교를 피할 수 없다. <프로메테우스>는 거대한 폭포 앞에서 의문의 액체를 마시고 몸이 분해되는 엔지니어 모습으로부터 시작한다. 분해된 엔지니어의 육체는 광대한 물에 녹아들어 DNA 조각들을 흩뿌린다. 이것이 인류의 기원인지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는다. 다만 <에이리언>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웅장하고 스펙터클한 시작임에는 분명하다. 말하자면 태초에 엔지니어가 있었다. 인류는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모든 의문의 답은 아닐지언정 해결의 실마리가 될 거대한 무언가를 목격하며 영화의 문을 여는 것이다. <커버넌트> 역시 오프닝 시퀀스가 영화 전체의 방향을 지시한다. 인류의 탄생을 제시했던 <프로메테우스>와 쌍을 이루듯 <커버넌트>는 인공지능의 탄생으로 문을 연다. 넓고 하얀 방, 웨이랜드 회장(가이 피어스)은 이제 막 만들어진 데이비드와 창조와 기원에 대한 문답을 주고받는다. 자신이 만들어낸 피조물의 성능을 확인하고 싶었던 웨이랜드 회장은 데이비드의 질문으로부터 섬뜩함을 느끼고 말머리를 돌린다. “저를 만든 게 아버지라면 아버지를 만든 건 누구인가요?”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의 창조자인 엔지니어를 찾다가 재앙을 발견한 이야기였다면, <커버넌트>는 스스로 창조자가 되고자 하는 인공지능 데이비드가 인류에 재앙이 될 제노모프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창조의 욕망은 엔지니어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인공지능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불멸자인 인공지능은 필멸할 수밖에 없는 창조주에게 의문을 느낀다. 당신이 사라지고 나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에이리언> 프리퀄 3부작이 이전 <에이리언> 시리즈와 결을 달리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에이리언> 시리즈가 인류에 기생해서 태어나는 제노모프라는 현상에 매달린다면, 프리퀄 3부작은 우리가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데 주력한다. <커버넌트>에 대한 평가도 이 지점에서 갈릴 수밖에 없다. <에이리언> 시리즈의 공백이 팬들에게 의외의 즐거움을 선사했던 것처럼 본래 믿음이란 답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 도리어 견고해지는 법이다. 첫발을 디딘 <프로메테우스> 때까지만 해도 답을 명쾌하게 주진 않았다. 프로메테우스호에서 홀로 깨어 있는 데이비드는 엘리자베스 쇼의 꿈을 들여다본다. 누군가의 장례식을 보며 하늘나라가 있느냐고 묻는 어린 쇼에게 아빠는 답한다. “아빠는 그렇다고 믿어.” 이어서 혼자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감상하던 데이비드는 로렌스의 머리 모양은 물론 대사도 따라한다. “비결은 뜨겁지 않다고 믿는 거야.” 그렇게 <프로메테우스>는 창조와 믿음에 대한 선문답으로 문을 열었다. 반면 <커버넌트>는, 적어도 데이비드는 이제 답을 낸 것 같다. ‘무엇입니까’라는 갈구에서 출발하여 ‘이것이다’라는 답을 차례로 제시하기 시작하는 <커버넌트>는 전작에 비해 다소 심심해 보인다. 해석의 여지를 주며 다양한 가능성을 품고 있었던 것과 달리 답이 명확해질수록 길은 좁아지는 느낌이다. 반면 38년 만에 이끌어낸 답이 그만한 깊이를 갖췄는지는 잘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커버넌트>는 제노모프의 탄생과 기원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전작에 비해 훨씬 다양한 제노모프들을 선보이지만 <에이리언> 시리즈에서 가장 먼 영화가 된 것 같다. 역설적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제노모프가 하나도 등장하지 않았던 <프로메테우스>가 얼마나 <에이리언>의 본질과 접촉하고 있었던 영화인지 새삼 깨닫는다. 비밀이 장막을 거두는 순간 (물론 예상 가능한 방식으로 거두는 연출적인 아쉬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비와 경이도 함께 연기처럼 사라진다.

리들리 스콧의 A.I.

그럼에도 <커버넌트>는 여전히 놀라운 지점들이 적지 않다. 우선 웅장한 화면을 통한 시각적 경이로움으로 충만했던 전작과 달리 오리지널 <에이리언> 시리즈의 투박함에 좀더 가까워졌다. 시간적으로는 프로메테우스호로부터 10년이 지난 시점이지만 과학탐사가 아닌 행성개척용 우주선인 만큼 전반적으로 디자인이 육중하고 둔탁해진 인상이다. 소위 리트로피팅(기계나 건물에 새로운 부품을 장착하는 것)이라 불리는 작업을 통해 오래된 모델, 고물들을 재활용해 만들어낸 아날로그적인 디자인을 재현한 것이다. 덕분에 커버넌트호의 조잡하면서도 단조로운 디자인은 1편의 노스트로모호와 어딘지 닮았다. “<에이리언>은 항상 우주의 트럭 운전사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는 리들리 스콧의 말처럼 시리즈의 본래 분위기로 돌아간 셈이다. 이처럼 둔탁하지만 실용적인 질감은 미술을 넘어 영화 전반으로 확장된다.

<프로메테우스>가 새로운 창세기를 써내려간 모험이었다면 <커버넌트>는 1편의 장점을 최대한 복원해 오리지널 <에이리언>을 새로운 형태로 부활시키려 한다. “<에이리언>은 일곱명이 어두운 실내에 갇히고 그중 한명을 제외한 모두가 죽는 상투적인 스토리다. B급영화지만 제대로 만든 B급영화는 크게 노는 습관이 있다. 나는 항상 <에이리언>이 A급 배우와 AA급 괴물이 나오는 B급영화라고 생각했다.” 감독의 비전은 마치 인간과 제노모프를 교배해 새로운 괴물 네오모프를 탄생시킨 데이비드처럼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영화를 탄생시켰다. <커버넌트>는 <프로메테우스>가 선보인 시각적 스펙터클을 구현하는 동시에 <에이리언>의 비주얼적인 충격도 재현한다. 기본적으로 괴수, 호러영화였던 <에이리언>의 기원을 상기시켜 잔혹한 살육 장면도 과감하게 포착할 뿐 아니라 네오모프라 불리는 새로운 에일리언의 엄청난 성장 사이클로 습격을 반복하며 관객의 혼을 빼놓는다. 게다가 그 방식이 훨씬 다양해졌다. <에이리언>의 대명사인 체스트버스터는 등을 뚫고 나오는 백버스터, 입을 찢고 나오는 마우스버스터 등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는 것이다. 초반 인간의 유한함과 인공지능의 불멸, 창조와 믿음의 문제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들을 제시하던 영화는 네오모프가 본격적으로 활보하는 중반 이후로는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관객에게 서스펜스의 사슬과 쇼크의 칼날을 휘두른다.

그렇게 정신없이 끌려가다보면 어느새 예상치 못했던 데이비드의 진면목이 불쑥 제시된다. 전반적인 구조는 1편으로 회귀했고, 다니엘스라는 새로운 여전사를 부각시키기도 했지만 결국 <커버넌트>는 마이클 파스빈더의 영화다. 데이비드와 월터 1인2역을 맡으며 인공지능 로봇이 나아갈 수 있는 두 가지 미래를 동시에 연기하는 마이클 파스빈더의 역량은 마치 1인극 사이코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흡인력을 과시한다. 시 <오지만디아스>를 읊조리며 엔지니어의 행성을 절멸시킨 데이비드의 모습은 이 영화가 SF가 아니라 <리어왕> 같은 고전이 아닌지 착각을 불러일으킬 지경이다. “내 이름은 오지만디아스, 왕 중의 왕. 강대한 자들아, 내 업적을 보아라. 그리고 절망하라!” 데이비드의 메인 테마라 할 수 있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신들의 발할라 입성>의 웅장한 선율 역시 캐릭터의 지향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한편 <오지만디아스>가 바이런의 작품인 줄 알고 있는 데이비드에게 사실 바이런의 절친한 친구였던 셸리가 쓴 작품이라고 정정해주는 월터 또한 상징적인 캐릭터다. 애쉬-비숍-콜-데이비드로 이어지는 시리즈의 인공지능 로봇은 전통적으로 알파벳순을 따르고 있지만 월터는 전혀 새로운 네이밍을 선보인다. 인간의 욕망과 갈망을 충실히 구현한 데이비드에 비해 월터는 감성이 절제된 대신 논리적이다. 창조라는 난제를 둘러싸고 이견을 보이는 두 인공지능의 대립은 <커버넌트>의 핵심이라 할 만하다.

<커버넌트>는 대단원이라기보다는 진화에 가깝다. <프로메테우스>가 닦아놓은 새로운 바닥을 딛고, <에이리언>의 정서와 구조를 끌어와 입힌 후 양쪽의 장점을 취해 새로운 결과물을 제시하려 한다. 리들리 스콧은 영화 속 데이비드처럼 창조를 시도한다. 그 결과물이 인간에게는 끔찍하지만 한편으론 순수한 생존욕의 생물이랄 수 있는 에일리언이 될지, 아니면 인간을 부정하고 멸시하지만 여전히 가장 인간적인 A.I. 데이비드가 될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이 시리즈가 <프로메테우스>가 선보인 창조의 경이에 미치지 못하는 건 분명해 보인다. 아마도 완성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익숙해짐의 문제일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비밀은 감춰져 있을 때 더 매혹적이다. 시리즈 전체의 질문에 구체적인 답을 제시할수록 점점 실망할 수밖에 없는 건 어쩌면 운명인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그리고 엔지니어에게 실망하는 데이비드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커버넌트>는 과거와 현재를 이종교배시켜 착실히 진화 중이다. 진화의 끝이 어디에 도달할지는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아쉬울지언정 경이의 빛이 크게 희미해지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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