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현장에서 전하는 70주년 칸국제영화제의 주요 이슈5
2017-05-24
글·사진 : 이화정
글·사진 : 이주현

“기자만 4500명 이상이 와서….” 저널리스트당 하나씩 배정된 메일박스가 누락된 것을 문의하자 돌아온 영화제쪽 답변이다. 프레스와 마찬가지로 마켓 관계자들도 올해 참가자가 대폭 늘어 혼선이 있다는 뒷이야기를 한다. 1946년 시작된 이래 70주년을 맞은 영화제는 예상치 못하게 증가한 게스트들로 한층 더 북적인다. 집행위원장인 피에르 레스큐르가 “우리는 도널드 트럼프 때문에 매일 놀라고 있는 만큼 북한과 시리아가 (영화제에)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기를 바란다”는 테러에 대한 우려는, 다행히 아직까지 기우에 불과한 듯 보인다. 영화제 초반을 강타한 이슈는 역시 스트리밍 서비스 기반업체인 넷플릭스의 영화제 수용에 대한 찬반 논란이다. 12일간 매일 밤낮, 극장에 자리를 잡기 위해 기자들이 칸의 뜨거운 햇빛 아래 악착같이 줄을 서는 풍경이 일상인 크루아제트 거리에서 ‘꼭 극장에서 보아야 영화일까’라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라니, 이 또한 아이러니한 일이다. 70주년 영화제의 포문을 여는 데 이보다 더 어울리는 쟁점이 또 있을까 싶다. 70주년 칸국제영화제의 주요 이슈들을 살펴본다.

<옥자>

1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영화는 수상 불가?

그렇다. <옥자>를 빼고 70회 칸국제영화제를 설명하는 건 불가능하다. <옥자> 포스터가 칸 메인 상영관이 있는 크루아제트 거리에서 두 번째로 크다(첫 번째는 영화제 공식 포스터). 경쟁에 참여한 두편의 넷플릭스 투자·제작·배급작인 노아 바움백의 <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스>와 함께 <옥자>는 ‘올해의 사건’이다. 마침 심사위원 기자회견에서 심사위원장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대형 스크린에서 볼 수 없는 영화는 황금종려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말을 더함으로써 논란은 좀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앞서 칸 예술감독 티에리 프레모가 “아마존이나 넷플릭스 같은 새로운 대주주들의 등장을 인정해야 한다”며 새로운 플랫폼에 대한 변화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과 달리 프랑스극장협회(FNCF)가 “넷플릭스가 부가가치세도 안 내고, 텔레비전 세금도 내지 않으면서 칸국제영화제가 안겨주는 혜택만 가져간다”라며 프랑스 내 극장 상영을 불허한 게 불과 며칠 전이다(영화 작품의 배급과 유통과정의 질서와 기일을 규제하는 프랑스 법안, 미디어 크로놀로지(Chronologie des medias)에 따르면 극장 상영 후 3년이 지나면 스트리밍 서비스가 가능하다). 결국 두 작품은 칸국제영화제 70년 역사상 처음으로 영화제 이후 프랑스 내 상영이 금지된다.

넷플릭스 작품 상영을 둘러싼 문제제기는 결국 전통적인 배급방식을 고수하려는 배급망과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려는 플랫폼간의 파워게임이다. 70년 전통과 권위를 가진 영화제가 이 전장에 ‘터’를 제공한 셈이다. 논란이 거세지자 영화제쪽은 “2018년부터는 영화제 경쟁작은 모두 극장에서 배급되어야 한다”며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내년을 장담하기 힘들 정도로 이 문제는 예민한 사항이다. 전세계 최대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넷플릭스로서는 경쟁 섹션 초청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이미 마켓에서는 세를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또한 새롭게 출범한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의 정책도 변화를 불러올 요인이다. 정체된 자국의 경제 체제를 개선하려는 노선에는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낡은 영상 미디어 분야의 규제 완화 역시 포함된다. 이런 상황에서 <옥자>가 수상까지 한다면 논쟁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것이다.

<이스마엘의 유령>

2 삭제 버전 상영만이 문제일까, 개막작 <이스마엘의 유령>

5월 17일 개막작인 프랑스 감독 아르노 데스플레생의 <이스마엘의 유령>이 공개됐다. <나의 성생활, 나는 어떻게 싸우는가>(1996)로 데뷔 이래 프랑스 누벨바그의 적자로 평가받는 데스플레생의 작품이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은 이례적이다. 2006년 개막작 <다빈치 코드> 이후 <로빈 후드> <위대한 개츠비> <미드나잇 인 파리> <문라이즈 킹덤> <카페 소사이어티> 같은 상업성을 겸비한 작품이 주로 개막작으로 선정되어왔다(이는 올해 경쟁섹션에도 워너브러더스, 소니픽처스, 이십세기폭스 등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작품들이 포함되지 않은 것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개막과 동시에 프랑스 극장에서 개봉하는 <이스마엘의 유령>은 영화제 상영 버전이 극장 개봉 버전에서 20분이 잘린 1시간54분 버전이다. 영화제가 134분의 감독판을 두고도 극장 상영을 위해 편집한 짧은 버전을 선택한 기준도 이해가 쉽지 않다. 영화평론가 장 미셸 프로동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영화제가 지긋한 나이를 축하하기 위해 치르는 행사에서 존경받는 감독 중 한명의 영화를 상영하면서 삭제된 버전을 상영한다”며 불편함을 드러냈다.

하지만 비난은 영화가 공개된 후 더 거세졌다. <이스마엘의 유령>은 집을 나간 지 21년 만에 죽었다고 믿는 이스마엘(마티외 아말릭)의 아내(마리옹 코티야르)가 다시 돌아오면서 빚어지는 소동이다. 실비아(샬롯 갱스부르)와 연인관계이자 영화감독인 그는, 자신을 스파이라고 믿는 동생 이반(루이 가렐)의 스토리에 집착한다. 현대가족의 초상을 그린 <크리스마스 이야기>(2008)와 같은 작가적 통찰을 기대했지만 <이스마엘의 유령>은 드라마와 판타지, 코믹을 오가는 사이에 감독이 길을 잃은 게 역력해 보인다. 결과적으로 뒤죽박죽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작가의 도취로 가득 찬 작품에 그치고 말았다. <가디언>은 “마리옹 코티야르도 살리지 못한 영화”라고 말했고, <버라이어티>는 “가짜 베이컨과 마가린, 값싼 치즈와 함께 요리한 크기만 크고 맛없는 고기”라고 비난을 가했다. 안타깝지만, 잘려나간 20분의 문제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 후>

3 칸은 홍상수를 지지합니다, <그 후> 경쟁부문 진출

홍상수 감독의 21번째 장편영화 <그 후>가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이자벨 위페르와의 두 번째 협업이자 <그 후>보다 앞서 완성한 <클레어의 카메라> 또한 스페셜 스크리닝 부문에서 상영된다. 이로써 홍상수 감독은 이례적으로 두편의 영화를 칸에서 선보이게 됐다. 홍상수 감독과 칸국제영화제의 인연은 <강원도의 힘>(1998)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동안 <강원도의 힘>, <오! 수정>(2000), <하하하>(2010), <북촌방향>(2011)이 주목할 만한 시선에,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 <극장전>(2005), <다른 나라에서>(2012)가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하지만 칸의 단골 감독치고는 경쟁부문 수상 경력이 전무하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올해의 수상을 조심스레 예측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프랑스 매체 <알로 시네>는 “티에리 프레모는 영화제 단골 감독들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꺼려한다. 이들에게 특권을 준다는 얘기처럼 들릴까봐서다. 하지만 특권이라는 표현은 한국의 홍상수 감독에게 잘 어울리는 표현 같다”고 전했다. 그것이 특권인지 아닌지는 영화가 공개돼봐야 알겠지만 홍상수라는 시네아스트에 대한 칸의 지지는 여전히 공고해 보인다.

<매혹당한 사람들>

4 니콜 키드먼, 올해의 칸 최다 출연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선 니콜 키드먼의 출연작을 무려 4편이나 볼 수 있다. 배우상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비공식적으로라도 최다 출연상을 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우선 경쟁부문 상영작인 소피아 코폴라의 <매혹당한 사람들>에서 기숙학교 교장으로 분했고,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킬링 오브 어 세이크리드 디어>에선 외과의사의 아내로 출연한다. 제인 캠피온이 연출한 TV시리즈 <톱 오브 더 레이크>, 존 카메론 미첼의 <하우 투 토크 투 걸스 앳 파티스>에서도 강렬한 캐릭터를 맡았다. 프랑스가 사랑하는 배우 루이 가렐도 개막작인 아르노 데스플레생의 <이스마엘의 유령>과 미셸 하자나비시우스의 <리다웃어블> 두편에 출연한다. 특히 <리다웃어블>에선 거장 장 뤽 고다르 감독으로 완벽히 변신했다고 한다. 한편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배우가 아니라 감독으로 칸을 찾는다.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연출한 단편 <컴 스윔>이 선댄스영화제에 이어 칸에서도 상영된다.

<트윈 픽스>

5 데이비드 린치와 제인 캠피온을 만나다

70주년을 맞은 칸국제영화제의 서프라이즈는 넷플릭스나 아마존에서 제작·배급하는 작품을 라인업에 추가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TV시리즈와 가상현실(VR) 작품을 특별 초청한 것으로 이어졌다. 70주년 이벤트의 일환으로 올해 칸은 황금종려상 수상 감독들이 연출한 TV시리즈 두편을 상영한다. 데이비드 린치의 <트윈 픽스>와 제인 캠피온의 <톱 오브 더 레이크>가 그것이다. 티에리 프레모 칸 예술감독은 두 작품의 상영이 “칸국제영화제의 특별한 친구들- 데이비드 린치, 제인 캠피온- 의 새로운 소식을 전하기 위한 의미”도 있으며 이 작품들은 “TV시리즈라 하더라도 고전 예술로서의 영화적 방식을 사용한다”며 영화가 아닌 ‘TV’에 방점이 찍히는 것에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과 에마누엘 루베스키 촬영감독이 협업한 VR 단편 작품인 <CARNE y ARENA> 또한 칸에서 만날 수 있다. 국경을 넘는 이민자들의 실제적 상황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 작품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