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그녀의 액션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2017-06-07
글 : 장영엽 (편집장)
문영화 프로듀서, 권귀덕 무술감독, 박정훈 촬영감독에게 <악녀>의 제작과정을 물었다

“이 장면, 어떻게 찍었지?” <악녀>를 본 관객이 가장 많이 하게 될 질문이다. 1인칭 슈팅 게임을 연상케 하는 오프닝 액션 시퀀스부터 김옥빈의 열연이 돋보이는 버스 액션까지, 이 영화에는 기발하고 색다른 액션 신이 상당하다. 그런데 <악녀> 현장에서 스탭들도 여러 번 비슷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고 한다. “이 장면, 정말 찍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을 영화라는 결과물로 기어코 구현해낸 <악녀>의 주요 스탭들에게 답이 있을 것이다. 문영화 프로듀서, 권귀덕 무술감독, 박정훈 촬영감독에게 <악녀>의 제작과정을 물었다. 정병길 감독의 아이디어와 뚝심, 스탭들의 기지로 완성된 남다른 액션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여기에 있다.

여자가 남자를 이긴다

“여자가 어떻게 남자들을 다 이겨?” <악녀>의 액션은 이러한 선입견에 대한 반대급부의 영화라고 할 만하다. ‘살인병기’ 숙희(김옥빈)가 100명에 가까운 ‘남자’ 악당들을 홀로 처치하는 오프닝 액션 시퀀스부터, <악녀>는 성별과 관계없이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액션 히어로의 존재감을 확고히 한다. <악녀>의 액션을 설계하며 여성 캐릭터의 액션 장면을 생각할 때 많은 이들이 떠올리곤 하는, “부드럽거나 유연성을 강조하거나 화려한 느낌을 주는 액션”은 최대한 배제하려 했다고 권귀덕 무술감독은 말한다. “숙희는 웬만한 남자보다 더 힘든 훈련을 받았고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킬러다. 그런 인물이기에 남자들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누가봐도 이건 여자 대 남자의 액션이 아닌, 사람 대 사람의 액션처럼 보이길 바랐다. 그래서 액션의 합을 만들 때에도 여성 캐릭터라 해서 특별히 다른 합을 짜지 않았고, 다른 남성 캐릭터들과 똑같이 거칠고 힘이 넘치는 합을 만들었다.”

정병길 감독이 전작 <내가 살인범이다>(2012)에서 시도했던 ‘원신 원컷’ 액션은 <악녀>에서 더욱 비중 있게 등장한다. CG를 선호하지 않고, 최대한 긴 호흡으로 날것의 액션을 카메라에 담길 원했던 감독의 의도 때문이었다. 고난도의 액션 신을 ‘컷’ 없이 한 호흡으로 찍어내는 건 녹록지 않은 작업이었기에, 박정훈 촬영감독은 무술팀, 정병길 감독과 함께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액션신을 “3D 동영상 콘티”로 만들어 “3D로 모델링을 하고 동선을 짜고 거기에 맞는 콘티를 그리는” 과정을 꼼꼼히 거쳐야 했다고 말한다.

1인칭 액션 시퀀스

<악녀>의 포문을 여는 오프닝 액션 시퀀스는, 근래의 그 어떤 한국 액션영화에서도 보지 못했던 1인칭 시점의 액션을 선보인다. 킬러 숙희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그녀의 거친 숨소리와 가쁜 손놀림, 신체 이곳저곳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100여명의 악당들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마치 1인칭 슈팅 게임을 극영화로 구현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문제는 카메라의 위치 선정이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촬영팀과 함께 별별 방법을 다 생각해봤다. 스턴트맨 어깨에 거치대를 만들어서 카메라를 올리면 동작이 너무 불편해지고, 가방 메듯 카메라를 메면 구르기가 안 된다.”(권귀덕 무술감독) 결국 <악녀>의 제작진이 선택한 건 스턴트맨의 헬멧에 소형 카메라를 장착하는 것이었다. 카메라가 포착할 수 있는 1인칭 시점의 동작은 한계가 있기에, 팔을 최대한 길게 뻗고 액션의 속도 또한 평소보다 두배 이상 느리게 진행해야 하는 무술팀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고 권귀덕 무술감독은 말한다. 박정훈 촬영감독 역시 새로운 시도의 촬영을 준비하며 “오토바이 헬멧, 아이스하키 헬멧 등을 청계천에 가서 직접 깎고 조이는” 과정을 거쳐 촬영장비를 직접 제작했다고.

바이크 액션 시퀀스

국정원으로부터 받은 비밀 임무를 완수한 숙희가 적의 추격을 피해 바이크를 타고 도로를 역주행하는 장면은 <악녀>를 통해 볼 수 있는 고난도의 액션 시퀀스 중 하나다. 물론 “국내에서 바이크 액션으로는 1, 2위를 다투는”(문영화 프로듀서) 숙련된 스턴트맨들의 활약도 중요했지만, 질주하는 바이크 위에서 벌어지는 액션을 극도로 가까운 거리에서(이 장면의 촬영을 위해 바이크를 리깅할 수 있는 장비를 제작했고, 촬영 시에는 와이드 렌즈를 사용했다고 박정훈 촬영감독은 말했다) 롱테이크로 잡아낸 촬영팀이야말로 이 장면의 일등공신이라고 제작진은 입을 모은다. “저러다 (촬영감독이) 도로에 떨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도로와 근접한 촬영을 했다. 바이크 밑으로 카메라가 들어오는 장면이 있는데, 일반적인 영화 같으면 CG로 처리했을 테지만 우리는 촬영감독이 자체 제작한 장비를 가지고 거의 바이크 밑으로 손을 집어넣어 촬영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박정훈 촬영감독이 고생을 정말 많이 했다.”(권귀덕 무술감독)

숙희와 중상의 감정을 실은 액션

칼의 대결으로 시작해 고공 액션을 선보이고, 카체이싱으로 이어지는 숙희와 중상(신하균)의 대결은 단연 <악녀> 후반부의 백미다. “한때 사랑했고, 한때 자신을 만들었던 사람에게 복수를 해야 하는데 총 한발로 보내버리고 싶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 장면은 액션의 합을 짤 때에도 두 남녀의 감정선에 신경을 많이 썼다.”(권귀덕 무술감독) 춤을 추는 듯 칼과 칼을 맞부딪히다가, 함께 뒤엉켜 유리창을 뚫고 실외기가 있는 창 밖에서 위험천만한 사투를 벌이는 두 사람의 모습을 한 호흡에 담아내는 건 그야말로 고난도의 촬영이었다. “이 장면을 찍을 때 네명이 와이어를 탔다. 김옥빈, 신하균 배우와 권귀덕 무술감독, 박정훈 촬영감독. 물론 세팅만 하고 뒤로 빠질 수도 있었지만 무술감독님은 본인이 근처에 있어야 동선이 예쁘다고 하고, 촬영감독님은 시간이 여유롭지 않아 와이어를 탄 채로 배우들에게 설명하고 슛 들어가는 게 낫겠다고 하시더라.”(문영화 프로듀서) 각자가 탄 와이어가 뒤얽히면 큰 사고가 날 수 있는 데다가,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공간에서 액션을 해야 한다는 제한 때문에 이 장면의 경우 “프리비주얼로 시뮬레이션을 했지만 마지막까지 정말 찍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들게 한 장면”이었다고 문영화 프로듀서는 말한다. “이 장면을 찍고 나서 우리끼리도 박수를 치며 난리였다. 모두의 호흡이 맞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장면이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악녀의 탄생

“보여줄게, 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진정한 악녀의 탄생을 알리는 영화의 후반부 숙희의 대사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장면이 바로 버스 액션 신이다. 차 보닛 위에 앉아 한손으로는 운전을 하고, 달리는 버스에 올라타기 위해 과감하게 공중으로 뛰어올라 도끼를 내리찍는 숙희의 모습은 압도적으로 강력하다. 이 장면은 배우와 무술팀, 촬영팀의 호흡이 그 어떤 장면보다도 중요했던 대목이라고 제작진은 말한다. 권귀덕 무술감독이 거의 누운 자세로 숙희가 탄 차를 모는 한편, 와이어를 멘 박정훈 촬영감독은 카메라의 위치를 달리는 차에서 달리는 버스 안으로 이동시키며 숙희의 뒤를 따라야 했다. 문영화 프로듀서는 이 장면에서는 김옥빈 배우의 역량 또한 무척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영하의 날씨에 달리는 차 위에서 촬영한다는 게 만만치 않았을 거다. 차에서 버스로 점프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에도, 아무리 와이어를 잡는다지만 할 수 있겠느냐 물었을 때 오히려 옥빈씨가 ‘재밌겠는데요?’라고 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배우가 도전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기에 이런 장면도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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