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를 챙겨 보는 관객에게 손민지는 낯익은 이름이다. 지난 2010년 여러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단편 <910712 희정>(감독 유원상)에서 주민등록증에 들어갈 양손 지문 날인을 거부한 주인공 소녀를 연기한 그 배우다. 이후 <피끓는 청춘> <이쁜 것들이 되어라> <기화> 등 여러 영화에서 조연으로 출연했다. <악녀>에서 손민지가 연기한 민주는 숙희(김옥빈)가 국정원 조직에서 만난 친구다. 영화의 후반부, 요정에서 그가 김옥빈과 함께 험상궂은 남성 두명과 맞붙는 액션 신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날렵하고 박력이 넘친다.
-단편 <910712 희정> 때 모습과 많이 달라 깜짝 놀랐다.
=(기자가 영화 제목의 숫자를 제대로 못 외우자) 내 생일이라 나만 기억을 잘한다. (웃음) 그때가 20살이었다. 단편영화에서 보여준 모습들이 비슷한 것 같아 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악녀>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영화가 들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하고 싶었다. 여성이 톱인 액션영화가 아닌가. 서울액션스쿨에 있는 무술감독님들의 도움을 받아 정병길 감독님께 (내가 액션하는) 영상을 보여드렸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민주는 어떻게 다가왔나.
=밝고 착해서 국정원 조직에 있을 만한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계속 읽다보니 사연도 있고, 무척 외로운 친구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 점에서 동질감을 느꼈다. 물론 영화에서는 밝은 친구로 나오지만 말이다.
-국정원 조직이라는 설정이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텐데.
=그런 설정을 가진 영화를 좋아해서 받아들이는 데 그리 어렵지 않았다. 보통 영화에서는 그런 조직에 있는 사람들이 되게 세지 않나. 하지만 민주는 그렇게 해석하지 않으려고 했다.
-출연을 결정하자마자 서울액션스쿨에서 몸을 만들었다고 들었다.
=생각보다 어려웠다. 처음 한달은 발차기, 펀치 같은 기본 운동만 했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자꾸 찾아가니까 무술감독님들이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나중에 검술, 합을 배우니까 감이 확 오더라.
-훈련받을 때 일과가 어땠나.
=매일 오후 1시에 가서 5시까지 운동했다. 일단 구호를 외치며 액션스쿨을 한 바퀴 달린다. 처음에는 반의반 바퀴도 못 뛰고 걷다가 나중에는 가볍게 한 바퀴 뛸 수 있었다. 기본기 운동을 한 시간 하고 유연성을 기르기 위해 다리를 찢었다. 정두홍 무술감독님께서 유심히 지켜보셨는지 나를 불러 “혼자서 하면 절대 안 늘어. 기수생들과 같이 훈련받아”라고 하셨다. 기수생들과 함께 한달 정도 생활하니 불가능해 보였던 동작들을 할 수 있게 됐다.
-촬영현장에서 정병길 감독이 주문한 건 뭔가.
=‘편하게 해라, 후반부의 요정 액션 시퀀스를 많이 준비해라’고 하셨다. 카메라 앞에서 자유롭게 놀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요정에서 김옥빈과 함께 남성 두명과 맞붙는 액션 시퀀스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더라.
=어땠나? 잘 나왔나. (웃음) 노출을 한 채로 액션을 해야 해서 신경이 많이 쓰였다. 그런 상태로 액션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까 부담감이 컸는데 막상 현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적응했다. 권귀덕 무술감독님께서 내게 맞는 합을 잘 짜주셨고, 무술팀 출신인 상대배우들이 노련하게 맞춰준 덕분에 불편한 게 전혀 없었다. 남자들과 부딪치는 상황이었는데 쾌감이 컸다. 현장 상황에 맞게 합이 수정되었는데 서너 달 동안 훈련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소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액션스쿨에서 흘린 땀이 빛을 발하는구나 싶었다.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
=맞벌이하는 부모님 때문에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자연스레 비디오를 많이 봤다. 영화를 보면서 배우를 동경하게 됐고,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910712 희정>이 여러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지 않았나. 동기부여가 많이 됐을 것 같다.
=학교 선배인 유원상 감독과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작업했고, 그 덕분에 좋은 작품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내가 또 그런 연기를 보여줄 거라고 사람들이 기대를 한 것 같지만, 기대치에 이르지 못해 한동안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악녀>에 출연하기 전까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비중 있는 역할로는 <악녀>가 첫 상업영화 출연작인데.
=꿈에 그리던 선배님들과 함께 호흡을 맞췄고, 눈으로 보면서 배운 게 많다. 무엇보다 해보고 싶었던 연기를 할 수 있었던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솔직하고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영화 2017 <악녀> 2015 <기화> 2014 <피끓는 청춘> 2014 단편 <소음人> 2013 <그 강아지 그 고양이> 2013 <이쁜 것들이 되어라> 2010 단편 <910712 희정> 2009 단편 <네가 나에게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