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의 컬렉션 디렉터인 그라치아 콰로니는 ‘파킹찬스’를 두고 “어떻게 이런 형제가 한국에 있나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우리가 발견해낸 가장 탁월하고 경이로운 아티스트입니다”라며 두 사람이 만나 이룬 강렬한 예술적 결합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선보이는 카르티에 하이라이트 전시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위촉된 파킹찬스의 신작 <격세지감>은 파킹찬스가 3D 영상과 3D 사운드라는 최첨단 테크놀로지로 야심차게 무장하여 선보이는 작품이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2000)의 촬영장소였던 남양주종합촬영소 세트장을 무대로 한 새로운 단편을 들고 다시 만난 파킹찬스와 이야기를 나눴다.
-형은 철학을 전공하고 장편영화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이후 국제적인 명성을 쌓은 영화감독인데, 한편으로 진지하게 사진을 찍고 있다. 동생은 미술과 사진, 미디어아트에서 인상 깊은 활동을 펼치다가 2014년 장편 <만신>을 완성하며 영화라는 장르에 도착했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장르에서 시작해 서로의 전공 분야로 경계를 확장해가고 있고, 그 과정에서 어떤 교차지점이 생기는 것 같다. 사진, 영상에 대한 각자의 의견이 궁금하다.
=박찬욱_ 영화는 꾸며서 하는 거라 영화 속에서 가장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조차 인위적으로 연출된 것이다. 그렇게 보이기 위해 정교하게 계산하는 작업과정에 좀 짓눌린달까, 영화감독으로서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다. 사진은 그런 나에게 어떤 출구와 해방이 되어준다. 고도로 정밀한 기계의 무엇처럼 작동하는 게 아니라 우연히 어떤 것이 벌어졌을 때 그 순간을 포착하는, 인위적인 개입이 없는 상태이니까.
=박찬경_ 미술관 전시는 아무래도 하나의 단편영화보다는 ‘영화란 무엇일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창작자에게 던져볼 수 있도록 하는 메타 영화적 요소들이 있다. 처음부터 미술관 전시를 위한 것이라는 걸 알고 준비한 작업이었다. 오히려 영화의 범주를 확장하는 작업이 아닐까 싶다.
박찬욱_ 내 경우 미술관에서 하는 건 정말 처음이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대중의 성격도 다를 것이다. 영화관은 표를 구매한 관객을 대상으로 한다면, 여기는 무료로 오픈된 공공 미술관이다.
박찬경_ 카르티에 재단의 주도로 이뤄진 컬렉션이 공공 미술관인 서울시립미술관과 만났다는 것도 재미있는 지점이다. 딱 정해진 기간 동안, 정해진 관람 시간에 맞춰 와서 보아야 하니까.
박찬욱_ 영화는 한번 개봉한 다음에는 그 생명이 어떻게든 지속된다. DVD도 나오고, 명절에 TV에서 방영할 수도 있고, DVD나 블루레이 같은 2차 매체는 언제든 원하면 다시 보는 게 어렵지 않고. 그런데 이건 그럴 수가 없는 ‘전시’ 형태로 만나는 거니까. 세 종류의 관객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2000년에 <공동경비구역 JSA>가 흥행 돌풍을 일으켰을 때 영화관에 가서 본 사람, 당시에는 못 보았지만 이후 DVD나 TV에서 방영할 때 좀 시기가 지나서 본 사람, 아니면 아예 영화를 모르고 본 적도 없고 남북관계에 대해 아는 것도 얼마 없는 젊은 세대 혹은 외국인. 궁금한 마음도 든다. 이 <격세지감>은 이제 어디로 가서 어떤 공간에서 어떤 관객과 만날까 하는.
박찬경_ 카르티에 재단이 1984년부터 시작한 이 사적인 컬렉션은 사실 카르티에 브랜드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한 기업의 컬렉션이 서울에서 사회적 공공재처럼 우리 모두에게 남녀노소 계층 차이 없이 공개되었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 카르티에 재단의 탄생부터가 투자가 아니라 사회적인 공헌과 예술가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기 위함이라고 강조하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격세지감>은 3D 영상과 42개의 스피커를 적절히 배치해 음향적 효과를 극대한 3D 사운드의 역할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3D 사운드는 파리에 기반을 둔 현대음악의 최전선에 있는 전자음악연구소 이르캄(IRCAM) 같은 곳에서 현지 오케스트라나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으로 퐁피두센터, 신작 초연 등에서 적극적으로 선보이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할 수 있다. 아이폰으로만 촬영한 파킹찬스의 첫 작품 <파란만장>(2010)부터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박찬욱_ 영화는 기술집약적인 산업이고 기술의 발전에 따라 진화해온 장르인 만큼 기술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그걸 보여주는 데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HD카메라를 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처럼 새로운 기술을 시도하는 데 관심이 많다. 새로운 기술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호기심을 가지고 탐색하는 기분으로 사용한 것 같다.
박찬경_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그 새로움과 미지의 기술에 현혹되어 그것을 휘두르는 데에만 정신이 팔린 작품들이 있다. 그런 함정에 빠지기가 쉬운데, 가장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서사와 이야기, 작가의 메시지는 보이지 않고 과다하게 사용된 기술만 남아 있어서 허무하고 껍질만 있는 것 같다. 메시지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수용자에게 와닿지 않고, 그냥 공허하다. 그런 공허한 작품들은 영화뿐 아니라 미술관에서도 종종 마주하게 된다. 신기하고 미지의 것인 기술을, 아직 다 마스터하지 못한 채로 거기에 딸려간달까. 작가들이 저지르기 쉬운 실수다.
-이번에 3D로 촬영해보니 이미지가 디졸브될 때 공간과 공간이 겹치면서 묘한 효과가 난다. 공간의 시점이 겹치면서 경계가 흐려지고 혼돈 속에서 초현실적인 느낌을 주며 차원이 달라진다. 3D가 모든 것을 2배 이상으로 요구하는 작업이라 품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도 해보지 않고서는 몰랐던 부분이다.
박찬욱_ <격세지감>을 안 만들었더라면 우리가 3D를 직접 사용하지 않았으니 몰랐을 것이다. 대부분 지금까지의 3D영화는 거대 자본이 투입된 화려한 시각적 효과가 압도적인 영화가 주를 이뤘으니까 대부분 카메라의 움직임이 빠르고, 설령 디졸브할 때의 효과가 있더라도 그걸 보여줄 기회가 영화에 없었다.
박찬경_ 3D영화에 돈이 배 이상 들어가는 만큼 시각적으로 화려하고 압도적으로 보이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와 반대 지점에 있는, 저예산으로 우리가 찍은 정적인 영상에서 이 신기술의 또 다른 단면을 발견한 것 같아 재미있다.
-<격세지감>은 남양주종합촬영소의 <공동경비구역 JSA> 세트장을 종횡무진하며 담아낸 영상과 <공동경비구역 JSA> 원작의 영상에 마네킹으로 재현된 함축적인 장면이 더해져 원작의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전달하면서 동시에 17년이란 시간이 지나버린 현실에 놓인 남북관계를 환기시킨다. 은유와 함축적인 메타포 사용은 지금까지의 작품들과 공통선상에 놓인 것 같다.
박찬경_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와중에 원래는 움직임이 없는 존재인 마네킹이 외부의 작용으로 움직인다. 강렬한 배우의 대사가 나오는데, 정지한 마네킹의 얼굴을 비추면서 일부러 입을 보여주지 않는다. 마네킹은 등장배우들을 대체하는 존재이지만 근본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연기가 안 되는 ‘사물’이다. 그러나 <격세지감> 장면에서는 배우를 대신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선거 기간에 맞춰 불어오는 북풍 등 불가해한 상태로 유지되는 남북관계의 역설과 모순을 대변할 수 있는 장치다. <격세지감>은 호소력 있는 배우의 목소리며 모두가 기억할 만한 대사와 장면들을 단순히 나열한 것이 아니다. 1차원적으로 <공동경비구역 JSA>를 흉내낼 생각이었더라면 굳이 3D 영상과 사운드를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박찬욱_ 총을 겨누는 장면에서 총은 장치에 고정된 상태로 등장한다. 세트장 주변의 풍광을 담은 이미지가 나오는데, 그 이미지와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듯한 대사가 나오기도 한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전혀 보지 못한 상태로 아무런 정보 없이 그냥 미술관에 와서 <격세지감>을 보더라도 개별적이고 독립적으로 이 영상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남북관계에 대한 이해가 되기를 바라면서 만들었다. 배우들의 목소리는 감정적으로 매우 고조되어 있는데 마네킹의 무표정한 얼굴을 볼 때 느껴지는 콘트라스트가 흥미로웠다. 그리고 이 영화의 포인트는 사운드다. 관객이 안경을 쓰기 때문에 3D 영상이라는 건 직관적으로 알 수 있지만 귀기울여 듣지 않으면 사운드의 질감에 차이가 있다는 건 놓칠 수도 있다. 가장 가까운 소리, 먼 소리, 움직임을 가진 소리를 통해 강렬한 육체적인 경험으로 남길 바라며 만들었다.
-두 사람 모두 바쁘고, 해외 일정과 겹치면서 핑퐁게임하듯 주고받기식으로 작업했다고 들었다.
박찬욱_ 손이 많이 가고 귀찮은 건 동생한테 떠맡겨야지 했는데(웃음), 막상 동생과 내가 해외 일정이 연달아 이어졌다. 나는 유럽의 영화제들을 돌았고, 동생도 중요한 개인전이 있었다. 한창 <격세지감>을 만들어야 하는데 서로가 머문 도시가 달랐다. 그래도 좋은 세상이라, 시차가 있지만 요즘 통신기술의 발달로 물리적인 거리를 극복하고 충분한 대화를 나누면서 작업할 수 있었다. 나는 이미지를, 동생은 사운드를 주로 맡았다.
박찬경_ 베를린 전시 등 작가로서 중요한 전시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서울을 종종 비우게 되었다. 처음부터 형과 내가 뭘 하겠다, 하고 분야를 나눈 게 아니라 충분히 대화를 하면서 준비를 한 다음 제작 일정이 나오고 나서는 스케줄에 따라 누가 서울에 있는지에 따라 작업을 진행했다. 제작 일정이 이미 정해진 만큼 형이 서울에 있을 때에는 이미지 작업을 주로 했고, 사운드를 할 때는 내가 서울에 있었다. 역할을 나눈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두 사람 모두 지난 정권의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홍역을 치렀는데, 지난 겨울 주요 뉴스 채널에서 블랙리스트 관련 보도를 하며 두 사람의 얼굴 아래로 ‘종북’이라는 글자가 박힌 장면이 지나갔다.
박찬욱_ 보도된 것처럼 나 역시 모태펀드 지원금 사업에서 배제되었는데 동생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심사에서 무려 3번이나 떨어졌다.
박찬경_ 한번은 이유를 들을 수 있었는데 나머지는 떨어진 이유조차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서류 준비를 하고, 그 지원금을 타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과정이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다. 상업적인 영화가 아닌 만큼 영진위의 지원금이 초기 단계에서는 큰 도움이 된다. 품이 많이 들어가는 지원서류를 작성하고 결과를 기다렸는데, 애초에 정치적 성향을 이유로 심사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 이런 지원금이 제대로 집행되어야 상업적으로 다뤄지기 힘든 주제를 가지고 장편 시나리오를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영화계뿐만 아니라 블랙리스트의 영향이 미술계에도 큰 여파를 미쳤다. 공적으로 운영되어야 할 기금과 지원사업들이 수년간 거의 식물인간처럼 되어버렸고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 젊은 작가들에게 지원금은 큰 역할을 한다. 생계와 커리어를 책임져주는 수단이기도 하다. 예술을 간섭하고 억압하고 프로파간다로 사용하려는 권력의 개입이 더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대선을 앞두고 한국의 정치 상황은 물론 남북관계도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었을 텐데, 이 작품을 준비하는 데 남다른 용기가 필요하진 않았나.
박찬욱_ 우리가 작품을 이야기할 때에는 <공동경비구역 JSA>도 그렇고 국가보안법에 걸려서 누군가 감옥에 갈지도 모르겠다고 불안해하면서 영화를 찍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2000년에 6·15 남북공동선언이 있었고 내일모레 당장이라도 통일이 될 것 같은 그런 뜨거운 화해무드가 되면서 극적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러 가는 것이 일종의 사회현상처럼 되었다. 사람들이 영화 속 장면을 남양주 세트장에 와서 따라하면서 영화 속 장면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회상하기도 했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준비할 때만 해도, 당시 암묵적으로 북한군을 묘사할 때 지켜야 하는 룰이라는 게 있었다. 북한군이 너무 잘생겨서도 안 되고, 제복 입은 모습이 멋져서도 안되고, 그들이 말하는 대사 내용에도 제약이 있었다. 일종의 불문율이었다.
박찬경_ 우리가 준비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눈 게 지난해 11월이었나? 트럼프는 당선된 이후였고, (11월 8일) 광장에서는 촛불시위가 한창 이어지고 있을 때였다. 오히려 뭔가 크게 한바탕 세상이 뒤집어질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이 전대 미문의 스캔들에 맞서고 있다는 걸 확인한 시기였으니까.
-<공동경비구역 JSA>의 장면, 등장인물들을 차례로 비추면서 멀어지고 나중에 한장의 사진으로 담긴다. 다시 사진이 담긴 세트장의 안내판으로 카메라가 이동하고 풍경과 내리쬐는 햇살을 담으며 저 산너머로 카메라가 사라지는데 셔틀버스에 타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이야기의 여운이 남은 상태에서 현실로 갑자기 확 돌아와야 하는 기분이다.
박찬욱_ 지난 5월 30일 전시 오프닝에서 다 같이 관람하는데 <격세지감> 속 셔틀버스 안내방송이 나오고 영화가 끝났는데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로 서울시립미술관의 안내방송이 연달아 나와서 모두가 한참 웃었다. (웃음)
박찬경_ 그 순간 정말 영화 속 장면과 현실이 겹치며 웃음이 나오더라. 촬영을 앞두고 남양주에 갔을 때 우연히 안내방송을 듣게 되었다. 재미있을 거란 생각에 사운드를 따로 따서 영화에 사용했다. 관광코스가 된 촬영장을 둘러본 다음, 원래 왔던 곳으로 셔틀버스를 타고 돌아갈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멘트인데 지금까지 세트장이었다는 걸 환기시키는 데 적합하리라고 생각했다.
박찬욱_ <공동경비구역 JSA>를 가지고 해외 영화제에 갔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듣는 질문인데, 외신 기자들이 모두들 실제로 판문점에서 촬영한 것이 아니냐고 하더라. 그만큼 남양주의 세트가 사실적이라는 이야기겠지만 외국인들은 남북관계의 긴장감에 대해 잘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판문점에서 진짜로 영화를 찍을 수 있을 정도로 남북관계가 좋다면 내가 뭐하러 이런 영화를 만들었겠는가, 라고 답했다. 철거를 앞두고 있는 이 공간에 다시 가보니 말 그대로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내부는 거의 창고처럼 사용되었고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물건들이 들어차 있어서 버려진 장소라는 느낌이 물씬 났다.
박찬경_ 그런 버려진 공간을 카메라가 마치 유영하듯, 온기어린 인간의 시선도 차가운 카메라의 시선도 아닌 둥둥 떠다니는 듯한 존재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거기 남겨진 소품 중에 실제 영화에 사용된 것도 있고. 그 사격연습용 과녁인가?
박찬욱_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물건들도 막 방치되어 있다. (웃음) 아니, 영화에서 사용한 과녁은 북한 인민군을 모자부터 상세하게 그린 과녁이었다.
박찬경_ 나는 사실 2000년에 서울시립미술관의 미디어시티서울에서 선보인 <세트(SETS)>라는 슬라이드 영상작업으로 이미 남양주 세트장을 작품에 담아낸 적이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 세트장뿐 아니라 시가전이 가능한 골목 모습 등이 재현된 세트장이 있는데, 주변은 상점과 대학가가 있는 길이다. 거리의 시위하는 학생들과 경찰이 대치하며 바리케이드를 치고 최루탄이 날아오는 장면들이 재현되는 공간과 함께 세트장 곳곳을 슬라이드로 담아냈다. 형이랑 내가 독립적으로 다른 분야에서 작업해 왔지만 따지고 보면 오래전부터 이미 우리 사이에 교집합들이 있었던 셈이다. 이번 작업을 통해 <공동경비구역 JSA> 속 송강호의 미묘한 표정에 담긴 진짜 의미를 다시 읽어낼 수 있었다.
박찬욱_ 송강호가 극중에서 판문점을 방문한 관광객의 모자가 바람에 날아가자, 그걸 주워 전달해주는 장면인데 아주 짧은 순간에 복잡다단한 감정을 표현해낸다.
박찬경_ 북한군인 그가 바람에 날아온 모자를 주울 때, 그리고 그걸 직접 건네줄 수 없어서 다가온 미군에게 줄 때, 그 이후의 표정이 알 수 없는 희미한 미소… 이런 게 아주 많은 것을 말해준다. 당시에 내가 <공동경비구역 JSA>를 대충 본 건가 싶을 정도로 이제야 새롭게 발견한 장면과 디테일이었다. 판문점 세트가 매우 정교해 마치 실제 판문점인 것처럼 지어졌지만 실제보다 조금 규모와 크기가 작고 그 내부까지는 완벽하게 구현되지 않은 공간이었다. 이번엔 카메라워크를 통해 ‘허구의 장소’ , 진짜 장소를 모사하고 있는 장소라는 걸 여과 없이 담아냈다. 그런데 군사분계선만큼은 세트를 철거하더라도 남겨놓으면 좋겠다.
박찬욱_ 이 전시가 다른 도시에도 가게 되고, 다른 관객과도 만나고 앞으로도 폭넓게 만남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박찬경_ 어쩌면 언젠가 평양에서도 <격세지감>을 상영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박찬욱_ 평양에서, 그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