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프로파간다×플레인 아카이브, 영화음악 전문 레코드 레이블 PPR <족구왕> <셔틀콕> O.S.T 만들다
2017-06-28
글 : 이주현
사진 : 최성열
최지웅, 임유청, 백준오(왼쪽부터)

디자인 스튜디오 프로파간다와 블루레이 제작사 플레인 아카이브가 손을 잡았다. <멜랑콜리아>(2011), <올드보이>(2003), <폭스캐처>(2014), <내일을 위한 시간>(2014) 등의 블루레이 아트워크를 함께하며 블루레이 수집가, 영화 굿즈 마니아들의 지갑을 털털 털어갔던 이들이 이번엔 영화음악 전문 레코드 레이블 PPR을 만들었다. 음악은 스마트폰으로 듣는 거 아닌가요, CD를 구매한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요, 더군다나 영화음악을 CD로 산 적이 언제인지는 정말 모르겠는데요, 라는 사람들에게 PPR의 시도는 일견 엉뚱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이 만든 영화음악 CD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나면 마음이 달라질 거다. PPR은 우문기 감독의 <족구왕>(2013)과 이유빈 감독의 <셔틀콕>(2013) 영화음악 CD를 500장 한정판으로 만들어 서울레코드페어에서 첫선을 보였다. 레코드페어에서 CD가 완판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랄까. 아직 우리에겐 <족구왕>과 <셔틀콕> 영화음악 CD를 소장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다. 알차고 아름다운 영화음악 음반을 만든 장본인들, 프로파간다의 최지웅, 플레인 아카이브의 백준오, 임유청씨를 만났다.

-6월 17, 18일 서울레코드페어에서 PPR의 첫 작품 <족구왕>과 <셔틀콕>의 O.S.T를 선보였다.

=백준오_ 반응이 기대보다 좋았다. 음반이 중심인 행사라 생각보다 영화팬이 많지는 않았지만 순수하게 O.S.T를 사기 위해 와준 이들도 꽤 있었다. 두 영화에 출연한 배우의 팬이거나 음악감독들의 팬이거나 플레인 아카이브와 프로파간다의 작업물에 관심을 가져주던 분들이 주로 CD를 사갔다. 애초 완판은 힘들 거라 예상했다. 최근엔 물리 매체로 음반을 듣는 사람들이 CD보다 LP를 선호하는 추세다. 전세계 음반 매출도 LP가 CD를 앞질렀다더라. 카세트테이프도 다시 유행하고 있고. 이번 행사에서 CD는 변방이었다.

=최지웅_ 어쨌든 영화음악 레코드를 발표하기엔 서울레코드페어가 최적이라 판단했다. 온라인숍에서만 CD를 공개하고 팔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되면 음반으로서 주목을 많이 받지 못할 것 같았다. 아직은 구상 단계지만 내년엔 LP도 선보이고 싶다. 1980~90년대 한국영화음악들이나 절판된 영화음악 앨범을 LP로 제작하면 좋을 것 같다.

백준오_ 조성우 음악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1998)나 <봄날은 간다>(2001)의 영화음악 같은 경우 LP와 잘 어울리겠다는 얘기를 나누긴 했다.

=임유청_ 얼마 전까지만 해도 테이프가 희소한 아이템이었는데 지금은 CD가 그런 것 같다. 테이프는 복고적 취향을 불러일으켜서 수집의 재미라도 주는데 CD는 그렇지 못한 느낌이다.

백준오_ 그럼에도 불구하고 CD는 패키징을 할 때 판형의 크기라든지 여러 면에서 시도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기존 CD는 정사각형 포맷인데 이번에 내놓은 CD의 사이즈는 플레인에서 내는 블루레이 사이즈와 똑같다.

최지웅_ 블루레이를 수집하는 분들의 마음을 헤아렸다. 수집해서 진열했을 때 사이즈가 맞지 않으면 연속성이 느껴지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으니까.

-영화음악 전문 레이블 PPR은 누구의 아이디어로,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백준오_ 굳이 음반이 아니어도 뭐든 같이 해보자는 얘기를 전부터 주고받았다. 영화 굿즈를 판매하는 가게를 열어보자고 해서 두 회사의 영어 앞 글자를 따 PP숍이란 이름을 떠올린 적도 있고. 그렇게 실없이 의견을 주고받다가 매년 서울레코드페어에 참가하던 최지웅 실장님이 서울레코드페어 개최 공고가 뜬 걸 보고 ‘같이 음반 만들어볼래요?’ 하면서 시작하게 됐다.

최지웅_ 재밌을 것 같아서 시작한 일이다. 영화도 그렇지만 음악도 어려서부터 좋아했고, 초등학생 때 제일 처음 산 음반도 O.S.T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좋아하던 음반이 하나둘 절판되고, 옛 영화와 옛 영화음악들이 사라져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것을 되살릴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1980년대 한국영화음악 시리즈나 절판된 <살인의 추억> O.S.T도 LP로 내고 싶다. 어렸을 땐 한국영화 비디오를 빌려보면서 화면에 녹음기 가져다대고 좋은 영화음악이 나오면 그걸 녹음해서 듣고 다녔다. 그때 좋아했던 음악을 좋은 음질과 새로운 형태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 판권 문제를 해결하는 게 쉽지 않겠지만 음악감독님들이 음원만 잘 가지고 있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셔틀콕>과 <족구왕>의 영화음악을 PPR의 첫 작품으로 택한 이유가 있다면.

최지웅_ 일단 두 영화의 배급과 마케팅을 임유청씨가 상상마당에서 일하던 때 했었고, 디자인을 프로파간다가 맡았다. <셔틀콕>의 김해원 음악감독과 <족구왕>의 권현정 음악감독과도 친분이 있어서 첫삽을 뜨기에 용이한 측면이 있었다. 또 독립영화는 O.S.T 음원이 발매돼도 음반 발매로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워낙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두 영화의 음반을 아무도 내지 않는다면 우리가 내보기로 한 거다.

임유청_ <족구왕>이 권현정 음악감독의 첫 작품이라 영화에 대한 감독님의 애정이 컸다. 그런데 개봉 당시엔 믹싱이나 마스터링 비용이 여의치 않아서 디지털 음원으로도 O.S.T를 발매하지 못했다. 그런 아쉬움이 있어서인지 이번에 새로 음반 작업할 때도 의욕적으로 도와주셨다. 시간과 비용 문제로 아쉽게 불발됐지만, 배우들도 나서서 자신들이 새로 노래를 불러 음반에 수록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셔틀콕>의 경우 개봉 당시 마케팅을 진행하면서 개인적 아쉬움이 컸던 작품이다. 김사월X김해원 포크 듀오로 활동하고 있는 김해원 음악감독이 <셔틀콕> 영화음악을 만들었는데, 예고편 작업할 때부터 음악이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최지웅_ 김해원 음악감독은 바쁜 와중에도 기존 연주곡에 새롭게 가사를 붙여 노래를 만들어줬다. 마스터링 작업 때도 직접 와서 보시고.

신기한 수집품과 작업물로 가득한 프로파간다 사무실에 백준오, 최지웅, 임유청(왼쪽부터)씨가 옹기종기 모였다.

-음악을 스트리밍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CD를 제작해서 수익을 내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이는데.

백준오_ 음반도 그렇고 잡지도 그렇고 결국 많이 찍을수록 단가가 내려간다. 유명 가수들의 CD는 몇 천장에서 1만장 정도 찍지만 우리는 500장 초소량 제작이라 제작비가 생각보다 많이 들었다. 그렇다고 퀄리티에 대한 욕심을 포기할 순 없었다. 이번엔 페트 케이스와 두꺼운 보드지로 CD 케이스를 만들었는데 나름 비싼 재료와 인쇄 방식이라 단가가 꽤 높았다. 결과적으로 소비자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었는데 서울레코드페어에서도 사람들이 가격에 대한 저항력을 좀 느끼는 것 같더라. 이 영화에 대한 애정이 있지 않으면 사기 망설여지는 가격이긴 한데, 결코 비싸게 팔고 싶어서 가격을 높게 책정한 게 아니다. 그리고 독립영화 음반으로 시작했지만 독립영화에 국한하지 않고 규모가 큰 영화의 음반도 만들고 싶다. 한국영화 제작·배급사들이 O.S.T를 물리 매체로 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가씨> O.S.T의 경우 몇 천장이 팔렸는데, 팬덤과 영향력을 가진 영화가 아니면 CD 제작을 부담스러워한다. 그럴 때 우리에게 의뢰하면 좋을 것 같다. (웃음) 그런 식의 제작 대행도 가능하다고 보고, 상업영화음반으로 수익이 보전되면 그 수익으로 독립영화 음반을 제작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다. 물론 상업영화 라인업에 기대지 않고 자체 기획만으로도 수익이 나면 제일 좋다. 플레인 아카이브를 처음 시작할 때도 비슷했다. 비상업적으로 보이는 독립·예술영화의 블루레이로 어떻게 수익을 내겠냐는 시선이 있었는데 꾸준히 하다보니 되더라. 마찬가지로 PPR의 영화음악 음반 패키지가 듣는 재미도 있고 보는 재미도 큰 음반이라는 인식이 생기면 좋겠다.

-이번 CD에는 사진가 표기식의 소사진집 <그때의 당신과 지금의 우리>가 동봉되어 있다. CD의 소장용 가치를 높이기 위해 신경 쓴 스페셜 트랙이나 스페셜 피처 아이템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임유청_ 표기식 작가님이 <족구왕>과 <셔틀콕> 포스터 사진을 찍었는데, 당시에도 사진이 너무 좋아서 이 사진을 제대로 공개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족구왕>의 안재홍 배우만 하더라도 정말 역동적이고 귀여운 얼굴이 사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때 그 당시 안재홍 배우가 보여준 특별한 얼굴, 특별한 느낌을 사진집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셔틀콕> 포스터의 경우 표기식 작가의 <나무가 자란다>라는 개인 작업을 했던 장소에서 포스터도 촬영했다. 영화를 위한 촬영이었지만 그의 개인적인 작품 세계와도 맞닿아 있어서 그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스페셜 트랙도 있다. <족구왕> 본편에는 실리지 않았고 티저 예고편에만 쓰인 <복학생의 하루>라는 피아노곡을 이번 음반에 실었고, 영화에서 안재홍 배우가 고백하는 장면을 많이들 기억할 텐데, 그 장면의 사운드를 <고백>이란 제목의 히든 트랙으로 넣었다. <셔틀콕>에는 <No Return>이라는 보컬곡이 새로 추가됐다.

최지웅_ 기본적으로 CD는 듣기 위한 매체지만, 듣는 것만큼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다양한 볼거리를 한장의 CD 안에 담고자 했다. 앞서 연속성 얘기를 했지만 PPR의 음반을 연속된 시리즈로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다.

-PPR의 타깃층이 있다면.

최지웅_ 영화도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기본 타깃층인 건 당연하고, 어린 시절 새로 산 CD의 비닐 포장을 뜯으면서 설렘을 느꼈던 이들이 우리의 타깃이 아닐까 싶다.

임유청_ 내가 좋아하고 내가 보고 싶고 내가 갖고 싶은 걸 만들면 그걸 좋아해주는 사람이 분명 어딘가에 존재할 거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다. 그래서 타깃층보다 우리가 뭘 만들고 싶은가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야 작업할 때도 재밌다. 그 결과를 함께 공유하고 공감하는 게 중요한 것 같고, 그 힘으로 지속적으로 음반을 만든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덕질 전문 스튜디오를 꾸려가는 사람들로서 최근에 새롭게 빠진 덕질이 있다면.

백준오_ 최근엔 북 디자인에 관심이 생겼다. 블루레이 제작을 시작할 때만 해도 소프트웨어나 프로그램쪽에 관심이 더 많았는데 프로파간다를 만나면서 디자인에 관심이 많이 생겼다. 처음엔 디자이너가 좋은 종이 쓰고 싶다고 하면 당황했다. “그런 고급 종이를 블루레이에 쓴다고요?” 그랬는데 지금은 종이의 질감이나 촉감에 나 역시 예민해졌다. 디자인에 최적화된 완성품을 만들려면 소재가 뒷받침돼야 한다. 적당히 타협하면 결과물이 생각한 대로 안 나온다. 지금까지는 그런 방식이 대부분 성공했던 것 같다. 한창 디자인에 대해 고민할 때는 서점에 자주 갔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북 디자인에도 시선이 가게 되더라. 그래서 요즘은 예쁜 책들도 많이 수집하고 있다.

최지웅_ 플레인 아카이브의 좋은 점이 디자이너가 하고 싶은 걸 다 하게 해준다는 거다. (조용히 자리를 뜨더니 <악마를 보았다> 블루레이를 들고 온다.) <악마를 보았다>의 블루레이도 페트 케이스로 제작했는데 이게 블루레이 디자인 어워드에서 1등 했다. 페트 소재를 쓴 블루레이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런 ‘고퀄’은 처음이었다. (웃음) 이땐 샘플 제작비만 100만원이 들었다.

-언젠가 한번쯤 선보이고 싶은 영화음악 음반이 있다면.

최지웅_ 개인적으로는 <박하사탕>의 LP를 내고 싶다. <박하사탕>의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 데다가 LP로는 나온 적이 없었으니 의미 있을 것 같다.

백준오_ 한국영화음악만 전문으로 하는 레이블로 국한되고 싶지 않다. 외국영화음악도 음반으로 제작하고 싶은데, <블레이드 러너>도 제작해보고 싶다. 몬도라는 레이블에서 발매하는 한정판 LP나, <올드보이> 한정판 LP를 발매한 밀란레코드처럼 우리도 새로운 실험을 계속 해보고 싶다.

임유청_ 동시대 젊은 음악가들과 영화 관련 컴필레이션 음반을 기획해보고 싶다. 영화음악에 관심 있는 젊은 뮤지션들이 많은데 영화음악에 진입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그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었으면 싶고, 기존의 영화음악을 리메이크한다거나 영화에 영감받아 만든 곡들로 컴필레이션 음반을 만들면 좋겠다.

어머, 이건 사야 해

<족구왕>과 <셔틀콕> CD

각 영화의 키컬러인 핑크와 블루로 페트 케이스를 만들었다. 페트 케이스를 벗기면 두꺼운 컬러 합지가 CD를 꼭 품고 있다. 부클릿으로 동봉된 표기식 작가의 사진집엔 배우들의 포스터 미공개컷이 들어 있다. CD의 경우 정사각형 포맷이 일반적인데, <족구왕>과 <셔틀콕> CD는 플레인 아카이브가 기존에 제작한 블루레이와 같은 사이즈로 제작됐다. ‘영화’가 강조된 포맷이다. 권현정 음악감독의 <족구왕> O.S.T에는 페퍼톤스의 정규 5집 《HIGH-FIVE》 수록곡이자 영화의 엔딩곡이었던 <청춘>을 비롯해 안재홍의 <고백>이 히든 트랙으로 들어 있다. 김해원 음악감독의 <셔틀콕> O.S.T에는 <No Return>이라는 노래가 새로 추가됐다. 온라인숍 29cm와 플레인 아카이브 홈페이지에서 구매할 수 있다.

최지웅 프로파간다 대표. 시네필이자 엄청난 수집가. 어려서부터 영화와 올림픽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는데 인터뷰 자리에도 호돌이 티셔츠를 입고 왔다.

임유청 플레인 아카이브에 합류하기 전 상상마당 마케팅팀에서 일하며 다수의 한국 독립영화 배급·마케팅을 담당했다. 남다른실행력을 지닌 PPR의 실무자.

백준오 플레인 아카이브 대표. 디자이너의 마음을 이보다 더 잘 헤아릴 수 없다는 칭찬을 듣는다. 아티스트의 마인드와 경영자의 마인드를 두루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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