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택시운전사>, <1987>(가제)를 보기 전 미리 읽으면 좋을 세권의 책
2017-08-03
글 : 이주현| 사진 : 최성열|
<군함도>, <택시운전사>, <1987>(가제)를 보기 전 미리 읽으면 좋을 세권의 책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 장준환 감독의 <1987>(가제)은 모두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일제강점기 일본 군함도에 강제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이야기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다룬 책들이 영화 감상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줄지도 모르겠다. 한수산의 <군함도>, 한강의 <소년이 온다>, 최규석의 <100℃>를 지금 강추한다. 이미 읽었다면 또 한번 꺼내 보시라. 좋은 책과 영화는 널리 소문내야 한다.



거대한 슬픔의 역사_류승완 감독의 <군함도>를 기다리는 당신에게



<군함도> 한수산 지음 / 창비 펴냄



군함도를 다룬 책과 영화와 방송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오고 있다. 2015년 7월 군함도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당시 일본은 부끄러운 강제징용의 역사를 덮으려 했고, 반복되는 일본의 역사 왜곡은 오히려 군함도의 비극을 다시금 주목하게 했다. 마침 류승완 감독은 천만영화 <베테랑>(2015)을 지나 차기작으로 블록버스터 <군함도>를 만들었다. 한수산 작가는 이보다 훨씬 앞선 1989년부터 군함도의 비극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군함도>는 일제강점기 하시마섬에 징용된 조선인과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희생된 피폭 조선인의 삶을 그린 5권짜리 소설 <까마귀>(2003)를 새로이 집필해 내놓은 책이다.



군함도의 본디 이름은 하시마. 거대 군수기업 미쓰비시의 자본 아래 놓여 있는 항구도시 나가사키에서 남서쪽으로 약 18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섬이 하시마다. 섬 모양이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은 군함도의 해저탄광에는 수많은 조선인이 징용공으로 끌려왔다. 그들은 가혹한 강제노동에 내몰렸지만 고립된 섬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섬을 빠져나가서 산다는 보장만 있다면 왜 난들 안 가겠냐. 살아서 여기를 빠져나갔다는 사람, 누가 있었냐. 바닷물에 팅팅 불어가지고 죽어 돌아온 조선사람, 선착장에 내팽개쳐놓고 이거 봐라 도망치는 놈들 다 이 꼴 된다 보여주다가, 저 건너 화장터 섬으로 끌어가 태워버리면 그뿐, 그뿐이다.”



친일파 집안의 차남 지상은 형 대신 징용에 나섰다가 하필 험하기로 소문난 하시마에 들어온다. 같은 춘천고등보통학교 출신 우석과 함께 징용생활을 시작한 지상은 고향집에 두고온 임신한 아내 서형을 생각하며 고된 노역의 날들을 견뎌간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답게 살려던 생각은 사라지고 차츰 자신이 ‘벌레’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괴롭다. 분노와 서러움이 쌓이고 쌓인 지상과 우석은 결국 탈출을 도모한다.



그러나 우석은 군함도의 유곽에서 일하는 금화를 사랑하게 되어 그녀를 두고 혼자 떠나는 것이 마음 편치 않다. 그 어지러운 마음 탓인지 지상은 탈출에 성공하고 우석은 군함도에 남게 되며 금화는 죽음을 맞는다. 2권에선 공간과 서사가 확장된다. 군함도에서 조선인을 노예처럼 부려먹던 일본인의 행태는 나가사키에서도 반복된다. 군함도에서의 비극은 좀더 특수했을 뿐 결코 지엽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나가사키 조선인 징용자들은 미국의 원폭 투하로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차별과 멸시를 받아야 했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죄악, 국가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거대한 죄악”에 대한 성찰을 향해 <군함도>는 나아간다. “이 모래알 같은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으로는 항거할 수 없이 크고 엄청난 어떤 집단이나 제도가 거대한 악이 되어 우리를 내리누르며 지배하고 있는 거다. 집단의 탐욕과 편견이 거대하게 뒤엉키고 제도와 제도간의 경멸과 증오와 부패가 거기 뿌리 깊게 자리 잡아 그들만의 거대한 악을 구축하고 결속시킨다. (중략) 내 조국 조선의 무능 또한 거대한 악이었다면, 아버지를 앞세운 우리 집안도 그 거대한 악에 닥지닥지 매달린 작은 악의 진딧물 하나하나는 아니었던가.”



<군함도>는 인간답게 살고 싶어 군함도를 탈출했으나 결국엔 피폭으로 재가 돼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성공과 실패의 역사가 아닌 커다란 슬픔 그 자체를 담아낸 소설은 한수산 작가의 명문장들로 더욱 애달프다. 군함도의 실상뿐 아니라 일제강점기 전반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담아낸 이 책은 역사서의 기능까지 충실히 수행한다. 역사가들이 채 기록하지 못한 개인의 역사가 이렇게나마 다시 이야기된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다행인지 모른다. “넌 여전히, 아직도 사람이냐?” “그것까지 포기하지는 못하고 살았습니다.” 이런 말들을 주고받으며 이 악물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저 묻히지 않아서 말이다.



“사람의 결심은 작은 것에서 온다. 결심이 크고 굳다 해서 그 시작도 큰 것에서만 오지 않는다. 작은 씨알이 크게 자라 줄기를 뻗고 가지를 치며 솟아오르는 것처럼, 결심도 그 시작은 작은 씨앗이었다. 쥐가 그랬다. 지상이 몸을 털고 일어서도록 불러일으킨 건 쥐였다. 목덜미를 간질이며 입을 타고 나가던 쥐의 그 발톱을 그는 결코 잊지 못했다. 결심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그 결심을 서형의 편지가 안아올렸다. 밀려왔다가 부서지고 또 부서지는 파도를 내려다보며 지상은 서형에게 말했다. 어떻게든 이 섬을 빠져나간다. 쥐가 밟고 가는 나를 여기 이대로 처박아둘 수는 없다. 목숨을 건다, 서형아.”(1권 218쪽)



그럼에도 빛을 향해서_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를 기다리는 당신에게




<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펴냄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만발이었다는 것을. 그때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만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의 몸에 두발씩 죽음을 박아넣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되었던 겁니다.” 그 도시는 광주다. 1980년 5월의 광주. 한강 작가는 맨부커상 수상작인 <채식주의자>에서도 폭력과 살생을 완강히 거부하는 인간이 견뎌야만 하는 자기파괴적 모멸감을 이야기했다. 삶의 고통에 천착해온 작가는 자신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폭력이 아닌 학살의 현장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간다. 영혼마저 짓밟힌 이들의 고통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고작 중학교 3학년인 동호. 함께 시위대 무리에 섞여 행진하다 총에 맞아 죽은 친구 정대를 찾기 위해 시신이 안치된 도청 상무관을 드나들며 그곳의 누나, 형들을 돕던 동호. 집에 돌아가래도 끝까지 남아 있다가 광주의 폭도로 처단된 어린 동호. 동호의 죽음을 목격한 생존자들. 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고문을 받아야 했던 시민군들. 살아 있다는 죄책감도 모자라 고문의 후유증으로 몸과 마음이 곪아가고 있는 사람들. 죽어서 혼이 된 이들의 목소리와 살아서 고통을 삼켜야 했던 입들을 대신해 한강 작가는 80년 광주를 이야기한다.



여전히 폭력과 공포는 생존자들의 곁에 들러붙어 있다. 불온서적의 출판담당자라는 이유로 사내에게 끌려가 일곱대의 뺨을 맞고, 하루에 한대씩 그 일곱대의 뺨을 잊겠다고 생각하는 은숙은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는 책 속 희곡의 문장처럼 살아간다. 광주에서의 일을 증언해줄 것을 요청받은 선주의 삶은 또 어떤가. “기억해달라고 윤은 말했다. 직면하고 증언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삼십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번 후벼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중략)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숴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살아남았으나 아니 살아남았기 때문에 인간을 믿지 않게 된 이들의 이야기는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탄식을 불러오고 그 탄식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품게 한다. 한강 작가는 반복해서 질문한다. 인간의 잔인함은, 야만성은 무엇인가.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그렇다면 그 폭력에 맞서게 하는 양심은 또 무엇인가.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특별히 숭고한 인간, 특별히 야만적인 인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면 남는 것은 이러한 질문이다.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그 당위의 행위로 한강 작가는 소설을 썼다. 10살 때까지 광주에서 살았던 작가는 일찍이 어른들 사이에서 광주의 비극이 얘기되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인간에 대한 의심과 회의가 컸고 동시에 그 의심을 뚫고 나가고 싶었다는 작가는 <소년이 온다>에서 빛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전한다. 햇볕이 내리쬐는 곳으로, 꽃이 핀 쪽으로 향하자고. 적어도 인간이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소년이 온다>의 책장을 덮으며 그런 질문이 남았다면, 됐다.



덧. 광주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독일의 방송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가 8월 2일 개봉한다. 서울의 택시운전사와 독일 기자의 눈으로 본 광주 이야기다.



“부마항쟁에 공수부대로 투입됐던 사람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습니다. 내 이력을 듣고 자신의 이력을 고백하더군요. 가능한 한 과격하게 진압하라는 명령이 있었다고 그가 말했습니다. 특별히 잔인하게 행동한 군인들에게는 상부에서 몇십만원씩 포상금이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동료 중 하나가 그에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뭐가 문제냐? 맷값을 주면서 사람을 패라는데, 안 팰 이유가 없지 않아? 베트남전에 파견됐던 어느 한국군 소대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들은 시골 마을회관에 여자들과 아이들, 노인들을 모아놓고 모두 불태워 죽였다지요. 그런 일들을 전시에 행한 뒤 포상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중 일부가 그 기억을 지니고 우리들을 죽이러 온 겁니다. 제주도에서, 관동과 난징에서, 보스니아에서, 모든 신대륙에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유전자에 새겨진 듯 동일한 잔인성으로.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날마다 만나는 모든 이들이 인간이란 것을.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선생도 인간입니다. (중략)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134~135쪽)



사람도 끓는다, 반드시_장준환 감독의 <1987>(가제)을 기다리는 당신에게




<100℃> 글·그림 최규석 / 창비 펴냄



30년 전 6월에 난 무얼 하고 있었나. 기억을 더듬어봐도 기억이 나지 않는 건 내가 평범한 미취학 아동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주의가 뭔지, 대통령 직선제가 뭔지, 호헌철폐가 뭔지 알 리 없는 보통의 어린이였던 나는 가방 메고 유치원에 갔다가 퇴원 후엔 놀이터에서 손에 흙 묻히며 놀았을 것이 뻔하다. 이처럼 역사가 개인의 삶에 직접 침투하지 않는 한 그것은 손에 잡히지 않는 먼 얘기가 되곤 한다. 많은 역사가 그렇지만 1987년의 6월 민주항쟁을 나는 책으로 배웠다. 지금의 20대 친구들에겐 최규석 작가의 <100℃>가 아마도 6월 민주항쟁을 이해하는 좋은 길잡이 도서였을 것이다. 최규석 작가는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로부터 작업을 제안받아 이 만화를 그렸다. 이 책은 2008년부터 전국 중·고등학교에 현대사 수업 보충교재로 배포됐는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최규석 작가는 녹록지 않은 작업을 수락했다고 한다. “똑같은 얘기라 하더라도 그 대상이 청소년이라면 하나마나한 소리도 꼭 해야 하는 소리가 된다”는 믿음과 “아무것도 아닌 것을 지키는 것이 생각보다 무척 어려운 일이고 우리의 민주주의가 안심할 정도로 튼튼하지도 않으며 끊임없이 강화하고 보완하려는 노력 없이는 어느 날 사람 좋아 보이는 도둑놈에 의해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하고 싶었”던 마음이 펜을 들게 한 것이다.



6월 민주항쟁 30주년을 맞은 올해 한정판이 나오기도 한 <100℃>는 민주화운동이 정점으로 치달았던 1987년으로 시계를 맞춘다. 작가는 “운동을 안 하자니 양심에 찔리고 하자니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너무 강”해 위악의 제스처를 취하곤 했던 85학번 새내기 영호를 중심인물로 내세워 6·10 민주항쟁이 발생하게 된 과정을 훑는다. “독재타도”, “호헌철폐”, “민주쟁취”를 외치며 공장으로 들어가고 거리로 나섰던 영호의 친구들, 데모는 빨갱이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믿었지만 ‘북괴의 지령을 받은 빨갱이’라는 말이 실은 군부 정권의 억압과 탄압의 도구였다는 것을 알고 ‘각성’하게 되는 영호 부모님의 이야기가 자연스레 서사에 녹아들어 있다. 1987년 1월 발생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6월 10일 범국민대회 하루 전날의 시위에서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이한열 열사에 대한 상징적 순간들도 빠짐없이 담겨 있다.




“물은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네. 하지만 사람의 온도는 잴 수가 없어. 지금 몇도인지, 얼마나 더 불을 때야 하는지. 그래서 불을 때다가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원래 안 끓는 거야 하며 포기를 하지. 하지만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민주화를 향한 진실된 열망의 투쟁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 될까봐 두려운 영호에게, 수십년 민주화투쟁을 이어온 옆방에 수감된 선생님이 들려주는 얘기다. “나라고 왜 흔들리지 않겠나. 다만 그럴 때마다 지금이 99도다, 그렇게 믿어야지. 99도에서 그만두면 너무 아깝잖아.” 그렇게 끓어오른 마음들이 모여 세상을 바꾸었다. 원하는 만큼의 변화와 속도는 아니었다 할지라도, 민주화 투쟁의 토대 위에서 우리는 또다시 촛불을 들 수 있었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고 노래할 수 있었다.



현대사를 다룬 청소년을 위한 교육용 만화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100℃>는 한권의 만화로서 충분한 몰입감과 완결성을 갖는다. 시시한 전체 관람가용 만화가 아니란 얘기다. 특히 이 책에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영호의 어머니가 투사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때이다. 아들이 투옥된 감옥의 담벼락을 훌쩍 뛰어넘어 나무에 올라간 어머니는 우렁차게 외친다. “영호야, 엄마 왔다.” 그 외침에 울컥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습지생태보고서> <송곳> 등 공고해진 계급사회에서 피라미드의 아랫변을 담당해온 이들, 다수의 평범한 우리의 이야기를 해온 최규석 작가의 냉철하면서도 뜨거운 시선이 <100℃>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참고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장준환 감독이 연출하고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이 출연하는 <1987>(가제)이 현재 제작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