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을 보며 가장 흥미로웠던 에피소드 중 하나는 2회 순천 편이었다. 유시민이 항소이유서에 얽힌 비화를 공개했는데 “보름 정도 쓸 시간이 있었다. 첫 문장부터 초고를 다 쓸 때까지 순수하게 쓴 시간은 14시간 정도다. 한번에 써야 해서 퇴고는 안 했다”라고 말해 출연자 모두 깜짝 놀랐다. 감옥에 누워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머릿속에서 다 구상했고, 한자도 오자가 나지 않게 미리 연습하여 일필휘지로 쓸 수 있었던 것. 초고와 수정고까지 이미 머릿속에서 작업을 끝냈던 것이다.
하지만 일행 중 김영하 작가만이 별로 놀라지 않았다. 작가들이 컴퓨터로 글을 쓰는 것이 일반화되기 전까지는 그것이 ‘글쓰기’의 일반적인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과거 펜과 종이가 비싸서 ‘썼다 없애는’ 일 자체가 큰맘 먹고 하는 일이었던 시절, 작가에게 마치 연극이나 뮤지컬 배우가 실수 없이 라이브 연기를 하듯 ‘단 한번’에 써내려갈 수 있는 능력은 중요한 덕목이었다. 그래서 문명의 발달은 인간의 기억력이나 또 다른 신체적 능력을 감퇴시킨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에 대해 역시 일행 중 정재승 교수는 인간의 뇌가 퇴화했다기보다 기억력 외의 다른 능력을 더 많이 활용하면서 “인간이 뇌를 사용하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번호에 만난(기획 <살인자의 기억법> 원작자 김영하 인터뷰) 김영하 작가가 얘기한 그 기억력의 문제는 영화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DVD도 비디오도 없던 시절, 영화는 극장에서 사라지고 나면 다시 볼 기회가 없었다. 2003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쇼 브러더스 회고전이 열렸을 때, 정성일 평론가도 <씨네21>에 기고한 글 ‘장철의 무협영화에 바치는 피 끓는 10대 소년의 막무가내 고백담’에서 “나는 <금연자>를 영원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때는 아직 지구상에 비디오가 없었다. 그것을 영원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걸 몽땅 기억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월요일부터 학교만 끝나면 미아리극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마지막 회까지 내내 보았다”고 했다. 심지어 기억을 남겨두려고 스케치북에다가 그림을 그렸다고도 했다. 영화잡지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극장 간판과 영화 포스터가 아니면 그 영화에 대해 남겨진 ‘이미지’조차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리라.
돌이켜보면, 그 ‘기억력’을 둘러싼 모든 변화가 지난 20∼30년 전의 일이다. 내가 영화기자 일을 처음 시작할 때도 ‘인터넷 검색’이란 것을 할 수 없었다. 정말 옛날 사람이 된 기분인데(-_-;) 변변한 보도자료도 없어서, 줄거리며 영화에 대한 정보며 순수하게 내 기억과 실력에만 의존해서 써야 했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그때는 장철의 <금연자>(1968), 히치콕의 <현기증>(1958),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1993) 뭐 그런 식으로 작품연도는 암기과목 공부하듯 외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인터넷 검색이 기사 작성에 동반되면서 그냥 자동적으로 잊어버리게 된 것들, 굳이 기억해두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꽤 많아졌다. 특정 정보에 대해 ‘내가 원래 알고 있던’ 것처럼 쓰는 일도 가능해졌다. 그렇다면 정재승 교수가 말한 것처럼 <씨네21> 기자들 모두 영화 관련 글쓰기에 관한 한 ‘뇌를 사용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터인데, 그게 여간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어쨌건 이번호 특집 ‘매혹당한 영화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영화에 관한 뇌를 사용하려는 안간힘으로 봐주면 좋겠다. 함께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