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조이스는 방랑자다. 20대 초반에 조국 아일랜드를 떠난 뒤 평생 외국에 머물렀다. 자전적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밝힌 대로, 조이스는 예술가로 살기 위해 ‘가족, 국가, 교회’와 결별한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의 가족과 조국 그리고 종교’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지 떠올리면 쉽게 짐작될 것이다. 게다가 조이스의 고국 아일랜드는 영국의 속국이었다. 아일랜드인이, 특히 조이스의 동창과 지인들이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의 이름 아래 대영(對英) 투쟁을 벌일 때다. 조이스는 오직 ‘예술’ 하나만 보고 이 모든 한계를 넘어가길 원했다. 영민한 아들 조이스가 가족과 조국을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 모친은 평생의 상처를 안았다. 조이스는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자발적인 망명길에 오른다. 조이스가 처음 정착한 곳이 트리에스테(Trieste), 이탈리아 북동부 끝에 있는 항구도시다. 1904년, 조이스의 나이 22살 때다(1904년은 조이스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중요하게 작동한다).
<더블린 사람들>이 싹튼 곳
트리에스테는 당시 이탈리아의 영토로 병합되기 전이었다. 트리에스테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주로 살고, 이탈리아 말이 통용되던 지역이었지만 당시엔 합스부르크 왕가가 통치하던 유럽의 패권국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항(軍港)이었다. 트리에스테는 1차대전 이후 이탈리아에 병합된다. 조이스는 이곳에서 영어강사 자리를 소개받고 자신보다 두살 아래인 미래의 아내 노라 버나클과 함께 야반도주하듯 더블린을 떠난다. 조이스는 떠나온 트리에스테에서 해군 장교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는데 이 자리마저 늘 불안했다. 게다가 조이스는 ‘아일랜드 사람답게’ 술을 엄청 많이 마셨고 돈 씀씀이가 헤펐다. ‘애송이’ 조이스는 작가로 대접받지 못했고, 연인 버나클은 하루하루 연명하듯 살림을 꾸렸다.
아일랜드의 영화감독 팻 머피는 제임스 조이스와 함께 트리에스테로 떠났던 연인 노라 버나클에 초점을 맞춘 전기영화 <노라>(2000)를 발표한다. 영화이론가 로라 멀비의 제자이기도 한 머피 감독은 페미니스트답게 조이스의 명성에 가려 거의 무명으로 지낸 파트너 버나클을 주목했다. ‘거장’ 조이스가 아니라 ‘평범한 여성’ 버나클에 초점을 맞춘 사실 자체가 남다른 시도였는데, 결과적으로 <노라>는 당대의 통념에 맞선 두 젊은이의 용기에 바치는 찬사였다. 말하자면 영화는 노라 버나클의 입장에서 서술한 제임스 조이스의 이탈리아에서의 삶인 셈이다.
<노라>는 조이스 커플이 트리에스테에서 보낸 10년간의 생활에 집중한다. 조이스는 트리에스테에서 훗날 자신의 출세작이 되는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을 쓰고 있다. 조이스는 조국을 떠나 더블린처럼 항구도시인 트리에스테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조국에서의 기억들을 하나씩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트리에스테는 이탈리아 문화권에 속한 도시였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항구답게 도시의 모습은 독일어권 도시들과 비슷하다. 좁고 높은 건물들이 빽빽하게, 그리고 질서 정연하게 들어서 있다. 말하자면 트리에스테는 중부 유럽과 남부 유럽의 도시 문화가 혼종돼 있는 곳이다. 다른 두 문화가 충돌하는 항구도시 트리에스테에서 조이스는 창작의 열정을 불태운다.
<더블린 사람들>은 모두 15편의 단편 모음집이다. 소년기, 성장기, 청년기, 장년기에 이르기까지 시간순으로 배열된 이 소설집의 마지막 작품이 <죽은 자들>(The Dead)이다. 가장 나중에 완성됐고, 가장 긴 단편이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가족 파티가 주요 내용이다. 눈이 소복하게 내리는 겨울밤에 친척들이 모여 회포를 풀며, ‘살아 있는 자’들의 행복을 서로 축하하는 자리다. 내레이터인 중년 남자는 소란했던 파티가 끝난 뒤 아내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본다. 아내는 그날 밤, 10대 시절 자신을 사랑했던 죽은 소년의 모습을 본 것 같다고 한다. 남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아내의 슬픔에 황당해하고 질투까지 느낀다. 하지만 그는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는 밤하늘의 눈을 보며, 바로 그날 모든 ‘죽은 자들’이 이승의 ‘산 자’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느낀다. 소복하게 쌓이는 밤눈이 그런 신비한 ‘만남’을 축복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단편 <죽은 자들>은 소설집의 마지막에 실려, 결과적으로 <더블린 사람들>의 전체적인 인상을 결정한다. 아내의 옛사랑의 죽음과 회한, 그리고 소복하게 내리는 눈은 <더블린 사람들>을 영원히 멜랑콜리한 세계로 남겨놓은 것이다.
<죽은 자들>이 완성되며, 그동안 숱하게 출판을 거절당하던 <더블린 사람들>은 1914년 드디어 발간됐다. 그런데 <죽은 자들>은 바로 아내 노라의 실제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이다. 트리에스테에서 조이스는 작가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했는데, 번번이 예술가로서 입신하는 데 실패했다. 영화 <노라>는 그 긴 좌절의 기록인데, 최종적으로는 마치 <죽은 자들>의 눈처럼 예술과 삶이 서로 접촉하는 신비한 순간을 그린 것이다. 말하자면 트리에스테 시절 조이스 문학의 특별한 테마인 ‘에피파니’(Epiphany, 문득 보이는 진실의 순간)는 바로 노라에게서 발견됐던 것이다.
조이스의 첫 망명지 트리에스테
단편 <죽은 자들>은 조이스 팬들에겐 보석 같은 작품이다. 이 소설을 각색한 영화가 존 휴스턴의 <죽은 자들>(1987)이다. 휴스턴이 81살을 일기로 죽은 해에 발표한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신비하게도 ‘노인’ 휴스턴의 마지막 작품은 ‘죽은 자’에 관한 영화였다. 친척들이 서로 기쁨을 과장하는 파티 분위기, 춤추는 장면, 식사 장면이 압도적으로 아름답게 촬영된 작품이다. 역시 마지막은 아내의 옛이야기로 끝맺는다. 영화의 내용은 더블린에서 있었던 일이지만, 그 소설이 트리에스테에서 어렵게 완성된 사실을 아는 조이스의 팬들에겐, 모든 내용이 더블린과 트리에스테 사이에서 일어난 꿈같은 이야기로 기억될 것이다. <죽은 자들>은 ‘마초맨’ 존 휴스턴이 제임스 조이스에게 표현한 최고의 헌사로 남아 있다.
제임스 조이스는 트리에스테에서 10년간 거주하며 이 지역 작가들과 교류했다. 특히 조이스는 이탈리아계 유대인 작가 이탈로 스베보를 만나며 문학적 전환점을 맞는다. 스베보는 프로이트에게 영향을 받은 소설 <제노의 의식>으로 유명한 작가다. 조이스는 그와 교류하며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사유를 확장했고, 결국 자신의 문학을 특징짓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서술 방식을 고안해냈다. 조이스와 스베보의 우정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어졌다. 조이스 문학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율리시스>의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의 캐릭터에는 ‘스베보의 의식’이 투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조이스는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를 자발적 망명지로 택해 그곳에서 거주한 뒤 드디어 작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조이스는 <더블린 사람들>과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썼다. 조이스는 1차대전이 발발한 뒤 스위스 취리히로 피신했고, 그 후 조이스에게 문학적으로 트리에스테만큼 중요한 도시 파리에서 전성기를 맞는다. 조이스는 파리에서 20년간 머물며 트리에스테에서 잉태한 걸작 <율리시스>를 완결짓고, 뒤이어 <피네건의 경야>를 쓴다. 현대문학의 거장 제임스 조이스의 삶은 망명지 트리에스테에서 보낸 10년과 파리에서 보낸 20년에 걸쳐 완성된다. 그 모든 찬란한 역사는 22살의 청년 조이스가 아일랜드에선 너무나 먼 곳, 트리에스테에 가지 않았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터다. 트리에스테는 ‘청년 조이스의 도전장’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