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국정원 ’엔터팀’ “대통령이 직접 액션도 하는 히어로물을 만들면 영화로도 안보를 할 수 있다”
2017-09-10
글 : 김완 (<한겨레> 탐사팀 기자)
글 : 정환봉 (한겨레21 기자)
글 : 하어영 (한겨레21 기자)
글 : 김성훈

<한겨레21> 국정원 2차장 산하 정보보안국

국정원 엔터팀 활동 최초 확인

오아무개 처장 등 요원들 영화계 전방위 사찰, 우익 영화 제작 독려

영화인들 “한 마디로 야만의 시대였다”

<변호인>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정보보안국 산하에 ‘엔터테인먼트’ 파트를 두고 진보 성향의 영화를 만든 영화인들을 사찰하고, 우익적 색채가 짙은 이른바 ‘국뽕’ 영화 제작을 기획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원의 이 같은 활동은 국정원법에 정해진 직무 범위를 벗어나는 것으로 명백한 불법이다.

<한겨레21>이 수십명에 이르는 영화계 인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국정원에 확인 작업을 벌인 결과, 박근혜 정부 시절 영화계 인사들을 사찰하고 이를 근거로 영화계의 제작·투자·배급 등 영화산업 전반에 개입했던 국정원 요원들을 뜻하는 ‘국정원 엔터팀’의 존재가 확인됐다. <한겨레21>의 취재 결과 엔터팀은 국내 정보수집 업무를 총괄하는 정보보안국 소속으로, 문화계 전반을 담당하는 오아무개 처장(3급)과 배○○와 이○○ 등이 요원으로 활동했다. 국정원 정보보안국은 국정원 내 핵심 부서로 당시 국장은 우병우 전 대통령 민정수석에게 각종 정보를 직접 보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추명호씨였다.

영화계 인사들은 ‘국정원 엔터팀’이 영화계 관계자들을 상대로 현재 제작 중인 영화와 제작 예정인 영화 등에 대한 정보를 집요하게 수집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관심을 기울인 것은 진보 성향의 영화를 제작하는 영화인들의 동향이었다. 복수의 영화계 관계자들은 “국정원 엔터팀이 인권 변호사였던 노무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그린 <변호인>(2013)에 유독 관심이 많았다”며 “<변호인>을 제작하는 회사가 어떤 성향인지, 어떤 취지인지 등을 파악해갔다”고 증언했다.

국정원은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주로 메이저 투자배급사들을 접촉했다. 특히, 엔터팀 배○○은 한 투자배급사의 고위 임원과 한 달에 한 번꼴로 만나 각종 영화계 동향을 수집한 것으로 확인됐다. 메이저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배씨가 회사 근처로 찾아와 전화를 걸면 임원이 밖으로 나가 만났다”며 “박근혜 정부는 영화계 전체가 좌편향돼 있다고 보고 있었다. 이를 아는 처지에서 국정원 직원이 제작 동향을 파악한다는 것 자체가 업계엔 상당한 상당한 위축 요인이었다”고 증언했다. 이들의 활동 범위는 국내에 머무르지 않고 미국 헐리우드 직배사를 망라했다. 진보 성향의 영화들이 국내 공적자금이 아닌 해외자금으로 제작됐기 때문이다. 한 직배사 관계자는 “국정원 요원이 수시로 투자배급사 직원들을 만나며 영화계에서 어떤 영화가 투자·제작되고 있는지 물어봤다”고 말했다.

이들의 활동은 ‘사찰’에만 멈추지 않았다. 국정원 요원들은 직접 영화 감독들을 직접 불러내 ‘애국 영화를 만들면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등 우파 콘텐츠 제작에도 나섰다. 특히 영화계에서 이름이 알려진 실력파 감독을 불러 모아 “대통령이 직접 액션도 하는 히어로물을 만들면 영화로도 안보를 할 수 있다”, “애국영화, 국뽕영화를 만든다면 30억원 정도는 대줄 수 있다”고 말하며 영화제작에 나설 것을 독려한 것으로 확인됐다. 영화진흥위원회 한 고위 관계자는 “이들의 활동으로 박근혜 정부 시절 한국 영화판의 투자 등 중요한 의사결정이 크게 뒤틀렸다. 2013년 이후 △박정희 △노무현 △친일 관련 영화에 대한 지원이 금기가 됐고, 그런 키워드가 들어간 영화는 지원이 안 됐다”고 밝혔다.

이처럼 수집된 영화계 정보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드러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의 밑돌이 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국정원 엔터팀의 활동에 대해 한 투자배급사 임원은 “한마디로 야만의 시대였다. 영화 제작 일정을 일일이 국정원이 확인하는 시대에 무슨 창조경제가 되고, 문화 융성이 있었겠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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