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청와대·국정원·문체부를 통한 지원 배제의 시스템.”
2017-09-10
글 : 김완 (<한겨레> 탐사팀 기자)
글 : 하어영 (한겨레21 기자)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판결문에 등장하는 이 표현은 지난해 말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작성과 운영 원리를 압축해 보여준다. 이 사건의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황병헌)는 판결문에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집행한 국가기관이 문체부와 국정원 양쪽임을 분명히 적시했다.

하지만 사법처리 과정에 국정원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다. 불법행위는 있었지만 책임지는 자가 없는 법적 공백이 생긴 셈이다. 블랙리스트 1심 재판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등 청와대와 문체부 핵심 관계자들을 처벌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등 주요 관계자들의 판결문에는 <한겨레21>이 이번에 확인한 ‘엔터팀’의 활동 말고도, 국정원이 저지른 다양한 불법행위의 흔적이 있다. 국정원이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사찰해 블랙리스트를 작성했고 이들을 배제하기 위해 실제 움직인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명확히 담겨 있는 것이다.

우선 김기춘 전 실장의 판결문을 보면, 2014년 2월 김 전 실장은 모철민 교육문화수석에게 “문예기금 지원 대상 선정 결과 좌파단체, 좌성향 작가 등이 포함됐다. 하반기 심사부터 이런 폐단이 시정될 수 있도록 하라”는 취지의 국정원 정보보고 문건을 전달한다. 이는 국정원이 문체부가 지원한 단체 및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파악해 청와대에 보고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아무개 전 청와대 비서관 판결문에도 “국정원 정보보고 문건에서 정부의 기금 지원 등을 문제 삼은 개인명·단체명, 문체부에서 국정원에 지원 배제 여부를 검토, 의뢰하여 받은 개인명·단체명”이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련된 기초 작업이 끝난 뒤, 이를 갱신하고 집행하는 과정에 국정원이 깊숙이 개입했음을 추정하게 하는 대목이다.

국정원의 동향 파악은 리스트 작성 수준을 넘어 실행 방법 입안도 포함됐다. 판결문에 등장하는 한 국정원 보고문건에는 △국립단체 필터링 위한 공모제 확대 및 심사기준 강화 △한예종 총장 좌성향 교수 보직교수 임명 유의 △연구 실적 부진 좌성향 교수의 퇴출 유도 등의 실행계획이 담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