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단독] 박근혜 정부 국정원 엔터팀도 있었다
2017-09-11
글 : 김완 (<한겨레> 탐사팀 기자)
글 : 정환봉 (한겨레21 기자)
글 : 하어영 (한겨레21 기자)
글 : 김성훈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내 핵심으로 꼽힌 추명호 정보보안국장은 우병우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 라인으로 “각종 정보를 청와대에 직보했다”는 의혹에 휩싸였지만 불구속 기소에 그쳤다.

영화 <변호인> 제작 과정 사찰부터 대통령 히어로 영화 투자 지원 언급까지

국내정보 수집 파트 산하에서 영화 제작·투자·배급 개입한 사실 확인

박근혜식 통치 이념 정책으로 ‘블랙리스트’가 어떻게 기획됐고 실행됐는지의 문제는 부족하지만 상대적으로 소상히 세상에 드러났다. 그건 명백한 국가 범죄, 일방적 피해 구조의 사슬이었다. 하지만 ‘화이트리스트’의 문제는 아직 온전히 발굴되지 않았다. 블랙리스트가 피해 구조라면, 화이트리스트는 ‘부패구조’의 문제다. 그 더러운 수혜자가 누구일까의 의문에서 취재를 시작했다.

<씨네21>과 함께 공동취재팀을 꾸려 지난 3개월여간 그 구조를 낱낱이 살폈다. 그 과정에서 뜻밖의 놀라운 사실을 확인했다. 박근혜 정부 국가정보원 내부에 ‘엔터테인먼트팀’(이하 엔터팀)으로 불린 위법한 조직이 존재했다. 청와대 직보 의혹을 받는 추명호 국정원 정보보안국장 산하에서 팀 형태로 운영되던 조직이었다. 국정원 엔터팀은 공적 기관과 민간 영역을 가리지 않고 은밀하고 대담하게 영화산업 전반을 흔들었다. 어떤 영화들은 국정원의 조종 속에 ‘마리오네트’처럼 제작이 착착 진행됐다. 국정원 엔터팀은 영화 제작 과정을 사찰하고, 투자를 방해하기도 했다. ‘대통령 히어로물’을 연출해줄 감독을 접촉하기도 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영화인 20여 명은 엔터팀의 존재가 “가장 반문화적인 야만”이라고 말했다.

<한겨레21>은 제1158호 표지이야기 ‘국정원, 우익청년 매수해 여론 조작 나섰다’를 통해 알파팀의 존재를 폭로했다. 이후 국정원 외곽 민간팀장이 48명에 이른다는 공식적 확인이 이뤄져 수사가 진행 중이다. <한겨레21>은 ‘엔터팀’의 활동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지속적으로 보도할 예정이다. 야만의 시대를 견뎌온 이들의 적극적인 제보를 기다린다. _편집자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엔터테인먼트’ 담당을 두고 영화 <변호인>(2013) 등 진보 성향의 영화를 제작한 영화인들을 사찰하고 이를 근거로 제작·투자·배급 등 영화산업 전 과정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영화계 안팎에서 ‘국정원 엔터팀’이라고 불린 이들은 국내정보 수집 업무를 총괄하는 정보보안국 소속인 것으로 <한겨레21> 취재 결과 확인됐다.

정보보안국은 국정원 내 핵심 부서로, 담당 국장이던 추명호씨는 박근혜 정부 국정원의 실세로 꼽힌 인물이다. 그는 우병우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에게 각종 정보를 직접 보고했다는 의혹을 받아오다 최근 퇴직했다. 국정원은 이들을 통해 영화계 인사들의 성향을 파악한 뒤 ‘자금줄’을 죄면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선전장관 노릇을 한 파울 괴벨스(1897~1945)가 시행했던 ‘국가적 문화통제’를 시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활동은 국정원의 직무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명백한 국정원법 위반이다.

NEW 제공. 복수의 영화 관계자들은 국정원이 영화 <변호인>에 유별난 관심을 보였다고 증언했다.

투자배급사 임원들 만나 영화계 동향 수집

<한겨레21>의 취재 결과 당시 추 국장이 이끄는 정보보안국 산하에는 문화계 전반을 담당하는 오아무개 처장(3급)이 있었고 그 밑에 배○○와 이○○ 등 최소 2명 이상의 엔터팀 요원이 활동했다. 이들의 활동은 민간 영역인 메이저 투자배급사를 수시로 출입하며 영화계 동향을 수집하고 유능한 영화감독 등을 직접 만나 ‘우파 영화를 만들면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것이었다. 이들의 활동으로 박근혜 정부 시절 한국 영화판의 투자 등 중요한 의사결정이 크게 뒤틀린다.

국정원 국내정보 수집 파트 소속 정보관들의 영향력은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막강하다. 이들이 올린 정보보고가 청와대를 통해 최고 권력자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검찰, 법원 등 주요 권력 기관의 기관장들도 5~6급 국정원 정보관의 정기·수시 면담 요청을 거부하기 힘들다. 국정원이 고위 공무원들을 상대로 수집한 정보가 ‘존안자료’라는 형태로 정리되고, 이 자료가 청와대에 보고돼 승진 인사 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고위 공무원의 경우 국정원 정보관의 펜 끝에 자신의 미래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간기업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정원에 밉보이면 어디에서 사업이 어그러질지 알 수 없다. 한 영화업계 관계자는 “청와대는 안 무서워도 국정원은 무섭다. 정권이야 5년이면 바뀌지만 국정원 직원은 계속 남아 있다. 어떤 방식으로 보복이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국정원 엔터팀이 소수 인력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어 영화산업 전반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던 이유다.

국정원 엔터팀이 영화산업을 장악하기 위해 주목한 곳은 메이저 투자배급사들이다. 국정원 엔터팀 배○○는 한 투자배급사의 고위 임원과 한 달에 한 번꼴로 만나 영화계 동향을 수집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배씨가 회사 근처로 찾아와 전화를 걸면 임원이 밖으로 나가 만나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국정원 엔터팀이 은밀히 임원들을 불러내 영화계 동향을 파악한 것이다. 이들이 주로 파악했던 정보는 현재 제작 중인 영화와 제작 예정 영화 등에 대한 정보였다. 이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는 영화계 전체가 좌편향돼 있다는 인식을 가졌다. 이를 아는 처지에서 국정원 직원이 제작 동향을 파악한다는 것 자체가 사업에 상당한 위축 요인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메이저 투자배급사 관계자도 “국정원 직원이 수시로 회사에 찾아와 고위 임원을 만났다.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를 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변호인> 제작에 유독 관심 많던 엔터팀

국정원의 동향 파악은 국내 기업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미국 할리우드 직배사도 대상이 됐다. 한 직배사 관계자는 “지난 정권에서 자신을 국정원 요원이라고 소개한 사람이 투자배급사 직원들을 수시로 만나며 영화계에서 어떤 영화가 투자·제작되고 있는지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다. 충무로에서 어떤 영화들이 준비되고 있는지 파악하려는 인상이 강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수집된 영화계 정보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드러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의 밑돌이 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국정원 엔터팀은 특정 성향의 영화에 유별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한겨레21>이 만난 복수의 영화계 관계자들은 엔터팀이 <변호인>에 유독 관심이 많았다고 증언했다. 한 메이저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변호인>을 제작하는 회사가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어떤 취지로 만드는지 등을 파악해갔다. 이 과정에서 동향 전달이 늦을 때는 짜증도 냈다”고 전했다. 인간 노무현이 인권변호사로 거듭나는 원점이 되는 ‘부림 사건’(1981)을 기록한 이 영화를 기점으로 국정원의 영화계 동향 파악과 감시가 확장됐다고 다수의 영화계 관계자들이 입을 모았다. 한 투자사 관계자는 “국정원 엔터팀이 <변호인> 관련 이슈에 대해 물어보며 확인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영화진흥위원회 고위 관계자 역시 “시기로는 2013년, 영화로는 <변호인> 이후 압박이 노골적으로 진행됐고, 정치적 콘텐츠의 금기도 많아졌다”고 증언했다.

영진위 고위 관계자가 밝힌 당시 지원 불가의 주제는 △박정희 △노무현 △친일 관련 영화였다. 이 관계자는 “그런 키워드가 들어간 영화는 절대 지원이 안 됐다”고 밝혔다. 실제 유명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어느 정도 흥행을 기록했던 한 영화의 투자 관계자는 “국정원 직원이 왜 박정희가 영화에 나오느냐”고 힐난하듯 물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는 영화 촬영이 시작되기도 전이었다. 외부에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는 사을 알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국정원 엔터팀 요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등장하는 장면의 의미를 묻고 시나리오를 받아갔다. 이후 이 영화는 정부 쪽 기금과 예산을 한 푼도 받지 못했고, 진행 중이던 은행 투자 역시 석연치 않은 이유로 좌절됐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부림 사건’의 피해자인 송기인 신부와 <변호인>을 관람하고 있다.

‘애국·국뽕 영화’ 30억원 투자 지원 언급도

국정원 엔터팀은 동향 파악을 넘어 실제 영화 제작을 기획하기도 했다. 다수의 영화를 연출했던 영화감독 ㄱ씨는 “2013년 말 ~2014년 초 국정원 직원에게서 연락받고 방이 나눠진 서울 강남의 한 횟집에 간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국정원 엔터팀의 이○○는 대뜸 “흔히 말하는 애국영화, 국뽕영화를 만든다면 국정원이 30억원 정도는 대줄 수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국장’이라고 불린 이를 포함해 복수의 국정원 직원이 참석했고, 또 다른 영화감독 ㄴ씨, 훗날 모태펀드를 관장하는 한국벤처 투자에 ‘낙하산’ 감사로 부임해 한국 영화 투자 전반에 블랙리스트를 적용한 신상한씨도 동석했다. ㄱ 감독은 “국정원 직원이 구체적으로 할리우드 영화 <에어포스 원>을 예로 들며 ‘할리우드에는 대통령이 주인공인 안보 의식 고취 영화가 많고 흥행도 한다. 국내에는 그런 영화가 없다. 대통령이 직접 액션도 하는 히어로물을 만들면 영화로 안보를 할 수 있다. 국내 영화인들은 그런 인식이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ㄱ 감독은 국정원 쪽에서 “구체적인 투자 얘기까지 했다. 내가 간첩 영화를 만들었던 것을 알고 제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직원이 “애국영화, 국뽕영화를 만든다면 30억원 정도는 대줄 수 있다”고 말한 것은 무슨 뜻일까. 영진위에서 오랫동안 영화 투자 업무를 담당해온 한 관계자는 “보수 정부 들어 이른바 현장에서 멀리 떠나 있던 ‘휴면 영화인’들이 건전 애국영화, 전쟁영화를 만들겠다며 수차례 투자를 요구해온 바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제시한 영화 주제는 육영수, 이승만 전 대통령 등을 노골적으로 내세운 작품들이었다. 이 관계자는 “그런 경우 국정원에서 왔나 의심스러운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투자 결정은 ‘이념 문제’보다 ‘투자금 회수’가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함량 미달이라면 우선 ‘메인 투자’를 잡아오라 말하고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이들이 만들겠다는 영화는 대개 전쟁영화였다. 제작 비용은 최소 50억~70억원 선이었다. 그는 “이런 규모의 영화를 만들려면 CJ나 롯데 같은 큰 회사들이 완성보험을 들어줘야 한다. 5억원, 10억원 투자로는 제작비의 코어(중심축)가 될 수 없다. 최소한 투자금의 절반 정도를 담당할 메인 투자자가 있어야 가능하다. 국정원의 제안은 그 코어를 만들어주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국정원 엔터팀의 활동은 “영화계 전반의 위축”으로 이어졌다. 한 투자배급사 임원은 “한마디로 야만의 시대였다. 영화 제작 일정을 일일이 국정원이 확인하는 시대에 무슨 창조경제가 되고, 문화 융성이 있었겠나”라고 말했다.

직무 범위 벗어난 불법행위

국정원이 엔터팀을 운영하며 영화계의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하는 것은 불법이다. 국정원법 제3조는 국정원의 직무 범위를, 첫째 국외 정보 및 국내 보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 둘째 국가 기밀에 속하는 문서·자재·시설 및 지역에 대한 보안 업무로 제한하고 있다. 영화 제작 동향은 국내 보안 정보가 아니다. 영화 제작업무 역시 국가 기밀에 속하는 보안 업무가 아니다. 이런 법령을 모를 리 없는 국정원 엔터팀은 영화 제작 및 투자뿐 아니라 직접 영화인까지 만나 보수적인 국뽕 콘텐츠를 확산시키려 했으며, 정치색이 뚜렷하지 않은 영화를 ‘좌파’로 낙인찍어 동향 파악에 나서는 등 압박을 가했다.

그로 인해 영화인들은 일상적으로 자기검열에 시달리게 됐다. 엔터팀의 활동으로 영화인과 투자배급사들은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창조를 강조하는 정권에서 벌어진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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