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MB 정부 시기의 문화·연예계 정부 비판세력 퇴출건’ 조사 결과 드러난 블랙리스트에 오른 영화인들의 반응
2017-09-18
글 : 김성훈
사진 : 씨네21 사진팀
풍문보다 더했다

문성근 배우

국정원 개혁위원회가 적폐청산 TF로부터 보고받은 ‘MB 정부 시기의 문화·연예계 정부 비판세력 퇴출건’ 조사 결과로 드러난 블랙리스트에 영화감독이 무려 52명(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등)에 이르며 다른 문화·예술 분야에 비해 압도적이더라. 국가정보 전문가들로부터 영화와 영화인들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받은 것 같아 매우 기쁘다. (웃음) ‘이명박근혜’ 정권 기간 동안 영화계, 특히 독립영화와 민간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이 정부 지원을 못 받지 않았나. 지난 9년 동안 스마트폰이 사용하기 편리하다는 이점이 있는 반면 (감청이나 도청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아이폰을 사용하고, 텔레그램이나 아이메시지를 통해 문자를 주고받은 것도 그래서다. 이번 공개된 문화·예술인 사찰은 사생활을 일일이 들여다보진 않았겠으나 동향을 광범위하게 파악했다는 점에서 국가폭력이라 할 수 있겠다. 문화·예술인을 포함해 KBS, MBC 같은 방송사와 대기업 투자·배급사에 대한 블랙리스트가 작동됐다는 것은 그것을 실행한 공무원들이 있다는 얘기다. 이들의 범법 행위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수사가 필요하다. 모태펀드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한국벤처투자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 방송사와 대기업 투자·배급사의 내부 고발과 증언 그리고 고백이 계속 나와야 한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에 거는 기대다.

김조광수 청년필름 대표·감독

MB 정권 때 영화인들이 광우병 촛불집회, 민주노동당 지지 선언 등 시국 선언에 많이 참여했다. 영화인들의 시국 선언 참여는 MB 정권 이전에도 많았다. 참여정부 때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기도 했고. 어쨌거나 당시 시국 선언을 조직하는 일을 했었는데, 광우병 촛불집회 때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직원들도 참여해달라고 요청한 적 있다. 집회 이후 촛불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 때문에 영진위 직원들이 징계를 받는 걸 지켜보면서 시국 참여를 독려할 때 자기 검열을 하게 되더라. 내가 피해를 보는 건 괜찮지만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피해볼 수 있으니까.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이 엔터팀을 따로 운영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국정원이 영화계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실제로 정보 기관이 어떤 유의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는 발상 자체가 대한민국을, 30, 40년 전으로 되돌린 일이다. 댓글을 단 것만으로도 한심했는데 말이다.

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이명박 정권 초기에 좌파 영화제로 찍혔고, 집행위원장인 내가 '빨갱이'소리까지 들어서 국정원의 블랙리스트 문건이 있으리라는 사실을 예상하고 있었다. 과거 문화·예술인들을 담당했던 국정원 요원이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영화인들을 만났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막상 상세하게 작성된 문건 내용을 보니 어이가 없다. 지난주 문화체육관광부가 운영을 시작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에 가서 지난 정권에서 부산국제영화제에 있었던 일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지난 정권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소상히 밝혀져야 한다.

이준익 감독

70년대의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21세기에 통할 리 없다. 창작은 통제와 강요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준동 나우필름·파인하우스필름 대표

개인적으로나 회사 차원에서 국정원 사찰을 당한 적은 없다. 기사 내용을 보니 돈줄을 쥐고 있는 대기업 투자·배급사 투자팀을 직간접적으로 압박한 게 아닌가 싶다. '이명박근혜'정권을 거치면서 민주화 투쟁을 통해 몇 십년 동안 이루해 온 민주주의가 퇴행됐다. 영화계가 몇십년 동안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영화를 만들어오지 않았나. 그런데 지난 정권의 국정원은 자신들 마음대로 '대통령이 직접 액션도 하는 히어로물을 만들려고 했다'는 발상 자체가 영화와 영화산업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고 볼 수 있다.그것은 창조경제의 의미를 하나도 몰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막강한 권력을 앞세운 정보기관의사찰은 창작자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고, 현장에서 위축된다는 것은 자기 검열로 이어진다. 영화계가 무슨 작품을 만드는지 파악하는 일이 국정원 업무와 무슨 상관이 있나. 영화를 만드는 데 써야 할 에너지를 정보기관의 검열과 사찰에 쓰는 건 분명한 낭비다.국정원의 영화계 사찰은 이런저런 풍문을 들어 짐작은 했지만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어이없기도 하고, 분노가 앞서기도 한다.

정지영 감독

지난 9년 동안 국정원이 영화인들을 사찰할 거라는 사실을 예측하고 있었다. <부러진 화살>(2011), <남영동1985>(2012)를 연달아 연출했고,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2013)를 제작하며 활발하게 작업하다가 어느 순간 일이 잘 풀리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당시 투자가 잘되지 않았던 건 흥행 감독도 아니고,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투자자들이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불편해한다, 같은 얘기를 간접적으로 들은 적 있다. 지난 6월 28일 개봉했던 다큐멘터리 <직지코드>(2017)는 콘텐츠진흥원에 지원을 요청했는데 심사에서 떨어진 게 내가 블랙리스트에 속한 감독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소신껏 일해왔는데 그게 권력에 미운털이 박힌 건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 않나. 다만,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서는 안 된다. 우리(영화인)는 지금까지 싸워왔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싸워나갈 것이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는 올랐지만 국정원이 따로 만나자고 하거나 연락해온 적은 없다. 지난 정권의 국정원 사찰은 한국 사회에 전방위적으로 자행된 일인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특정 이데올로기에 편향된 영화에 투자하고, 만들라고 독려한 건 단순한 사찰을 넘어선 일이라 할 수 있다. 국정원이 <변호인>(2013)에 관심을 보이며 제작 진행을 파악했던 일이나 한국벤처투자의 모 전문위원이 모태펀드 블랙리스트를 실행했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지만, 이토록 ‘화이트리스트’를 독려한 건 처음 들었고 매우 놀랍다. 얼마 전 업무를 시작한 문화체육관광부의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와 국정원 TF팀이 영화산업에 개입한 국정원에 대한 진상을 철저하게 조사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권해효 배우

MB 정권의 국정원 블랙리스트에 오른 영화감독이 무려 52명에 이른다는 건 그만큼 영화계를 장악하기 힘들었다는 방증이다. 그게 인사권을 이용해 조직을 장악했던 공영방송의 경우와 가장 큰? 이점이다. 대기업 투자·배급사가 시국선언에 참여했다거나 정권과 어울리지 않는 정치적 성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배우와 스탭들을 A, B, C등급으로 분류해 관리를 해왔다는 정황이 있었다. 대기업의 정권 눈치보기인지 아니면 청와대나 국정원이 이런 문건을 토대로 그런 지시를 내렸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국정원이 블랙리스트 문건을 작성해 영화계를 사찰했다는 사실이다. 새 정부는 이것을 철저하게 조사·수사해야 한다.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MB 블랙리스트에는 다수의 독립영화인이 포함되어 있다. 역시나 예상했던 것이라 그리 놀랍지는 않다. MB 정부 초기, 수많은 성명서와 입장을 독립영화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발표했다. 서울독립영화제는 2008년 ‘촛불 섹션’을 별도로 신설해 작품 공모를 진행했는데, 그 까닭에 2009년 대규모로 실시된 시민사회단체감사에서 표적이 되었다. 실제로 감사를 받는 동안 ‘촛불’에 상당히 집착하는 인상을 받았다. 별 내용이 없으니 실망하는 듯했다. 공개된 리스트에는 한국독립영화협회, 서울독립영화제,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강릉시네마떼끄, 대구독립영화협회 등의 주요 활동가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수집경로가 어떠하든 독립영화에 대한 노골적인 배제로 읽힌다. MB 정부는 여러 방식의 공격을 통해 독립영화를 초토화하려 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의 강한섭 위원장 때 독립영화라는 말을 지우고 비상업영화라는 말로 대체하려 하기도 했다.

원승환 인디스페이스 부관장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9년부터 흉흉한 소문 떠돌았다. 정권의 반대자로 분류된 영화인과 영화단체의 리스트가 작성되었고, 리스트에 들어 있는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감찰과 배제가 있을 것이라는 게 소문의 내용이었다. 그리고 2009년 영화단체와 영화제에 대한 감사원의 표적감사가 진행되었다. 강한섭 위원장 체제의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의 사업자를 교체했고, 이후 조희문 위원장 체제의 영진위는 제작지원사업에서 이창동 감독의 <시> 시나리오에 0점을 주었다. 유인촌 장관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는 2010년 독립영화 제작지원 사업의 폐지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번에 밝혀진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일부에 불과하다. 이명박 정부는 좌파 청산이라는 미명 아래 영화계를 옥죄었고 탄압했다. 그리고 화이트리스트를 급하게 만들어 얼토당토않은 지원을 강행했다. 더 많은 것들이 밝혀져야 한다. 그리고 바로잡혀야 한다.

양우석 감독

<변호인>(2013)을 만들고 난 뒤 주변에서 조심하라는 걱정을 많이 해주셨다. 모태펀드 투자를 받는 게 힘들 거라는 얘기도 들었다. 다행히도 큰 어려움 없이 신작 <강철비>를 진행할 수 있었다. 영화를 포함한 문화콘텐츠는 자금 여력이 약한 분야고, 특히 영화는 유료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매체인 까닭에 권력이 정치적으로 개입하면 쉽게 위축될 수 있다. 지난 9년 동안 정권은 영화인들이 좌편향되었다고 했지만 그들의 표현대로 관객이 좌편향된 영화를 보기 때문에 영화인들이 그런 영화를 만드는 거다. 국정원이 좌편향된 영화인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하는 건 좌편향된 국민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거나 다름없다. 결국은 일부만의 국가를 운영하겠다는 얘기다. 지난 정권의 국정원이 영화계를 사찰하고, 우파 영화를 제작하려고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회가 퇴보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분노보다 슬픔이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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