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박성웅이 주로 보여준 캐릭터는 눈에 힘준 인물이었다. 장르영화 속 악역이거나 센 캐릭터이거나. 평소의 그가 유머러스하고, 장난기 많으며, 솔직하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만 알 뿐이다. <메소드>에서 박성웅이 연기한 재하는 배역에 몰입해 연기하기로 정평이 난 연극배우다. 연기에 관한 한 강한 신념을 가진 그는 아이돌 스타 영우(오승훈)와 함께 연극을 준비하다가 배역의 감정에 휩쓸려 사랑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실제 모습과 닮은 구석이 많은 캐릭터인 데다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설정인 이야기는 이번이 처음인 까닭에 재하는 박성웅에게 “도전”이었다.
-영화는 어땠나.
-빡빡하게 진행됐던 촬영 상황과 현장 환경 등을 고려했을 때 아주 만족한다.
-재하는 박성웅의 실제 모습 중에서 솔직하고 부드러운 면모와 닮은 구석이 많던데.
=하하하. 역시 아는 사람은 안다니까.
-악역이나 센 캐릭터를 주로 맡아온 까닭에 출연 제안이 들어왔을 때 반가웠을 것 같다.
=너무 해보고 싶었던 역할이다. 어떤 감독이 내게서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면모를 끄집어내줄까, 이 영화에는 없지만 코믹한 모습을 캐치해 보여줄까 늘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 들어오잖아. (웃음) 방은진 감독이 내게 재하 같은 면모를 봤나보다.
-가까이 지내고 있는 감독들은 박성웅의 그런 면모를 잘 알고 있지 않나.
=다 능력이 없어. (웃음)
-재하는 대학로에서 메소드 연기로 유명한 배우인데.
=연기를 사랑하는 연극배우이자 후배(영우)의 연기를 처음에는 못마땅해하는 정통파 배우다. 여자친구 희원(윤승아)과 몇번 헤어지고 다시 만날 만큼 정도 많이 쌓였다. 희원과 사귀는 8년 동안 메소드 연기를 할 때마다 사고를 쳤었고. 그러다가 영우와 사랑에 빠지는 인물인데 퀴어 코드가 있어 배우로서 큰 도전이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연극배우로서 지난 시절도 생각났나.
=전혀. 재하처럼 대학로 최고의 배우가 아니었으니까. (웃음) 촬영 일주일 전에 출연이 결정돼 모든 장면을 신경 써서 준비해야 했다. 23일 동안 18회차를 촬영했는데, 다행히 촬영 기간 동안 준비 중이었던 다른 두편의 촬영이 없었던 까닭에 오로지 재하로만 살 수 있었다.
-로딩하는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급박하게 촬영 들어가는 바람에 많이 불안했을 것 같다.
=오히려 와이파이가 재빨리 잡혔다. (웃음) 로딩할 여유가 없었으니 항상 대본을 들고 다니면서 재하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감사하게도 방은진 감독이 나를 상당히 신뢰하는 것 같아서 보답하기 위해 엄청 열심히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 작전이었다. (웃음)
-재하가 영우에게 이끌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히 설명할 순 없지만, 메소드 연기를 하는 배우로서 재하는 연기를 실제처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애송이 같다고 생각한 영우가 작품을 이해하는 과정을 지켜보다가 무대에서 연습하는 순간 감정이 오갔고, 그게 진심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때 살짝 영우에게 흔들렸지만 희원이 다가오면서 다시 마음을 잡았고. 감정이 변하는 과정을 상황에 맞게 표현하는 게 관건이었는데 여러 이유 때문에 순서대로 찍지 않아 감독과 수시로 상의하고, 확인하며 작업해야 했다.
-실제로 재하처럼 작업하다가 상대배우에게 이끌린 적은 없나. 가령 <신세계>(감독 박훈정, 2013)처럼 남자들이 많이 나오는 작품에서.
=<신세계>에서 무슨 감정을 느껴. (일동 폭소) 작업하다가 상대배우에게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은 없다. 다만, <신세계>를 하면서 한재덕 사나이픽처스 대표에게 매료돼 <남자가 사랑할 때>(감독 한동욱, 2013), <무뢰한>(감독 오승욱, 2014)에 연달아 자진해서 참여했다.
-곧 개봉하는 <꾼>에도 출연한다. 어떤 역할인가.
=희대의 사기꾼 장두칠의 오른팔. (침묵하자 ‘그게 다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더이상 얘기하면 안 된다니까. 영화에서 키를 쥐고 있는 몇몇 인물이 있는데 그중 하나다. 여자를 순수하게 좋아하고, 돈세탁만 할 뿐 무척 착하다. (웃음) 이제껏 보지 못한 박성웅의 면모를 볼 수 있을 거다. (큰소리로) 어마무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