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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무용영화제 정의숙 집행위원장 - 대중성 갖춘 무용영화로 관객과 만나겠다
2017-11-02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백종헌
제1회 서울무용영화제 여는 정의숙 집행위원장

제1회 서울무용영화제가 11월 3일부터 5일까지 명보아트홀 명보아트시네마, 예술통 코쿤홀에서 열린다. 7개 부문 31편의 무용영화를 선보일 이번 영화제의 캐치프레이즈는 ‘춤, 영화로 담다’. 이는 영상을 통해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예술적 경험으로서의 무용을 대중에게 알리고자 하는 영화제의 취지를 반영하고 있다. 정의숙 서울무용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국내에 무용영화를 소개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아지드현대무용단을 이끄는 대표이자 베테랑 안무가로, 성균관대 예술학부 무용학 전공 교수로 오랫동안 후학을 양성해온 그는 이제 무용과 영화의 만남을 통해 몸의 언어에 대한 관심을 대중적으로 확장하는 예술적 도전에 나섰다.

-서울무용영화제를 구상하게 된 계기는.

=몇년 전부터 변혁 감독(<주홍글씨>)과 함께 현대무용과 영상이 어우러지는 융·복합 공연(<윤이상을 만나다> <최후의 만찬> <자유부인>)을 만들어왔다. 그런 작업을 하다보니 영상매체를 통해 대중이 무용을 좀더 가까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됐다. 해외에는 ‘댄스필름’(무용을 촬영한 영상)이라는 장르가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무용계는 창작 안무를 무대에 올리는 데 좀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황이다. 보다 대중적인 영상 매체와의 결합을 통해 또 다른 무용 장르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영화제를 기획하게 됐다.

-무용 전문가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영상 매체의 매력은 무엇인가.

=무대는 시공간이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영상은 무한대의 시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무용의 한계를 영상이 보완해줄 수 있다고 본다. 일례로 변혁 감독과 융·복합 공연 <윤이상을 만나다>를 작업했을 때, 공연 전날 베를린에 있는 윤이상 작곡가의 무덤을 영상으로 찍었다. 무덤에 자라난 잔디가 바람에 흔들리는 생생한 영상을 전송받아 공연의 마지막 대목에 상영했다. 이처럼 영상이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는, 또 다른 무용수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제를 기획하며 참고한 국내외 영화제가 있다면.

=해외 무용영화제에서는 춤 자체가 영화의 주제가 되는 ‘스크린 댄스’가 대세다. 하지만 이런 스타일의 영화만 상영한다면 보다 많은 관객층을 무용영화제로 유도하기 힘들기 때문에, 부산국제영화제와 같은 대중적인 영화제의 프로그램을 참고하기도 했다. 7개 부문으로 구성된 제1회 서울무용영화제에는 테크놀로지를 도입한 현대무용가 로이 풀러의 삶을 다룬 개막작 <더 댄서>처럼 실존했던 무용가를 중심인물로 한 극영화도 있고, 지난 2년간 샌프란시스코댄스필름페스티벌에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을 조명한 ‘댄스필름NOW’처럼 댄스필름의 최신 경향을 만날 수 있는 부문도 있다.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가 베토벤의 교향곡에 맞춰 춤을 만드는 과정을 조명한 폐막작 <댄싱 베토벤>과 같이 무용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도 상영할 예정이다. 정리하자면 특정 영화제가 롤모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는, 대중적인 프로그래밍이 제1회 영화제의 목표다.

-대중성을 갖춘 작품을 선택하려 했다 하더라도, 프로그래밍이 쉽지만은 않았을 듯하다.

=영화제 경험이 있는 스탭이라도 무용영화를 전문적으로 프로그래밍한 경험이 있는 분을 찾기가 어려웠다. 때문에 프로그래밍에 있어서는 다양한 경력을 지닌 분들로 구성된 집행위원회(민규동·변혁 감독, 연극배우 박정자, 조선희 전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최태지 국립발레단 명예단장 외 8명)의 도움을 받았다. 해외 무용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들을 추천 받기도 하고, <분홍신>(1948)과 같은 고전영화 상영작에 대한 고려도 있었다.

-상영작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나름의 원칙이나 기준이 있었다면.

=‘이 작품을 무용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작품은 배제했다. 일부 작품은 무용보다 시사적인 이슈나 사회성에 방점을 두는 경우도 있었다. 앞으로는 더 넓은 의미의 무용영화를 포괄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올해가 1회이다보니 상대적으로 무용영화로서의 개성이 더 두드러지는 작품들을 선정했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공모전에 출품된 작품 중 7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첫 번째 공모전의 성과를 평가한다면.

=국내 무용영화 시장을 형성하고 지원하자는 취지로 공모전을 열었는데, 100여편의 작품이 들어와 놀랐다. 이번 공모전을 통해 앞으로 무용영화 장르의 발전 가능성이 충분하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무엇보다 무용수들이나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 몸이라는 주제로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많더라. 아기 엄마가 된 발레리나가 가정생활과 꿈을 병행하는 이야기(<발레리나>), 길거리건 시장이건 불특정 다수의 관객을 상대로 춤을 추는 예술가들의 여정을 담은 영화(<잊지 않을 행진>) 등 흥미로운 작품들이 많았다. 앞으로는 극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스크린 댄스 등 부문을 나누어 심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싶다.

-명보아트홀과 예술통 코쿤홀을 영화제의 메인 공간으로 선택했다. 국내의 많은 영화제들이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이색적인 행보다.

=물론 멀티플렉스에서 영화제를 여는 걸 고려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롯이 무용영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코쿤홀의 경우 장소 자체가 굉장히 빈티지스러운 느낌이다. ‘댄스필름 NOW’ 부문 영화들은 테크놀로지와 밀접한 연관을 지닌 작품들이 많은데, 이런 첨단화된 기술의 영화와 고전적 공간이 만났을 때 보다 예술적인 느낌을 연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보극장의 경우 코쿤홀보다 더 확장된 영화 상영 공간을 찾다가 허은도 대표의 도움으로 영화를 상영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2018년에 (성균관대 예술학부 무용학 전공 교수로) 정년퇴임을 한다. 제1회 서울무용영화제를 구상하며 너무 늦은 나이에 뭔가를 시작한다는 게 두렵기도 했지만, 우리 영화제의 자문을 맡아주신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도 예순이 넘은 나이에 영화제 업무를 시작했다는 일화를 되새기며 영화제를 준비했다. 보다 빠른 시일 내에 영화제가 발전하려면 무용하는 사람들과 영화인들, 관객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축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몸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영화제로 자리잡았으면 한다. 지금 현재 ‘몸’이라는 말은 폭력 등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부정적 이미지에 가깝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사랑의 몸,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몸, 소통하는 몸, 뭔가를 생산하는 몸. 긍정적인 감각의 존재로서의 몸을 조명하는 영화들을 소개하고 싶다. 궁극적으로는 해외의 안무가들이 작품을 출품하고 국내에서 만든 무용영화를 해외에 소개할 수 있는 창구가 되는, 국제영화제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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