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씨네21 추천도서 <아홉번째 파도>
2017-11-21
글 : 김송희 (자유기고가)
사진 : 백종헌
<아홉번째 파도> 최은미 지음 / 문학동네 펴냄

노인이 죽었다. 경로당에서 마신 막걸리에서 죽음을 야기한 독극물이 검출되었다. 형사는 보건소 약무주사보인 송인화를 찾아간다. 죽은 노인은 18년 전 일어난 시멘트 회사 직원의 자살사건의 용의자였던 인물이고 송인화는 자살한 이의 딸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그 도시를 떠났던 여자는 어른이 되어 다시 돌아와 공무원으로 일한다. 표정이 좀처럼 읽히지 않는 그녀는 보건소 업무차 노인들을 방문해 복용약을 검사한다. 해안가에 위치한 작은 소도시에 사는 가난한 노인들은 약이 없으면 잠도 잘 수 없다고 앓는 소리를 한다. 코끼리산과 유리골이 감싸안고 근처에는 석회동굴이 있는, 차를 몰고 내달리면 어라항이 코앞에 있는 해안도시. 그 도시의 이름은 척주다. 척주시에 핵발전소를 유치하려는 계획이 추진되면서 도시는 반대파와 찬성파로 나뉘어 다투고, 시장은 주민소환 투표를 하겠다고 공언한다.

핵발전소 건립을 둘러싼 정치꾼들과 환경단체의 다툼, 소도시의 살 속 깊숙이 침투해 아픈 사람들을 꾀는 사이비종교 집단과 각자의 이익에 따라 어느 편에든 서야 하는 공무원과 시민들. 척주는 가상의 도시이지만 작가는 쇠락한 해안도시 구도심의 작은 상점과 어라항의 점멸하는 불빛, 회센터의 비릿한 냄새까지도 세밀하게 묘사해냈다. 지금 대한민국의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 핵발전소 건립을 소재로 했지만 이야기는 점점 번져가 빤히 보인다고 생각했던 인물들은 점차 미스터리한 표정을 짓는다. 쇠락한 도시의 풍경을 둘러싼 인물들의 속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사건은 휘몰아치고 엄청난 흡인력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최은미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사나운 풍랑

서상화가 약봉지를 만질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다른 모든 소리와 구별되는, 약봉지 구겨지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송인화는 밤이 되면 칠흑 같이 어두워질 방문 밖의 바다를 생각했다. 밤새 불어올 바람에 대해서도, 절벽 끝 같은 집에서 홀로 겪어야 하는 통증에 대해서도. 그때마다 노인이 퍼부은 저주가 가슴을 그었다.(72~73쪽)

몸싸움이 벌어졌던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게 문화예술회관 앞은 조용했다. 윤태진이 이곳에서 박성호와 명함을 주고받은 날은 한수원에서 원전 관련 주민 설명회를 열던 날이었다. 앞쪽에서는 경찰이, 뒤쪽에서는 박성호 패거리가 원전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입장을 막고 있었다. ‘척주의 새로운 성장 동력, 원자력발전입니다.’ 회관 입구에 걸린 대형 플래카드 앞에서 주민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들은 ‘땅을 해치지 말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몸에 감고 어떻게든 설명회장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106~1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