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체관람가> 출연한 임필성·이원석 감독, "매체를 오가며 활동하면 자극도 되고 시너지 효과도 난다"
2017-11-23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이원석 감독, 임필성 감독(왼쪽부터).

“감독이 방송에 나가서 얼굴을 판다고?” JTBC의 주말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에 참여한 감독들이 자주 들은 얘기라고 한다. 그동안 영화의 개봉 직후에나 TV에서 볼 수 있었던 감독들의 모습을 예능에서 본다는 건 분명 신선하고도 낯선 경험이다. <전체관람가>는 10명의 감독이 12분 내외의 단편영화를 만들고 완성된 영화를 상영하기까지의 과정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이명세·봉만대·박광현·임필성·정윤철·이경미·양익준·이원석·창 감독과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독립영화 감독이 각 영화의 연출을 맡는다. 최근까지 5회분을 방영한 이 프로그램에서 단연 화제가 됐던 작품은 이원석 감독(<남자사용설명서> <상의원>)의 <랄라랜드>였다. ‘노래방 뮤지컬’이라는 신종 장르와 김보성, 이동준 등 왕년의 액션배우를 캐스팅한 파격적인 연출은 최근의 한국 상업영화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랄라랜드>를 연출한 이원석 감독과 배우 전도연을 캐스팅한 단편영화 <보금자리>(11월 19일 방영)의 상영을 앞두고 있는 임필성 감독(<남극일기> <마담 뺑덕>)을 만났다. 영화계 선후배이자 친한 형, 동생 사이인 이들은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만드는 올레국제스마트폰영화제의 집행위원으로 함께 참여하는 등 다양한 플랫폼에 열려 있는 감독이다. 영화와 TV, 모바일과 웹. 플랫폼의 경계가 점차 흐릿해지는 이 시기에, 방송은 영화감독들에게 어떤 기회의 문을 열어 주었나.

-방송에 출연하고 주변의 반응이 어땠나.

=이원석_ 처음엔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다. ‘감독이 연예인도 아니고 방송에 나가서 얼굴을 파냐’는 식의 얘기가 많았다. 나 역시 모든 감독들이 하나의 프로그램을 위해 소모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있었다. 막상 촬영하면서는 출연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제작진의 진정성을 느꼈다. ‘악마의 편집’을 하지 않는 점도 그렇고, 단편영화 수익으로 독립영화하는 분들을 도울 수 있다는 취지, 대중에게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이 좋았다.

=임필성_ 나도 회사에서 걱정을 했다. 지금 준비 중인 장편영화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전체관람가>에 출연하게 된 건 함께하는 감독들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기도 했다. 이명세 감독님부터 곧 ‘히든카드’로 등장할 독립영화계 모 감독님까지, 출연하는 분들의 면면이 균형감 있고 흥미로웠다. 그리고 지난 2015년 모그 음악감독, 박승건 디자이너와 함께 국립무용단에서 <적>(赤)이라는 공연을 올렸는데 그 작품을 통해 다양한 매체와의 컬래버레이션이 신선한 에너지를 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전체관람가> 역시 영화와 방송의 협업이라는 점이 좋았다.

-방송을 보니 많은 감독들이 “장편이었으면 이런 영화 못 만들었다”는 말을 하더라. 창작에 대한 갈증도 <전체관람가> 출연을 결심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임필성_ 나는 독립 단편영화 작업으로 영화를 시작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영화가 ‘일’처럼 느껴지고, 자본에 관련되지 않은 순수한 에너지로 작업하는 일과 점점 멀어지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체관람가>에서 만드는 단편영화도 제작비와 등급, 제작기간 등 여러 가지 한계가 있지만 그 안에서 자유롭게 무엇이든 찍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타이트한 일정에 소수의 스탭들과 일을 하다보니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었다고 할까. 그렇게 <전체관람가>를 찍으며 매너리즘을 극복했다.

이원석_ <상의원>을 끝낸 뒤 오랜 방황의 시간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고 만들고 싶은 영화를 한국에서 찍기가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중국영화를 하려고 2년동안 준비하다가, 사드 이슈가 터지면서 2년을 까먹었다. 다시 한국영화를 준비하는데 쉽지 않더라. 평소 내 정서가 대중적이지 않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차기작을 준비하면서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 회사를 설득하는 데 애를 먹고 있던 차에 <전체관람가> 출연 제안을 받았다. 이번에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끝까지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아재’를 주제로 김보성, 이동준이라는 전설적인 두분을 모시고 영화를 찍게 됐다. 아마 이 캐스팅으로 영화를 찍는다고 했으면 투자사에서 난리가 났을 거다. 그런데 예능 프로그램이라서 그런지 캐스팅에 대해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찍으면서 정말 즐거웠고, 자신감도 되찾았다.

-‘노래방 뮤지컬’을 표방하는 <랄라랜드>는 확실히 한국장편 상업영화로는 시도하기 힘들 법한 기획이었다. 이원석 감독은 지난 2015년부터 뮤지컬영화를 찍고 싶다는 얘기를 해왔는데, <전체관람가>를 보니 단편영화나 방송 등의 플랫폼이 상업영화로 제작되지 못하는 콘텐츠에 대한 일종의 대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필성_ 진행을 맡은 윤종신 선배가 <랄라랜드>편의 녹화를 마치고 그런 얘기를 했다. 주크박스 뮤지컬(인기 있는 대중음악을 활용한 뮤지컬)은 봤어도 노래방 뮤지컬이라는 장르는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그런 의미에서 <랄라랜드>는 영화가 아니라 뮤지컬로 개발해도 재밌을 수 있겠다고. 한 영화를 두고 4~5년, 길게는 10년 이상 씨름하는 경우가 한국영화계엔 많다. 나는 영화감독들이 작업할 수 있는 플랫폼이 더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출이라는 작업 자체는 어떤 미디어로 가든 필요한 일이다.

이원석_ 평소 불만이었던 게 TV드라마의 소재는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는데 영화는 점점 더 보수적으로 변한다는 점이었다. 상업영화 한편에 소요되는 예산이 올라가다보니 제작 편수가 줄고, 점점 더 흥행을 담보할 수 있는 안정적인 이야기를 선호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의 영화를 보며 영화가 시대에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랄라랜드> 같은 작업이 감독들에겐 리프레싱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영화감독도 다른 포맷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거다.

임필성_ 다른 문화권에 비해 한국 예술계가 유독 폐쇄적인 것 같다. 영화는 영화감독만 찍고, 광고는 광고감독만 한다. 최근 이런 패턴이 조금씩 깨지고 있다. 예를 들면 최근 드라마 <구해줘>도 김성수 감독(<무명인> <야수>)이 연출하지 않았나. 이렇게 매체를 오갈 때 서로 자극도 되고 시너지 효과도 나는 것 같다.

-임필성 감독은 ‘하우스 푸어’를 주제로 <보금자리>를 연출했다. 아직 방영 전이라 어떤 영화인지 궁금하다.

임필성_ <보금자리>는 원래 장편으로 기획하려던 작품이다. 7, 8년 전 보금자리 주택 청약 당첨 순위를 높이는 조건 중에 ‘다자녀’가 있었다. 세 자녀 이상이면 입양이든 임신한 상태든, 집을 분양받을 확률이 굉장히 높다. 그 때문에 아이를 입양했다가 집을 받으면 파양시키는 사건이 있었다. 그로부터 영감을 받아 현실에 기반한 스릴러를 한번 찍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원석_ 필성이 형이 잘하는 장르영화와 사회적 이슈가 합쳐지니 ‘원 오브 카인드’ 영화라고 해야 하나?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그런 작품을 본 기분이었다.

-<보금자리>는 배우 전도연이 출연한다는 소식에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되고 있는데, 캐스팅은 어떻게 성사했나.

임필성_ 도연씨가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에 출연할 때부터 알고 지냈다. 사는 곳도 가깝고, 나이도 비슷해 친구처럼 허심탄회하게 영화 이야기를 하는 사이가 됐다. 처음에는 캐스팅 제안이 아니라 <보금자리>에 대한 구상을 말한 적이 있는데 도연씨가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재미있어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보내고 설득을 했다. 도연씨가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데뷔 20주년 기념 특별전을 열며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 앞으로 더 다양한 작업을 해보자고 마음먹었고, 그런 의미에서 처음으로 단편영화 작업을 시도해본 게 아닐까 싶다. 이런 캐스팅은 천운이면서 타이밍인 것 같다.

-<전체관람가>는 단편영화 한편당 제작비 3천만원을 지원한다. 그러다보니 스타배우와 A급 스탭들에게 ‘재능기부’를 강요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도 있다.

임필성_ 제작비 3천만원에 상업영화 스탭들에게 제대로 된 페이를 주지 못하기에 <전체관람가>는 방송사의 악마의 기획 아니냐는 얘기가 있다.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나는 한국영화 스탭들이 3일 정도의 시간에 15~20분가량의 단편을 만들며 리프레싱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서로가 독립영화를 했던 마인드로 작업할 정도의 유연함이나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금자리>를 예로 들면 전도연, 박해준이라는 최고의 기성배우들 외에도 주인공으로 아역배우를 캐스팅했다. 이런 경험은 최근의 상업영화계에서는 시도하기 굉장히 힘든 일이다.

이원석_ <랄라랜드>의 스탭은 대부분이 영화과에서 체험학습으로 온 대학생들이었다. 상업영화였다면 학생들과 기성 스탭이 함께 작업하는 건 불가능했을 거다. 주요 조연도 거의 다 신인배우들이었는데 이런 협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신선했다.

-각자의 단편영화를 상영한 뒤 감독들끼리 감상을 가감없이 공유하는 점도 신선했다. 보통의 한국영화 VIP 시사회와 다른 풍경이랄까.

이원석_ 방송에서는 편집돼서 그렇지 실제로는 감독들끼리 더 신랄하게 얘기한다. 그래서 영화학교에 다시 온 기분이 든다. 학우들과 같이 영화 만들고, 평가하고, 평가받는.

임필성_ 경력 20년 학우냐. (웃음) 이명세 감독님이 학과장 같은 느낌이다. 녹화를 갈 때마다 다른 감독들의 영화가 어떻게 나왔을지 진심으로 기대가 된다. 이명세 감독님의 오랜만의 신작은 어떨까. 창 감독님은 어떻게 찍었을까. 양익준·이경미 감독도 기대되고. 소모적인 예능이라기보다 함께 재미있는 작업을 하며 나누는 감정들이 의미 있지 않나 생각한다.

-방송에서 임필성 감독은 이원석 감독을 ‘친한 동생’이라 소개했다. 언제부터 친분이 있었나.

임필성_ 7~8년 전쯤이었나. 음악감독 모그, 이해준 감독과 포장마차에서 한잔하고 있을 때 원석이가 왔다. 김정은을 팝아트로 스타일링한 느낌이었다.

이원석_ 형들이 나를 다 싫어했다. 처음 만나면 다들 나를 싫어하더라.

임필성_ 그래서 모그 음악감독에게 누군지 모르겠지만 다시는 데려오지 말라고 했다. (좌중 폭소) 그러다가 <남자사용설명서> 가편집본을 봤다. 영화가 너무 재밌고 신선했다. <랄라랜드>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이었다. 이렇게 독특한 개성을 가졌으면서도 굉장히 따뜻한 감독이 한국에 있구나 싶었다.

-두분 모두 해외 영화제에서 자기만의 색깔과 개성으로 주목받았지만 한국영화 시상식과는 인연이 없었다. 이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있었을 듯하다.

이원석_ 나는 그래서 방황을 오래하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좋다는 시나리오를 추천받아도 이게 좋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시나리오를 잘 못 보나 하는 생각도 들고.

임필성_ 한국영화계가 기술적으로 발전하고 있고 굉장한 영화들을 많이 만들어냈지만 스릴러나 호러, 키치적인 B급 코미디 등의 장르영화에 좀 야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앞서 나가는 관객도 많은데 장르영화에 대한 독특한 시도가 관객에게 전달되기까지 너무나 많은 레이어가 생기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어 이원석 감독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신인감독 데뷔를 지원하는 NDIF상을 받은, 워너브러더스코리아의 최재원 대표가 시나리오를 읽고 기겁했다는 필생의 코미디 프로젝트가 있다. <국민체조>라는 작품이다. 그런 영화가 저예산이라도 만들어진다면 한국영화계에 큰 의미가 될 것 같은데, 점점 더 이런 작품을 만들기가 어려워진다.

이원석_ 아마 신인감독은 우리보다 새로운 시도를 하기 더 힘들 거다. 최재원 대표가 <국민체조>로 상을 줄 때 그런 이야기를 했다. 이건 한국에서 만들 수 없는 영화이기 때문에 응원하는 차원에서 상을 준다고. 누군가 ‘그라운드 브레이킹’을 해야겠지. 연상호 감독이 <부산행>을 만들기 이전엔 좀비영화는 안 된다고 했지만 이제는 회사마다 좀비영화 시나리오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잖나.

임필성_ 연상호 감독의 <염력>이 잘되면 아마 초능력 장르영화도 잘될 거다.

-앞으로의 계획은.

이원석_ 웹툰 <외모지상주의>를 영화로 각색하고 있다. 가장 먼저 꽂힌 건 제목이었다. 외모 때문에 핍박받던 학생이 12시간은 잘생긴 사람으로 살고, 12시간은 못생긴 사람으로 산다는 컨셉이 재미있었다.

임필성_ <악의 꽃>을 준비하고 있다. 시나리오는 거의 나온 상태인데, 논쟁이 될 만한 부분이 많은 얘기라 더 잘 정리해 찍으려 한다.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악의 꽃> 준비한다고 얘기한 지가 벌써 10년 전이다. (웃음) 이번엔 꼭 완성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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