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cm로 작아진 인류에 대한 SF 휴먼 드라마 <다운사이징>의 LA 기자회견 현장
2018-01-12
글 : 안현진 (LA 통신원) |
12cm로 작아진 인류에 대한 SF 휴먼 드라마 <다운사이징>의 LA 기자회견 현장
<다운사이징>은 환경 보호를 위해 인류를 작게 축소시킨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어바웃 슈미트> <사이드웨이> <디센던트>를 만든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신작 <다운사이징>은 인체를 실제 크기의 0.03%로 줄인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을 상상해본 대범한 SF 휴먼 드라마다. 네브래스카주의 작은 도시 오마하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온 소시민 폴 소프라닉(맷 데이먼)이 ‘다운사이징’을 결정하면서 시작되는 영화는 ‘쿵’ 해야 하는 곳에서 ‘짝’ 하고, ‘짝’ 해야 하는 곳에서 ‘쿵’ 하면서 관객의 예상을 보기좋게 따돌리며, 단단한 이야기의 힘으로 2시간15분을 끌고 나간다. 눈에 띄는 특수효과 없이 현실적인 SF의 껍질을 두른 채 설교조는 걷어낸 유쾌함으로 현대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요목조목 지적하는 <다운사이징>의 알렉산더 페인 감독과 그의 오랜 작업 파트너인 각본가 짐 테일러 그리고 영화의 신스틸러인 배우 홍차우를 지난해 12월 1일 베벌리힐스 포시즌스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다운사이징>의 홍차우와 맷데이먼(왼쪽부터).

영화 제목이기도 한 <다운사이징>은, 노르웨이의 한 과학자가 발명한 인체의 축소과정이다. 기후변화와 인구과잉, 더 나아가 인류의 멸종을 걱정하던 위대한 과학자는 인체를 약 12cm 내외로 축소하는 과정을 스스로 실험한 다음 5년 뒤 그 경과를 세상에 발표해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다. 크기가 작아진 사람은 적은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고 적은 양의 폐기물을 배출하기 때문에 더 오랫동안 지속 가능하다는 건데, 정작 ‘다운사이징’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환경적인 이유가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에서다. 더 적은 재화로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것 또한 다운사이징으로 얻어지는 혜택이기 때문이다. 자의로 다운사이징을 선택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커뮤니티 ‘레져랜드’에서는 책상만 한 넓이의 땅이면 저택을 지을 수도 있고, 다이아몬드 주얼리로 온몸을 휘감아도 80달러면 충분하다.



다운사이징이 한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



아픈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의대를 자퇴한 뒤 전문치료사로 평생을 살아온 폴(맷 데이먼)과 그의 부인 오드리(크리스틴 위그)도 거기에 매력을 느껴 다운사이징을 결심한다. 그런데 다운사이징이 끝난 폴이 눈을 떴을 때 그를 맞이하는 건 오드리가 없는 빈 침대다. 마음이 바뀐 오드리가 다운사이징에 참여하지 않고 폴을 떠난 것. 다시 원래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는 폴은 그 뒤로 레져랜드에서 고독한 삶을 이어간다. 그런 그의 삶에 파문을 일으키는 존재가 나타난다. 폴의 아파트 위층에 사는 세르비아인 두산(크리스토프 왈츠)인데, 그는 매일 엄청난 파티를 여는 플레이보이다. 우연히 두산의 파티에 간 폴은 두산의 아파트를 청소하러 오는 녹 란(홍차우)을 만나게 된다. 녹 란은 베트남의 저항가로 폴과 달리 강제로 다운사이징되어 베트남을 떠나온 난민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다운사이징이 선택이 아닌 처벌로 악용되는데, 녹 란은 강제로 다운사이징당한 뒤 TV가 포장된 상자를 통해 탈출하려다 한쪽 다리의 무릎 아래를 잃었다. 녹 란을 만나면서 폴의 인생은 또 한번 격변을 맞이한다.



<다운사이징>의 시작은 영화의 각본가인 짐 테일러의 동생인 더그 테일러가 환경에 대해 생각하다 내놓은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그저 흘려듣던 테일러는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고 알렉산더 페인과 15년 뒤 <다운사이징>으로 완성했다. 기후변화라는 글로벌한 화두로 시작된 이야기는 의도적으로 국제적인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페인과 테일러 두 사람은 이야기의 무대로 레져랜드라는 지구상에 없는 공간을 창조했고, 미국인, 베트남 난민, 세르비아인, 히스패닉 등 다양한 인종을 주요 캐릭터로 등장시켰다. SF라는 장르가 주로 제시하는 이상향 대신 유토피아처럼 보이지만 실은 현대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세계로 레져랜드를 설정한 이유는, 스토리텔러로서 둘의 입장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좀더 평등한, 좀더 공정한 미래를 제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우리(페인과 테일러)가 지지하는 방향이 아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로서 우리가 보는 바로 그 사회를, 바로 그 문제를 영화에 반영하고 싶었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

미국 사회 속 이민자와 난민



<다운사이징>의 현실성은 그런데, 맷 데이먼과 녹 란을 연기한 베트남계 미국인 배우 홍차우, 두 배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적당히 살을 찌워 날렵함을 없앤 맷 데이먼은 40대 중반의 착한 보통 남자를 연기하기에 가장 적합한,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원한 유일한 배우였다. 페인은 “보통 남자를 연기할 수 있는 영화배우 같지 않은 배우가 필요했다. 그러는 동시에 투자를 받을 수 있는 무비스타가 필요했다. (웃음)”고 덧붙였다. 영화의 투자를 받는 데는 맷 데이먼의 이름이 유효했겠지만 영화를 본 뒤 관객이 궁금해 할 이름은 홍차우일 것이다. TV시리즈 <트레메>(<HBO>)와 <빅 리틀 라이즈>(<HBO>), 영화 <인히어런트 바이스>에 출연한 게 알려진 경력의 전부인 이 배우는 <다운사이징>에서 진솔한 이민자의 모습을 연기한다. 아시아계 여배우가 할리우드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적의 역할이다. 타입캐스팅도 아니고 사이드킥도 아니고 조연에 머물지도 않는, 그 자체로도 존재감을 충분히 발휘하는 그런 캐릭터 말이다. 사실 기자회견장에서도 할리우드영화에 출연한, 동양 여성이며 또 소수민족 이민자인 홍차우에게 질문이 집중됐다.



할리우드라는 남성 중심, 백인 중심의 산업에 진출한 마이너리티로서 타고난 배경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하는 일종의 책무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내가 <다운사이징>의 각본을 받았을 때 발견한 것은 인종과 계급에 대한 통찰력 있는 관찰이었다. 녹 란이라는 캐릭터는 내게 있어 혁명이나 다름없다. 그 어떤 영화보다 진실되게 이민자와 난민을 그려냈다.”(홍차우)



“천국에서도 누군가는 화장실을 청소해야 한다.” <더 랩>의 평론가 알론소 두랄데는 <다운사이징>의 리뷰에 이렇게 썼다. 많은 사람들은 알렉산더 페인에게 영화가 가진 이민과 이민자에 대한 직간접적인 묘사와 상징을 두고 정치적 공정함을 염두에 둔 결과냐며 궁금해했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정치적 공정함이 우리가 하는 작업에 영향을 끼칠 수는 없다. 우리의 작업은 정직함, 재미, 드라마, 놀라움, 진실 그리고 휴머니티에 기반한 결과물이다. 우리는 정치적인 코멘트를 하는 사람들이기보다는 아티스트이며 풍자가들이다. 우리가 기후변화와 인구과잉에 대해 생각해낸 해결책이 ‘다운사이징’이었고 그 과정에서 현재의 사회가 직면한 많은 문제들을 담을 수 있는 거대한 그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다운사이징>이 결국 백인이 인류를 구하는 이야기가 아니냐고 오해한다. 페인은 이렇게 답했다. “무슨 소리, 이 영화는 그녀(녹 란)가 그(폴)를 구하는 이야기다.” 몇번의 예상치 못한 급류를 만나 상상한 적 없는 곳에 도착한 남자의 삶이 한 여자로 구원받는 이야기. 어쩌면 <다운사이징>은 지금까지 영화에서 그려진 적 없는 사랑 이야기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