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대학가서 데모하는 놈들이랑 어울리면 큰일난데이.” 깡촌에서 서울로 대학을 가는 아들을 붙잡고 어머니는 몇번이고 당부한다. 데모하는 학생들은 모두 ‘북한의 지령을 받은 빨갱이’라고만 배웠던 영호는 대학에 와서 사람들을 만나고, 공부하며 알게 된다. 진실은 따로 있었다는 것을. <100℃>는 민주화운동사업회에 연재하던 최규석 작가의 만화를 모아 출간한 단행본이다. 2009년 나온 책을 2017년에 개정판으로 다시 내면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100° C>는 과거를 이해하는 기록으로 기획되었음에도 지난 10년간 현재를 공감하는 작품으로 읽히는 일이 잦았습니다.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네요’보다 ‘요즘 이야기 같아요’라는 감상이 훨씬 많아 슬펐습니다.” 그러니 책이 덜 팔리더라도 본래의 분류대로 현재가 아닌 역사물로 돌아가면 좋겠다고. <100℃ >를 읽으면 6월항쟁을 다룬 영화 <1987>이 떠오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연희(김태리)는 그 엄혹한 시절에 ‘자기’를 걸고 싸우는 삼촌과 선배에게 화를 낸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는데요?” <100℃>의 영호는 데모를 하다 교도소에 끌려가고 그 안에서 박종철 열사의 죽음에 대해 듣고 절망한다. “슬퍼하는 게 아니라 두려워하는 겁니다. 끝이 없을 거 같아서요. 처음 그 사람들 만났을 때는 그 열정에 반해서, 그런 사람들이라면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젠 모르겠어요. 정말 이길 수 있는 건지… 끝이 있는 건지.”
1987년 6월 10일, 경적을 울리고 민주주의 만세, 민주헌법 쟁취 만세,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던 이들은 독재가 아니라 이러한 절망과 싸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2017년의 우리는 연희에게, 영호에게 답해줄 수 있지 않을까. 당신들 덕분에 세상이 조금은 달라졌다고. 느리지만 역사는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영호의 자조적인 질문에 답했던 선배의 말을 옮긴다. “그래서 불을 때다가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원래 안 끓는 거야 하며 포기를 하지. 하지만 사람도 백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나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겠나. 다만 그럴 때마다 지금이 99도다… 그렇게 믿어야지. 99도에서 그만두면 너무 아깝잖아.”
진짜 힘이 누구에게 있는지 보여줍시다
“힘없는 사람들이라도 힘을 합쳐 나서면 힘 가진 사람들도 어쩌지 못해요. 그리고 왜 우리가 힘이 없어요? 학생 백명보다 어머니 한 사람 같은 분을 저들은 더 무서워해요.” “저런 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하던디.” “나라가 망하는 게 아니라 독재자가 망하는 거겠죠! 북한이 당장이라도 쳐들어올 것처럼 겁주면서 맘에 안 드는 사람들은 빨갱이라고 가두고 죽이고! 왜 그러겠어요? 지은 죄가 많아서 그런 거예요. 진짜 죄지은 인간들은 뻔뻔스럽게 고개 들고 사는데 왜 착하고 바른 사람들이 죄인처럼 살아야 돼요?”(62∼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