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오슬로의 호텔에 방을 잡는다. <팬텀>은 그 남자의 외모를 본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그에 대한 ‘힌트’를 준다. 얼굴 한쪽에 길게 난 상처, 주소지로 적는 홍콩 청킹맨션 같은 단서들이 이어지고, 호텔 직원은 숙박부의 이름을 보고는 “당신이 그 해리 홀레입니까?”라며 전설의 주인공을 맞는다. <팬텀>은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 아홉 번째 소설이다. 총 11권이 출간된 이 시리즈의 주인공 해리 홀레는 경찰보다는 마약중독자나 마약거래상에 가까워 보인다. 시리즈를 따라온 사람이라면 그가 오슬로로 ‘돌아왔다’는 데서 그의 과거를 떠올릴 수 있을 테고, 이제 처음 만나는 독자라면 “나의 직업은 살인”이라고 말하는 이 남자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 혼란을 느낄지도. <팬텀>은 오슬로의 마약 범죄를 다룬다. 마약의 반입과 반출에는 민항기 파일럿이 동원된다. 오슬로시의 마약유통 거점이 완전히 바뀌어버려 경찰도 누가 배후의 큰손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중이다. 마약으로 인한 살인사건은 점점 늘고 있다. 해리 홀레는 경찰의 옛 동료에게 가 일을 달라고 청한다. 그는 특정한 일을 하겠다는데 하필 수사종결된 사건이다. ‘해리 홀레 시리즈’ 최고 인기작 <스노우맨>에서 그의 곁을 지켰던 연인 라켈과 그녀의 아들 올레그. 그 올레그가 마약에 취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체포된 것이다. 기억 속 어린아이가 성인이 되어 철창 안에 있는 모습과 재회한다. 이것은 해리 홀레에게는 자신이 영영 잃어버린 가족에의 희망과 마주하는 일이 된다. 마약사건의 진행은 시종일관 오싹하고 불길하며, 거기에 올레그 일이 더해지니 <팬텀> 이후 시리즈가 이어진다는 사실을 미리 알지 않았다면 이대로 시리즈가 끝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파괴적인 분위기가 흐른다. 요 네스뵈의 소설 속 홍콩, 오슬로와 같은 도시들은 현실에서보다 어둡고 거칠고 범죄로 가득 차 있다. <팬텀> 속 오슬로는 화려한 신축 건물들이라는 당의정 아래 썩어 있는 중독, 가난, 범죄를 드러낸다. 해리 홀레의 노력이 성과를 거둘까. 이야기 말미에는 슬픔이 폭력처럼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가 귀환했다
해리가 그 아이를 본 지 몇년이 흘렀다. 그리고 라켈이 아들을 데리고 스노우맨이라는 소름끼치는 기억에서, 폭력과 살인으로 점철된 해리의 세계에서 도망치듯 오슬로를 떠난 지도 몇년이 흘렀다. 지금 그 아이가 저 문 앞에 서 있었다. 열여덟살의 다 큰 소년이 아무런 표정 없이.(61쪽)
해리는 좁은 터널을 응시했다. 폐소공포는 비생산적이고 위험에 대한 거짓 신호이며 극복해야 할 증상이었다. 해리는 탄창이 MP5에 제대로 장착되어 있는지 확인했다. 유령들은 우리가 허락할 때만 존재한다.(4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