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영 감독님은 괴물이다. 용모부터가 그렇다. 6척의 큰 키와 거구의 몸체, 평생 감지 않은 우수수한 머리… 부릅뜬 가재 눈, 그리고 늘 경계하고 불안한 눈빛으로 타인과 사물을 본다.” 김기영 감독 인터뷰집 <24년간의 대화>에서 유지형 감독은 대선배 김기영 감독을 기괴하게 묘사했다. <화녀>(1971)를 찍을 때 “쥐를 출연시키기 위해 집에서 사육하고 훈련까지 시켰고, 열댓 마리의 하얀 쥐를 까맣게 칠해서 촬영했으며, 촬영이 끝난 뒤 쥐들이 번식해 수백마리로 늘었다”(김기영 감독의 아들 김동원)는 일화만 봐도 김기영 감독은 괴짜였다.
생전 김기영 감독은 35년 동안 32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1960년대 유명한 감독들이 1년에 10편씩 만들었던 상황을 감안하면 작품 수가 그리 많지 않다. 필모그래피에서 빨간 줄로 따로 표기된 영화 11편은 김기영 감독이 이연호 <키노> 편집장과의 인터뷰에서 직접 꼽은 자신의 대표작이다. <양산도>(1955), <10대의 반항>(1959), <하녀>(1960), <현해탄은 알고 있다>(1961), <병사는 죽어서 말한다>(1966), <화녀>(1971), <충녀>(1972), <파계>(1974), <육체의 약속>(1975), <이어도>(1977)이 그것이다.
김기영이라는 영화 유령이 서울시 상암동에 당도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시네아스트 김기영 20주기 기념전 ‘하녀의 계단을 오르다’를 열었다. 그는 <죽엄의 상자>(1955)로 시작해 <하녀>(1960>, <화녀>, <충녀>(1972), <화녀 ’82>(1982), <육식동물>(1984)로 이어진 <하녀> 시리즈와 <육체의 약속>(1975), <이어도>(1977), <죽어도 좋은 경험>(1990)까지 35년 동안 32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1960, 70년대를 대표하는 영화감독이었지만, 긴 시간 동안 잊혔다가 1997년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린 회고전을 통해 젊은 관객 사이에서 재평가받으며 복권됐다. 하지만 다음해 혜화동 자택에서 전기합선 사고로 아내와 함께 세상을 떠났다.
영화처럼 살다간 김기영 감독의 20주기를 기념해 마련된 이번 기념전은 “전설의 컬트영화 대가가 아닌 당대의 사회문제를 기민하게 카메라에 담아냈던 리얼리스트로서의 김기영 감독을 부각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정종화 한국영화사연구소 선임연구원)다. 김기영 감독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화녀>와 <충녀>에 등장하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배경 삼아 김기영 감독의 작품 세계를 ‘김기영의 페르소나들’, ‘여성, 남성, 에로티시즘’, ‘<하녀>의 다양한 변주들’, ‘김기영 영화 속 쥐’ , ‘전근대와 근대의 만남’의 다섯 가지 테마 영상으로 정리했다. <하녀>의 배경인 2층 양옥에서 2층 공간인 동식의 피아노방과 하녀의 방을 그대로 재현해 관람자가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밖에도 생전 인터뷰 영상과 사진 그리고 자택 화재사고에서 수습된 육필 원고들과 영화로 제작되지 못한 시나리오가 전시된다. 매 순간 영화와 관련된 삶을 살았던 김기영 감독의 작품 세계와 인간적 면모를 깊이 느낄 수 있는 이번 기념전은 한국영상자료원 1층에 있는 한국영화박물관에서 5월 19일까지 진행된다.
<여성전선>(1957), <황혼열차>(1957), <초설>(1958), <10대의 반항>(1959), <슬픈 목가>(1960), <아스팔트>(1964), <병사는 죽어서 말한다>(1966), <미녀홍낭자>(1969) 등 필름이 남아 있지 않은 영화 8편의 시나리오가 전시되어 있다. <화녀> <화녀 ’82> <충녀> <육식동물> 등 <하녀>의 변주작들의 시나리오도 직접 읽어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자택 화재 사고에서 수습된 육필 원고들도 만날 수 있는데, 메모들이 암호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