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배우와 캐릭터의 ‘궁합’이 첫눈에 딱 맞는 영화가 얼마나 될까. <궁합>은 흉년으로 나라가 기울기 시작하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계속되는 가뭄의 해결책이라 여기는 부마 책봉에 사활을 건 왕(김상경) 때문에 졸지에 혼인을 앞두게 된 옹주와 어명을 받고 부마와 옹주의 궁합을 봐야 하는 역술가의 부마 찾기 소동을 그린 코미디영화다. 시나리오를 읽은 이승기는 이끌리듯 조선 최고의 젊은 역술가 서도윤 역에, 심은경은 어려서부터 박색이라 구박받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만의 사랑을 갈구하는 송화 옹주 역에 빠져들었다. “공들여 찍으면 책이 가진 최소한의 재미만큼은 전달할 수 있겠다”는 이승기의 확신과 “내가 직접 말하고 싶었던 대사들이 있었고 사랑에 대한 담담한 표현, 사극에 대한 갈증, 당시 연기에 대한 열망 등을 원 없이 풀어내보고 싶었다”는 심은경의 염원을 두고 궁합을 본다면 누구든 헤어지라는 소리는 절대 하지 못할 것 같다.
두 사람의 준비 자세에 이어 그들이 연기하게 될 캐릭터의 궁합도 좋았다. 심은경이 연기하는 송화 옹주는 왕의 어명에 등 떠밀려 억지 혼인을 앞두게 되지만 “주체적이면서 당당하게 자신의 삶과 사랑을 찾아나서는 소신 있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심은경의 해석으로 훨씬 입체적인 인물이 됐다. 조선 최고의 역술가 도윤 역시 시나리오상에서는 날카롭고 예민한 태도를 지닌 인물 정도였지만 이승기는 “감독님과 이야기하면서 도윤의 태도에 유쾌함이 깃들어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송화를 만나고 그녀와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마음가짐이 달라지게 되는 인물로 “진중함을 유지하는 선에서 유쾌하고 미세한 행동이나 표정 등을 집어넣었다”.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추게 될 장면 중에는 우스꽝스러운 장면도 있고 슬랩스틱 코미디를 구사해야 하는 장면도 있는데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억지로 쥐어짜려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궁합>에서 벌어지는 가장 극적인 사건은 사주에 기대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신랑감을 직접 고르겠다는 계획 아래 궁궐 밖을 빠져나간 송화 옹주가 겪는 일들이다. 그녀는 자신의 가장 믿음직스러운 조력자 도윤뿐만 아니라 예닐곱명의 부마 후보들과도 각각의 사연을 풀어나가야 한다. 심은경의 지난 모든 출연작을 통틀어 어쩌면 송화 옹주라는 역할이 역대 가장 젊은 배우들과 연기하는 영화가 될 터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영화 촬영현장이 특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다들 즐기면서 촬영하는데 내가 그동안 너무 연기에만 집중한 건가, 나도 즐기면서 할 수 있는데”라며 스스로의 생활을 돌아보게 됐고, 때맞춰 이승기의 사려깊은 위로와 격려에 굳어 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버리는 경험도 했다. 촬영장의 모든 스탭들이 최고의 ‘궁합’을 선보이려면 9월 9일 오전 9시9분9초에 컷 사인을 처음으로 외쳐야 한다던 어느 저명한 역술가의 전언을 받들어 실제로 그 시간에 컷 사인을 외치며 촬영을 시작했던 <궁합> 촬영현장에서 두 사람은 당연하지만 꼭 필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선배 배우들도 장르적인 한계에서 아쉬움을 표할 때가 있는데 <궁합>은 신선한 활력이 될 것 같다”고 말하는 이승기는 도윤을 연기하면서 “별다른 장치가 없는 인물이 확실히 연기하는 데는 공부가 됐다”고 말한다. 캐릭터보다 서사나 액션을 강하게 부각시키는 영화보다 “섬세하게 연기하는 법을 가르쳐준” 고마운 영화였다고. 심은경 역시 “언제나 다르면서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 한동안 시달려왔는데 <궁합>으로 한 템포 쉬어갈 수 있게 됐다. “내가 가진 것들을 어떻게 변주하면서 새롭게 포장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차에 <궁합>의 시나리오를 만났다. 기존 연기에 대한 무게를 한시름 덜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 (웃음)”
이승기와 심은경은 모두 <궁합> 이후 차분하게 숨고르기를 하며 다음 작품을 준비할 계획이다. 영화는 이제 2편째인 이승기는 “지금 생각해보면 나 자신을 포장하지 않아서 더 많은 길이 열려 있는 것 같다. 게임으로 비유하면 지금 아이템 없이 오직 내 몸으로 할 수 있는 연기만 보여준 셈이다. 앞으로 더 많은 새로운 옷을 입고 연기할 수 있을 것 같다”라며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고, 심은경 역시 올해는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계획이라고. “역시 내려놓는 게 중요한 것 같다”라는, 서로를 향한 새해 덕담을 주고받은 두 사람의 다음 ‘궁합’을 또 한번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