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합정동에 문 연 <플로리다 프로젝트> 쇼룸 방문기
2018-03-28
글 : 이주현
사진 : 최성열
무니의 매직캐슬로 초대합니다

“여기 사장님 바뀌었어요?” “어린이 책방이나 키즈 공간으로 바뀐거예요?”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조용한 주택가 골목. 평범한 벽돌 건물 1층 입구엔 컵케이크와 ‘퓨처랜드’ 모텔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핑크색 출력 시트지를 바른 계단과 외벽은 이곳의 정체를 더욱 아리송하게 만든다. 물론 이곳은 컵케이크 가게도 아니고, 모텔도 아니고, 플로리다는 더더욱 아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쇼룸으로 변신한 마음 스튜디오를 둘러보며 동네 주민들이 ‘업종 변경하셨어요?’라고 물어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닌 듯 보인다. 공간의 정체가 궁금하면 주저 없이 쇼룸으로 들어서면 된다. 그러면 고양이 동구가 심드렁하게 당신을 맞이할 것이다.

포스터 회사 ‘빛나는’에서 제작한 종이 모형. 파스텔 컬러를 이용해 영화 속 공간을 아기자기하게 구현했다.
무니가 영화에서 내내 입고 다니는 분홍색 반팔 티셔츠와 분홍색 캔버스화를 마음 스튜디오에서 제작했다. 판매는 하지 않는다.

숀 베이커 감독의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개봉한 3월 7일, 쇼룸은 문을 열었다. 주말의 쇼룸이 북새통을 이룬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비바람 부는 평일 낮에도 이만큼 북적일 줄은 몰랐다(공간이 협소한 탓도 있다). 20대 대학생이라는 쇼룸 방문객 두 명은 당일 영화티켓을 들고 이곳을 찾았다. 상상마당과 아트하우스 모모의 <플로리다 프로젝트> 당일 티켓을 제시하면 쇼룸에서 스티커 2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의 감흥을 이어가기 위해 쇼룸을 찾았다. 그들은 이 협소한 공간에 꽤 오랫동안 머물며 사진을 찍고 스티커를 구매하고 캐릭터 도장찍기 놀이를 하며 자체 기념품을 만들었다. 극장을 빠져나왔다고 해서 영화 관람이 종료되는 것이 아니다. 이 소소한 놀이는 영화를 보고 즐기는 방식이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입체적’ 경험이 영화에 관한 전체 감상을 완성하기도 한다. 더불어 이 소소한 놀이는,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을 극장으로 이끄는 역할도 한다.

마음 스튜디오의 두 디자이너가 캐릭터 가면을 쓰고 바비 아저씨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 앞에서 고개 돌리고 앉아 있는 고양이가 마음 스튜디오의 상주 안내원 동구다. 캐릭터 가면은 누구나 써볼 수 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속 주요 캐릭터와 공간을 일러스트로 재현한 쇼룸은 <플로리다 프로젝트> 수입사 오드와 마음 스튜디오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마음 스튜디오는 공간, 그래픽, 제품 등 프로젝트로 마음을 전하는 디자인 그룹이다. 캐릭터 입간판이나 영화 관련 미니어처를 극장에 전시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이렇게 하나의 독립적 공간을 한편의 영화에 온전히 내어주는 일은 흔치 않다. 아니, <플로리다 프로젝트> 쇼룸이 국내에선 최초의 시도라 할 수 있다. 오드의 김시내 대표는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보고 나서 영화와 캐릭터와 사랑에 빠졌다”는 말로 쇼룸을 기획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아주 큰 공간이 아니더라도 영화의 사랑스러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극장 밖 공간이어도 좋을 것 같았다. 매번 똑같은 광고 혹은 마케팅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도 오래전부터 하고 있어서 이번 기회에 새로운 시도를 해봤다.” 마음 스튜디오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화의 사랑스러움이 오랫동안 간직되었으면 좋겠다”는 이 한줄이 쇼룸 작업의 동기였다. 마음 스튜디오의 이윤지 디자이너는 말했다. “비용이나 수익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이 영화를 사랑했고, 이 프로젝트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두달간의 기획회의를 거쳐 “웰컴 투 <플로리다 프로젝트>”라는 컨셉으로 쇼룸을 꾸미기 시작했다. 6살 소녀 무니(브루클린 프린스)와 미혼모 엄마 핼리(브리아 비나이트)가 주단위의 방세를 내고 머무는 플로리다의 모텔 매직캐슬, 무니와 친구들이 들르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쇼룸의 정면과 왼편을 장식하고 있다. 매직캐슬의 듬직한 관리인 바비(윌럼 더포)를 그래픽으로 형상화한 실물 크기 입간판이 서 있는 공간은 포토존으로 인기다.

쇼룸의 가운데에는 달력과 스탬프가 비치되어 있다. 한장으로 된 2018년 만년 달력에 20여종의 도장을 찍을 수 있다.
이윤지 디자이너는 “2018년 달력에 <플로리다 프로젝트> 도장을 찍어가면 이 영화가 ‘올해의 영화’처럼 간직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달력의 의미를 설명했다.

쇼룸에선 영화 스티커와 마스킹 테이프도 판매한다. 처음엔 영화 관련 굿즈를 판매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단지 쇼룸 방문객들에게 기념이 될 만한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8종 아크릴 배지 100세트를 제작했고, 판매 수익금은 미혼모에게 기부하기로 했다. 좋은 취지에 동참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영화의 인기가 치솟아서인지 배지 세트는 일찌감치 동났다. 이윤지 디자이너는 “8종 100세트라 낱개로 치면 배지 수가 총 800개다. 적은 물량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빠르게 품절될 줄 몰랐다”고 했다. 그래서 추가로 스티커를 제작했고 무지개 마스킹 테이프도 만들었다. 무지개 모티브는 영화 속 무니의 대사, “무지개 너머엔 황금이 있대”에서 따온 것이다.

현재 품절이라 구할 수 없다는 아크릴 배지 8종 세트. “아크릴의 투명함이 캐릭터와도 잘 어울렸고, 영화의 사랑스러움을 보여주기엔 금속보다 라이트한 아크릴 소재가 나을 것 같았다”는 게 이윤지 디자이너의 설명이다.

“많은 분들이 ‘<플로리다 프로젝트> N차 관람이다’, ‘무니앓이 중이다’라는 얘기를 해주신다. 지난주엔 영화를 세번 봤다는 분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에도 못 오른 게 말이 되냐며 영화에 대한 큰 애정을 피력해주셨다. (웃음) 종영할 때까지 영화를 열심히 배급하고 홍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김시내 대표의 얘기다. 단체 관람, 굿즈 수집, 쇼룸 방문 등 영화를 즐기고 사랑하는 방식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더불어 영화 마케팅도 변하고 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쇼룸은 요즘 관객의 요구를 발빠르게 캐치한 결과일지 모른다. 쇼룸은 3월 31일 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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