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VR영화③] 세계 최초 4DX VR 영화 <기억을 만나다> 현장은 어떻게 달랐나
2018-04-05
글 : 임수연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도 영화가 있다

“모든 순간순간이 새로운 영상 문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구범석 감독) 세계 최초 4DX VR 영화 <기억을 만나다>는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아주 도전적인 작품이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사업 ‘2017 VR 콘텐츠 프런티어 프로젝트’의 선정작으로서, 세계 최초로 4DX와 VR, 영화 세 분야를 접목한 선례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VR 콘텐츠 개발사 이브이알스튜디오는 영화를, 영화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는 VR 콘텐츠를 이해해가며 접점을 찾아가고 그 결과물이 CJ CGV 4DX관에서 상영된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영화를 연출한 구범석 감독과 석재승 바른손이앤에이 프로듀서를 만나서, 만만찮았지만 욕심이 났던 제작 과정에 대해 들었다.

대중적이고 보편적으로, 청춘 로맨스!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에 비해 장르가 소박해 보일 수도 있겠다. <기억을 만나다>는 뮤지션 지망생 우진(김정현)과 배우 지망생 연수(서예지)의 사랑을 담은 청춘 로맨스다. 영화를 연출한 구범석 감독은 개발자 입장에서 느끼는 VR의 가장 큰 강점이 ‘교감’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고 설명한다. “VR을 제작하거나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액션, 어드벤처, 호러 등 현실에서 보기 힘들 수 있는 것을 먼저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에겐 가상의 캐릭터와 교감할 수 있다는 느낌이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고, 그래서 로맨스 장르를 선택했다.” 또한 VR 콘텐츠가 너무 마니악한 시장에서만 알려진 것 같아서 보다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정서로 첫 번째 사업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이 시나리오는 석재승 프로듀서가 원래 일반 2D 단편영화를 염두에 두고 예전에 써둔 것이다. 프로젝트를 위한 스토리를 찾는 과정에서 석재승 프로듀서의 시나리오 역시 후보에 올랐고, 구범석 감독이 직접 마음에 드는 작품을 무기명으로 고른 결과였다. “캐릭터들이 너무 좋았다. 관객이라면 보고 싶은 인물들이었다. 이 작품을 고르고 나니, 갑자기 석재승 프로듀서의 얼굴빛이 안좋아지더라. (웃음)” 연기과 학생인 연수의 캐릭터는 실제 연극영화과 출신이었던 석재승 프로듀서의 대학 시절 경험 역시 녹아든 결과라고 한다.

탁 트인 공간이어야 하는 이유

“VR 컨퍼런스에 가면 대부분의 작품이 밀폐된 공간을 배경으로 하더라. 연출자의 통제가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답답했다.” 석재승 프로듀서의 아쉬움은 VR 콘텐츠 개발사가 영화사와 함께 작업하면서 해소됐다. 탁 트인 야외로 나가, 통제가 되면서 주객이 전도되지 않는 선에서 신 안에서 재미도 줄 수 있는 공간을 찾는 데 공을 들인 것이다. 그 결과 대학 캠퍼스, 망원동 카페, 옥탑방 등이 주요 공간으로 등장하고, 주인공들의 방이 우주 공간 위로 떠오르는 판타지적 장면도 삽입됐다. 무엇보다 이들 로케이션이 잘 이어지는 것이 관건이었다. 구범석 감독은 “<기억을 만나다>의 핵심은 설계였다”고 설명한다. “컷과 컷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월드와 월드가 이어지는 것이 VR이다. 관객의 인지 부조화가 일어나지 않으려면 앵글과 모든 사물의 위치, 인물의 동선, 공간 전체가 합에 의해 잘 설계되어야 한다.” 콘티 작업 단계에서 카메라 위치부터 동선, 편집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업을 논의해둔 것은 이 때문이다. 아무리 사전에 준비를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돌발상황은 발생했다. 날아가는 새, 구름의 흐름, 온갖 외부의 소리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옥탑방 장면의 경우 기대만큼 하늘이 맑지 않아서 CG로 다시 하늘을 만들었다.

프리(pre) 비주얼 작업의 중요성

“일반적인 촬영감독의 역할을 내가 할 수밖에 없었다.”(구범석 감독) 일반 2D영화는 사각 프레임 안에서 촬영을 고민하지만, VR영화는 360도 공간 안에서 카메라의 높이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감독이 직접 판단해야 한다. 현장이 완벽하게 통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촬영 방식을 바꾸기도 어렵다. 때문에 모든 로케이션 헌팅을 촬영 전에 끝낸 후, 감독·제작부·연출부·미술감독이 함께 현장을 찾아 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토대로 특별한 테스트를 거쳤다. 바로 실시간 게임 엔진을 활용한 ‘프리 비주얼’ 작업이다. 편집까지 염두에 둔 콘티 작업을 마치고, 모션캡처 배우가 그에 맞춰서 실제 대사를 하며 연기한 모습을 3D캐릭터에 넣은 후, 360도 공간에서 카메라로 찍는 상황을 미리 영상화했다.

감각과 시야를 확장한다, 어깨를 돌릴 정도로

“VR에서는 카메라의 무빙이 존재하지 않는다. 관객 스스로가 카메라가 되어야 한다.” 구범석 감독의 말처럼, VR은 관객이 움직이는 만큼 보이는 장르다. 때문에 대다수의 VR 콘텐츠가 360도 어디를 봐도 시각 정보가 풍부한 특성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VR이면서 ‘극장 의자에 앉아서’관람해야 하는 <기억을 만나다>는 조금 다른 접근을 시도했다. “어깨 이상을 돌리지 않을 만큼의 시야각”(구범석 감독)을 염두에 두고 작업한 것이다. VR을 처음 접하는 관객도 있을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다. “일반 관객의 안정적인 소프트랜딩이 필요했다. 일반 2D 상업영화의 정서와 드라마투르기를 그대로 갖고 오면서, VR의 표현방식으로 감각과 시야를 확장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했다. 시야각 밖의 영상은 플러스 알파의 개념인 것이지, 이쪽을 위한 안배는 하지 않는 것이다.”(석재승 프로듀서) 하지만 시야각을 벗어난 공간을 공들여 찍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구범석 감독은 “어떤 분들은 실제로 찍지 않고 영상으로 대체하기도 하는데, 창작자로서의 자존심이 있었다. 아마 영화를 보는 동안 다른 곳을 보면 무언가가 다 그곳을 채우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령 우진이 물속으로 침전하는 장면은 오로지 우진과 그의 감정에 집중된 것이지만, 어느 쪽을 보아도 바다의 디테일이 구현되어 있다. 4DX 효과가 너무 많이 들어가면 이야기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다는 생각에 4DX 효과 역시 점점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가령 우진이 버스킹하는 장면에서는 원래 의자가 여러 번 흔들렸으나 지금은 한번 흔들리는 것으로 수정됐다.

위 아래 위 위 아래, 시선의 움직임

<기억을 만나다>를 보는 도중 관객은 자연스럽게 시선을 움직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고개를 살짝 돌려야만 주인공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 있기 때문이다. 전화 통화를 하던 두 사람의 방이 함께 우주 속을 유영하는 판타지적인 장면 역시 우진의 방은 정면에, 연수의 방은 살짝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관객의 시선 이동을 유도하는 장면에서는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기존 영화에서 그렇게 컷이 길어지면 자칫 지루해질 수 있지만 VR 콘텐츠이기 때문에 가능한 연출이었다.”(구범석 감독) 관객의 시선을 이동시키는 대신 과감한 컷 편집을 하는 경우도 있다. 가령 망원동 카페에서 우진이 버스킹을 하는 장면은 카메라의 시점이 바뀌어버린다. “원래 VR에서는 카메라를 갑자기 180도 돌리면 관객이 인지 부조화를 겪을 수 있지만, 아예 컷을 하고 다른 이벤트를 보여주면 오히려 관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2D 문법과 VR 문법이 만날 수 있는 지점을 찾은 것이다.”(구범석 감독)

연극적인 연출의 효과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러 가도 여전히 피사체에게 느껴지는 거리감이 있다. 그 거리를 좁히고 싶었다. 이야기의 기교가 아닌 사람의 감정이 전이될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왔을 때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기억을 만나다>에서 유독 연극적인 느낌이 가미된 연출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구범석 감독 개인이 품고 있던 갈증이기도 했다. 체험적 성격이 강한 VR에서, 관객은 보다 가까운 곳에서 배우를 감상하는 경험을 할 수 있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전지전능한 앵글은 실제 연극 관객에게 거의 불가능한 각도다. 동시에 연극적 연출은 시각적 피로도를 줄이기 위한 장치이기도 했다. 관객의 시선을 한데 집중시킴으로써 시각정보가 너무 많아지는 것을 방지하고, 중간중간 등장하는 판타지적 연출도 급작스럽지 않게 만든다. “기계를 통해서 피사체를 볼 경우 거리가 달라져도 초점이 하나다. 관객의 피로를 적재적소에서 풀어주면서 38분 분량의 영화를 이끌고 가야 했다.”(구범석 감독)

극대화된 클로즈업 효과

다중 카메라 리그(rig)
노키아 오조(OZO)

<기억을 만나다>는 분량은 짧지만 주로 사용된 카메라만 6대였다. 카메라를 직접 제작해서 쓰기도 했다. “용도에 따라 특화된 장비가 있었고, 각각 카메라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함”(구범석 감독)이었다. 가령 리코 세타(RICOH THETA)나 인스타360 프로(Insta360 Pro)는 사전에 로케이션 헌팅을 다닐 때 주로 썼고, 소니 A7은 가볍게 스테레오 영상을 테스트할 때, 삼성 360 라운드(360 Round)는 타임 랩스나 현장을 스케치할 때, 레드 드래곤(RED DRAGON)은 수중 장면을 촬영할 때 사용했다. 동그란 구 모양의 노키아 오조(OZO)는 공간과 동선을 확인하며 실시간으로 앵글을 체크하는 데 특화되어 있었다. 또한 스테레오 영상을 얻어내기 위해 기본적으로 여러 대의 카메라를 붙이는 리그를 만들었다. 360도의 영상을 얻어내야 하기 때문에 이들 카메라는 피사체에 더 가까이 다가갈 때 카메라 자체가 움직여야 한다. 때문에 관객 스스로도 더 가깝게 느끼게 되고, 클로즈업 기법이 주는 정서적 힘도 더 커진다. 극중 카메라와 피사체 사이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마지막의 어떤 장면을 두고 석재승 프로듀서는 “마지막 한방을 위해 안 쓰고 아꼈다”고 표현했다. “실제로 미리 영상을 본 사람들은 배우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하더라. 이런 게 바로 VR이 가진 강점이 될 것 같다.”(석재승 프로듀서)

사진 김일권 스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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