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일병 구하기>
Saving Private Ryan /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 1998년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전쟁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일례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후의 거의 모든 전쟁영화가 현장감을 담아낸다는 이유로 핸드헬드 촬영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채도를 한껏 낮춘 푸른 색감, 사지가 날아간 참혹한 순간의 무력함을 조용히 보여주는 카메라 등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연상시키는 요소들이다.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벌어진 미국과 소말리아간의 전투를 다룬 <블랙 호크 다운>(2001)부터 베트남전을 다룬 <위 워 솔저스>(2002), 과거의 십자군전쟁을 다룬 <킹덤 오브 헤븐>(2005), 심지어 <반지의 제왕> 시리즈 같은 판타지물에서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조각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2003)나 장훈 감독의 <고지전>(2011)이 특유의 핸드헬드 촬영은 물론 신체 훼손의 결과를 보여주며 전쟁의 참혹함을 그리는 스타일을 받아들였다. 2010년대에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여전히 중요한 레퍼런스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덩케르크>(2017)를 준비하면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게 직접 도움을 요청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게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35mm필름을 빌려와 교과서로 삼은 그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전쟁영화로서가 아니라 서스펜스 스릴러로서 봤다”고 전하며 이 영화가 더 많은 작품에 영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보이지 않는 적 그리고 관객이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서스펜스 언어로 만들어진 긴장감을 갖고 있었다. 그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했던 가장 빛나는 지점은 바로 호러 언어의 사용이었다.”
<글로리아>
Gloria / 감독 존 카사베츠 / 1980년
하루아침에 가족이 마피아에게 몰살당했다. 홀로 살아남은 6살 남자아이 필을 우연히 맡게 된 글로리아 스웬슨(지나 롤랜즈)은 문제가 된 마피아 장부 그리고 필과 함께 도주한다. 도입부에서 소년의 엄마가 먼저 등장하고, 그가 죽은 후 “나는 아이들이 싫다”던 옆집에 사는 글로리아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는 점에서 주인공의 행동을 유사 모성애로 해석할 여지도 넘친다. 하지만 <선셋대로>(1950)에서 광기 어린 무성영화 시대 배우 캐릭터를 인상적으로 연기한 글로리아 스완슨을 명백히 참고한 글로리아 스웬슨은 그리 단순하게만 해석될 인물이 아니다. 언더 아이라인을 진하게 그리고, 하이힐에 스커트를 입은 그는 식당에서 마주친 마피아들에게 먼저 총을 겨누고 위기상황에서 영민하게 대처한다. 처음에는 “내가 남자다. 아줌마가 아니라 내가 남자니까 내 마음대로 한다”던 철부지 필은 나중에는 그가 “터프하다. 아니, 터프한 게 아니라 아주 강하다”라며 “당신은 나의 엄마이자 나의 여자친구”라고 고백한다. 글로리아는 페미니즘 열풍이 분 미국의 1970년대를 지나 마피아영화에 등장한 ‘팜므파탈’이 아닌 여성이다. <글로리아>의 의미를 생각했을 때 굳이 또 성전환을 시킨 의도 자체가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으나 뤽 베송의 <레옹>(1994)은 <글로리아>를 영리하게 모티브 삼아 흥행한 작품이다.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1994)에서 노란 머리를 한 임청하의 캐릭터도 그에 대한 오마주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2005)가 <글로리아>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졌고, 최근에는 조현훈 감독의 <꿈의 제인>(2016)에서 극중 제인의 캐릭터가 이 작품에서 힌트를 받았다.
<악의 손길>
Touch of Evil / 감독 오슨 웰스 / 1958년
오슨 웰스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이견 없이 <시민 케인>이겠지만, 가장 많이 인용되고 회자되는 장면은 <악의 손길>에 있다. 멕시코의 마약 단속 책임자 마크 바르가스(찰턴 헤스턴)가 자동차 폭발 사고를 목격하기까지 3분이 넘는 오프닝 장면을 크레인을 이용해 한번에 찍었다. 로버트 알트먼 감독은 할리우드 영화산업을 배경으로 한 <플레이어>(1992)의 오프닝에서 <악의 손길>을 대사로 등장시켜 존경을 표했고, 자신 역시 8분이 넘는 롱테이크 오프닝 신을 찍었다. 샘 멘더스 감독은 최근 <007 스펙터>(2015)의 오프닝이 <악의 손길>에 바치는 오마주였다고 언급했다. 그가 <아메리칸 시네마토그래퍼>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은 여전히 롱테이크가 줄 수 있는 힘을 상기시킨다. “단 하나의 테이크는 관객에게 이것이 실제 시간대로 흘러간다고 말한다. 당신은 제임스 본드와 함께 여행을 하게 될 테니, 여기에 집중하라고 말이다. 난 그 느낌을 사랑한다.”
<무간도>
無間道 /감독 맥조휘, 유위강 / 2002년
형사는 조폭을 연기하고 조폭은 형사를 연기한다. 경찰 기록이 삭제된 가짜 조폭은 경찰에게도 쫓기고 깡패에게도 맞는 고생스러운 생활을 하고, 경찰 행세를 하는 조폭은 곧 결혼하게 될 사랑하는 연인에게도 거짓말을 해야 한다. 그 시간이 지난하게 이어지자 자신이 형사인지 조폭인지 알 수 없는 데 이르렀다. 정체성 혼란을 겪는 언더커버 이야기를 근사하게 풀어낸 <무간도> 시리즈는 홍콩 누아르의 재전성기를 이끈 동시에, 국적 불문하고 어디서나 잘 통하는 스토리가 있음을 증명해냈다. 동서양 각국에서 연출 스타일이나 특정 장면에서 영향을 받는 수준을 넘어서서 아예 <무간도> 자체를 흡수하고자 하는 창작자들이 줄을 지었다. 할리우드에서는 마틴 스코시즈 감독이 <디파티드>(2007)로, 일본에서는 드라마 <더블 페이스>(2012)가 <무간도>의 아이디어를 각자의 나라에 이식해보았다. 한국에서는 조폭이 된 형사의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춘, <무간도>의 영향을 받았다고 박훈정 감독 스스로도 공공연하게 밝힌 <신세계>가 대표적이다. 경찰 기록이 삭제되어 경찰 신분을 증명해줄 수 있는 사람이 극소수밖에 남지 않았다거나, 아버지처럼 따르던 상사가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전개 등 디테일한 부분에서도 닮은 점이 많다. 사실 한국에서는 비슷한 작품이 너무 자주 나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만큼 <무간도>는 영화 안팎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용되는 레퍼런스가 됐다. JTBC <무정도시>(2013)는 <무간도>와 상당히 비슷한 설정을 안고 있지만 무엇이 다른지를 강조하려던 드라마였다. 최근에는 뮤지컬 제작사 신스웨이브가 <무간도> 1편의 제작 권리를 확보해 제작에 착수했다.
<스탠 바이 미>
Stand by Me / 감독 롭 라이너 / 1986년
<스탠 바이 미>는 네 소년이 주인공이지만 도처에 죽음의 이미지가 도사리고 있는 이상한 성장물이다. 시작부터가 변호사가 된 크리스(리버 피닉스)의 허망한 죽음이다. 아이들의 고민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잘난 형 대신 자신이 죽었어야 한다고 자책하거나 베트남전 이후 정신이 이상해진 아빠를 둬서 오븐에 귀가 탈 뻔한 일이 있는 수준이다. 또래 소녀와의 흔한 로맨스 대신 동성애적 뉘앙스가 자리하기도 한다. 각자 어둠이 있는 아이들은 보물이 아니라 시체를 찾으러 모험을 떠나고, 연못에서 만난 거머리는 고디(윌 휘턴)의 성기까지 물어뜯어 그를 기절시키고, 그와 크리스의 관계는 어쩐지 다른 친구들보다는 좀더 깊어 보인다. 기차에 치여 죽은 소년의 시체를 굳이 보여주는 이 영화를 과연 아름다운 성장담으로만 볼 수 있을까. 이러한 <스탠 바이 미>가 흑인 차별을 다룬 영화 <보이즈 앤 후드>(1991)의 레퍼런스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존 싱글턴 감독에게 <스탠 바이 미>는 “대학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가장 좋아하는 영화”였다. 철로를 따라 걸어가 시체를 보러 가는 장면과 페이드아웃되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스탠 바이 미>에 대한 오마주를 바쳤다. 또한 <스탠 바이 미>는 많은 아역배우들에게 중요한 교과서이기도 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는 오디션을 보러온 배우들에게 <스탠 바이 미>의 한 장면을 연기해볼 것을 권했고, <가려진 시간>(2016)의 엄태화 감독은 “아이들은 자신의 세계를 객관적으로 보기가 힘든데, 그런 영화들을 보면 쉽게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며 아역배우들에게 이 작품을 보여줬다.
<구니스>
The Goonies / 감독 리처드 도너 / 1985년
빚을 갚지 못하면 집이 철거당할 위기에 처한 아이들이 다락방에서 보물 지도를 발견하고 모험을 결심한다. 탐욕스러운 프러텔리스 일당 때문에 위기도 겪지만 결국 마을을 구해낸다. <구니스>는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80년대 어드벤처물 중 대중적으로 가장 크게 성공한 작품이다. <슈퍼에이트>(2011)부터 <그것>(2017)에 이르기까지 최근 다시 부활한 이 장르가 의도적으로 복고적 정서를 불어넣을 때 가장 많은 관객이 떠올릴 법하고 제작진도 계산에 넣을 만하다는 의미다. 특히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는 아예 <구니스>에서 천식을 앓는 마이키를 연기했던 숀 애스틴을 주요 배역으로 캐스팅했다. 한편 청크(제프 코언)와 안면 장애가 있는 슬로스가 초콜릿을 통해 가까워지는 유명한 장면은 <업>(2009) 등에서 꾸준히 변주되어왔다.
<뜨거운 것이 좋아>
Some Like It Hot / 감독 빌리 와일더 / 1959년
쫓기는 신세가 된 제리(잭 레먼)와 조(토니 커티스)는 여성만 받아주는 악단에 여장을 하고 들어가기로 한다. 이곳에서 조는 백만장자와의 사랑을 꿈꾸는 싱어 슈가(마릴린 먼로)에게 첫눈에 반하고, 백만장자 ‘남자’ 필딩은 엉뚱하게도 제리에게 반한다. 이후 등장한 여장 코미디는 모두 <뜨거운 것이 좋아>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 가장 노골적인 패러디가 등장하는 작품은 키넌 아이보리 웨이언스의 <화이트 칙스>. 여장을 한 마커스(마론 웨이언스)가 자신에게 반한 남자와 시간을 보내며 동료의 시간을 벌어줄 때의 코미디 등은 모두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 원본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최동훈 감독을 비롯한 영화인들이 빌리 와일더 특유의 코미디 감각과 태도를 닮고 싶다고 언급한 바가 있는데, 이 영화의 엔딩은 그 완벽한 예다. 작품 전반에 냉소가 흐르지만 어떤 대사 하나로 모두에게 이로운 결론이 나는 유쾌한 마무리가 이보다 세련될 수 없다.
<히트>
Heat / 감독 마이클 만 / 1995년
닐 맥컬리(로버트 드니로)는 완벽한 기술을 가진 범죄자다. 여유롭게 앰뷸런스를 훔친 그는 동료들과 우편 발송 차량을 습격해 무기명 채권 160만달러를 강탈한다. LA 경찰국 강력계 수사반장인 빈센트 한나(알 파치노)는 지척에 고속도로가 둘인 ‘명당’에서 죄질까지 미리 계산한 솜씨에 감탄한다. <히트>는 스토리보다 캐릭터의 설정이 만들어낼 수 있는 특정 장면을 끝내주게 보여주는 게 중요한 작품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다크 나이트>(2008)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배우 및 스탭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줬고, 초반의 절도 장면을 거의 숏단위로 오마주하며 <히트>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 최근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주최로 열린 <히트>의 4K DCP 복원판 상영회에서 진행을 맡을 만큼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유능한 범죄자들이 은행을 터는 장면으로 오프닝을 채운 또 다른 작품 <베이비 드라이버>(2017)도 <히트>의 영향을 받았다. 에드거 라이트 감독은 “<히트>는 <저수지의 개들>과 <포인트 브레이크>보다 늦게 도착했지만, 관객이 약탈 시퀀스에서 기대하는 것을 전부 바꾸어놓았다”고 말했다.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All the President’s Men / 감독 앨런 J. 파큘라 / 1976년
최근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더 포스트>(2017)가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의 프리퀄 같다고 느낀 관객이 많을 것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암시하는 마지막 장면은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의 오프닝과 거의 똑같이 찍혔기 때문이다.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이끌어냈던 워터게이트 사건을 소재로 한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은 그만큼 관객에게 오래 기억되고, 후대의 언론 영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포트라이트>(2015)의 토머스 매카시 감독 역시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은 그에게 영향을 준 시금석 같은 영화 중 하나였으며, 마치 염색체를 공유한 것처럼 촬영이 유사한 부분들이 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일명 ‘언론 영화’에만 영향을 준 것은 아니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을 10번 넘게 봤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국영화다”라며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은 사회정치적이면서 재미있는 영화의 좋은 예다. 심각한 주제를, 재미있게 만드는 데 귀감이 되어 <에린 브로코비치>(2000)와 <트래픽>(2000)을 만들 때 특히 많이 봤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 역시 <조디악>에 가장 영향을 준 작품으로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을 꼽았다. 정의를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범인을 쫓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기자 정신도 유사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보가 넘쳐나는 영화를 만들어도 괜찮다는 믿음이었다.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은 쉬운 소비를 위한 간소화 없이도 실화를 상세하게 기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조디악>은 날짜, 범죄, 장소, 증거 등 정보가 넘쳐난다. 관객이 이런 정보를 충분히 따라오며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고 믿었다.”
<도니 브래스코>
Donnie Brasco / 감독 마이크 뉴웰 / 1997년
당시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그림이었을 것이다. 뉴욕 배경의 마피아영화인데 영국의 워킹타이틀 영화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을 연출한 마이크 뉴웰이 감독직을 맡았다. 하지만 이 범상치 않은 조합 덕분인지 <도니 브래스코>는 액션보다는 두 남자주인공의 감정 묘사가 돋보이는 대표적인 갱스터 무비가 됐다. 30년 넘게 조직에 충성하고도 승진을 못하는 레프티 루지에로(알 파치노)가 마피아 소탕을 위해 위장 잠입한 FBI 요원 도니 브래스코(조니 뎁)에게 가지는 감정은 웬만한 멜로영화보다 애틋하다. 그리고 이런 스타일은 장르영화에서 남자들의 우정을 강조할 때 두고두고 참고하는 작품이 됐다. <분노의 질주>(2001)의 제작진들은 언더커버로 잠입한 경찰 브라이언(폴 워커)과 폭주족 도미닉(빈 디젤)의 우정이 <도니 브래스코>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단순히 동료애나 우정이라고 표현하기에는 감정이 넘쳤던 <신세계>(2013)의 이자성(이정재)과 정청(황정민)의 관계 역시 박훈정 감독 스스로도 밝혔듯 <도니 브래스코>의 그림자가 명백히 자리한다.
<거미의 성>
蜘蛛の城 /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 1957년
<거미의 성>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각색한 많은 작품 중에서도 가장 개성 있고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와시즈(미후네 도시로)가 거미의 성 군주의 자리에 오른다는 악령의 예언이 실현되고, 결국 또 다른 예언 때문에 파멸한다는 고전적인 스토리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특히 성을 둘러싼 자욱한 안개의 이미지를 통해 영화이기에 가능한, 영화만의 순간을 만들었다. 이는 그를 존경해 마지않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1977)에서 지프차가 사막에서 질주하던 장면에서 오마주되기도 했다. 최근 웨스 앤더슨 감독의 신작이자 그가 만든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개들의 섬>(2018)은 아예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에 대한 레퍼런스가 담겨 있을 것이란 이야기가 일찍부터 알려졌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작품이 공개된 뒤 인터넷 문화 매거진 <벌처>는 “양복의 밝은 은색 빛과 쓰레기 섬의 다양한 어두운 회색이 충돌해서 마치 흑백영화처럼 보인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거미의 성>처럼 안개를 효과처럼 쓰고 있다”고 분석했다.
<톱 햇>
Top Hat / 감독 마크 샌드리치 / 1935년
서먹하던 남녀가 함께 춤을 추다가 로맨스가 진전되는 거의 모든 뮤지컬은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 커플에게 빚지고 있다. 물론 <사랑은 비를 타고>(1952)의 진 켈리도 위대한 배우지만, 그는 커플의 케미스트리를 돋보이게 하기보다는 홀로 빛나는 쪽에 가까웠다. 이 커플의 많은 걸작 중에서도 최근 <라라랜드>(2016)의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영화의 순간으로 <톱 햇>을 꼽은 바가 있다. 그는 영화의 로맨틱한 점보다는 ‘현실을 자각하는 슬픈 순간’을 강조하며 이를 <라라랜드>와 연결시켰다. “<Cheek to cheek>가 끝나고 나면 주변의 소음이 들리고, 진저 로저스의 표정이 바뀐다. 두 사람이 함께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이 장르는 음악에 의한 심플한 방법으로, 꿈과 현실 사이의 긴장감을 만들고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뮤지컬은 그것을 보여주기에 완벽한 장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