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창간 23주년을 함께 기념하기 위해 배우 정우성의 별책부록 <청춘의 초상, 정우성>을 발간했다. 1994년 <구미호>로 스크린에 데뷔한 정우성은 모두가 환호하는 청춘의 이미지에 안주하지 않은 채 진화와 성장을 거듭해온 대표 배우다. 그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 데뷔 24년이 지난 지금, 정상의 자리에서 꾸준히 도전을 멈추지 않는 배우 정우성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해줄 분들을 한자리에 모셨다. <비트>로부터 시작해 최근작 <아수라>까지, 정우성의 연기를 논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김성수 감독, 그리고 <아수라>를 함께한 한재덕 사나이픽처스 대표, 정우성과 함께한 작품은 <마담뺑덕> 한편이지만 꾸준히 영화적 우애를 나누고 있는 임필성 감독, 정우성이 가진 매력의 총합을 보여준 <강철비>의 양우석 감독, 이렇게 네명의 영화인들과 대담 자리를 마련했다. 이들 모두 정우성의 출연작 28편 중 분기점으로 자리한 작품을 함께한 영화 동료이자 정우성과 인간적인 우애를 나누고 있는 친구들이다. 대담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정우성이란 배우의 매력을 기술하는 감독, 제작자들의 찬사 멘트도 한층 심도 깊어졌다.
-창간 23주년을 함께 기념할 배우로 정우성을 선정했다. 대담에 참여할 감독들을 섭외하는데, 사실 이렇게 일사천리로 이루어진 것은 처음이었다. 모두가 짜맞춘 듯 “정우성 배우가 부르면 무조건 간다”고 답변을 하더라.
=김성수_ 일말의 머뭇거림이 우성씨한테 전달되면 안 되니까.(웃음)
=정우성_ 내가 속이 좀 좁다. (웃음)
-단 한분이 좀 머뭇거리셨다. 한재덕 대표가 처음에는 고사했다.
=한재덕_ 감독님들 대화하시는데 내가 낀다는 게 그렇더라. 하지만 정우성이라는 배우와 같이한다고 하면 무조건 뭐라도 해야지.
김성수_ 나도 감독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게 <씨네21>의 시작과 비슷하다. 그러고 보면 우성씨와 인연도 20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지켜보니, 우성씨가 평소 남에게 부탁을 하고 그러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우성씨가 뭔가 한다고 제안하면 항상 흔쾌히 하게 된다. 배우 정우성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특별함이 있다.
=임필성_ 정우성의 특별함에 대해 말하자면, 내가 더 특별함이 많다. (웃음) 이 자리에 같이 불러준 것 자체가 영광이고 감사하단 생각이 든다. “사랑합니다. 우성씨.” (웃음)
=양우석_ 나는 최근작 <강철비>(2017)에서 함께 작업했을 뿐이니까 김성수 감독님만큼의 히스토리는 없을 거다. 하지만 배우가 앞에 있어서 하는 얘기는 아니고, 그러고 보니 너무 정면에 있긴 하지만 (웃음) 나도 그 ‘특별함’이라는 것에 약간 보태서 얘기하자면, 작품을 같이하면서 정우성 배우를 존경하게 됐다는 표현이 적합한 것 같다.
정우성_ 다들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사실 감독님들과 함께 자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안하기도 하고, 또 기쁘기도 하더라. 내가 직접 ‘시간 좀 내주세요’ 하기에는 이게 참 민망한 일인데, 인생을 잘 살았는지 모두들 흔쾌히 응해주셨다는 말에 너무 뿌듯하더라. 뭣보다 <씨네21>은 데뷔 초창기부터 인터뷰도 많이 하고 표지도 여러 번 해서 낯설지가 않다. 23주년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아, 시간이 그만큼 흘렀구나’ 싶고 새삼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일순위의 배우 그리고 감독
-김성수 감독님은 정우성 이미지의 출발을 알린 <비트>(1997) 때 만나셨다. 이후 <태양은 없다>(1998), <무사>(2001)를 거쳐, 최근 <아수라>(2016)까지. 감독과 감독의 페르소나를 말한다면 두분의 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처음 두 사람의 시작점부터 거슬러 올라가보면 좋겠다.
김성수_ 데뷔 때를 돌아보면 당시 영화계에 워낙 이상하게 생긴 사람, 비현실적인 외모의 배우가 나타났다. 영화도 잘되고 인기를 얻었는데, 그걸 잘 누리지 못하더라. 단단한 껍질 안에서 나오지 않으려는 느낌이 있었다. 스스로 인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이 크던 때였다. 영화배우가 되려고 여기 왔고, 어떤 배우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을 길게 한 것 같다. 당시 <비트>를 하기 전부터 같이하고 싶어서 연락을 했는데 정우성씨가 그런 이유로 자기와 어울리지 않는 옷 같으면 하지 않겠다고 고사를 했다.
정우성_ 기준이 흐릿한 시기였다. <비트> 때는 나도 신인이니까. 김성수 감독님이 <비트> 전에 함께하자고 제안을 하셨는데 고사했다. 당시 <구미호>(1994)로 한국영화 현장을 처음 접하고, 공부를 했다. 이런 기술적인 부분들은 한국영화에서는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던 와중에 감독님 시나리오를 받고 보니 너무 세련된 거다. 그래서 두려웠던 것 같다. 배우로서 또 다른 실패를 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 당시 서울극장 옆 좁은 골목, 카페, 음식점 많은 골목이 있는데, 거기서 만났다. 어렵게 거절하는 자리였는데 감독님이 너무 흔쾌히 “그래요, 알았어요. 그럼 이제부터 술 마시죠. 말 놓을게 우성아” 그러셨다. 근데 그게 너무 고맙더라. 거절을 하는데도 그렇게 인간적으로 대해주시는 게.
김성수_ 그럼 어떻게 해. (일동 웃음)
정우성_ 이후 <비트>라는 작품을 다시 제안해주셨을 때 시나리오 읽기 전에 이미 마음속으로는 결정을 했다. 감독님과 작업을 해야겠다고. 감독님은 저에게 사회에서 아무것도 없을 때 처음으로 우정이라는 걸 나눠주신 분이다. 감독님이랑 작업하면서 영화도 배웠고 영화 작업에 대한 재미도 느꼈다. 감독님은 현장에서 나에게 형이고 선배이고 감독님이고, 나를 이끌어준 좋은 선배 역할을 해주셨다.
김성수_ <비트>를 하게 된 건, 그 역할이 자기와 닮아 있는 모습이 많아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웃사이더로 겉도는 민의 모습이 자기와 닮아 있다고 하더라. 그땐 나도 어리고 우성씨도 어리니까, 당시 우성씨가 실제로 갖고 있는 솔직한 모습, 청소년기에 방황하고 그랬던 이야기들을 같이하면서 민이라는 역할을 만들어갔던 과정이 좋았다. <비트>가 운 좋게 잘되고 나서는 ‘이 사람이랑 붙어가야겠다’ 생각해서 이후에 계속 같이 작업을 했다. (웃음)
임필성_ 나한테 그런 얘기를 하더라. 본인한테 김성수 감독이 일순위라고. 우성씨가 나보다 10년 이상 영화계 선배인데, 그런 작업 과정의 노하우라든지 깊이 있게 스탭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연예인들과는 달랐다. 현장에 최적화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김성수 감독님 현장에서 배운 게 아닐까 싶었다. 김성수 감독님 뒤에 정우성의 2순위 감독이 되는 게 우리 목표같다. (웃음)
한재덕_ 2위가 되는 감독! 누군지 궁금하다.
정우성_ 자연스럽게 김성수 감독님의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도 가장 즐거운 현장은 김성수 감독님 현장이다. 바람직한 감독형을 얘기한다면 후배들한테도 김성수 감독님의 현장을 얘기한다. 타고난 성향이 좀 비슷한 사람 같다.
양우석_ 나도 대세를 좀 따르겠다. <강철비>가 빚지고 있는 영화가 <아수라>이고 김성수 감독님이다. 감독님이 정우성, 곽도원의 좋은 케미를 <아수라>에서 이미 만들어주셨다. 현장에서 정우성 배우가 스탭부터 조·단역 배우까지 다 챙기는 인성도 김성수 감독님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아수라>를 해서 정 배우, 곽(도원) 배우가 친해졌고 그 열매를 내가 땄다는 생각이 든다. (웃음) 사석에서 꼭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나는 현장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사실 김성수 감독님도 그렇고 이 자리에 안 계신 김지운 감독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제작중인 <인랑>을 통해 두편 이상 작업을 함께하면서 두터운 신뢰를 통해 구축된 관계라면 임필성 감독님과의 만남은 좀 의외였다. 청춘물, 액션물, 멜로물에 특화된 배우의 이미지를 벗고 치정 스릴러인 <마담뺑덕>(2014)으로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임필성_ <마담뺑덕>은 우성씨가 결정 안 해주면 찍을 수가 없었다. 전작의 흥행 실패로 투자사는 당연히 내가 가져갈 수 있는 스코어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그때 내가 7년 동안 장편을 못 찍고 있을 때였는데, 우성씨와는 동네가 같아서 가끔 마주치곤 했다. 흥행이 안 되는 감독들은 위축되고 피해의식이 있다. 그런데 우성씨가 너무 흔쾌히 같이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자고 해주더라. 한번은 “감독님 나랑 맞는 것 같아서 한편 같이 할 것 같다”라고 하는데, 감독, 배우들이 예의상 그런 말을 많이 하지만 지켜지지는 않는다. 이후에 우성씨가 <마담뺑덕>을 하면서 그 얘기를 하더라. “제가 얘기했잖아요. 감독님이랑 같이 할 것 같다고.” 내가 영화계에서 불편해하는 것 중 하나가 ‘얘는 천만 감독, 쟤는 영화제 감독’ 그런 분류다. 우성씨는 그런 편가름이 없는 사람이다. 정우성 배우는 냉정하게 대본을 보고 본인과 코드가 맞는지와 작품에 도전할 수 있는 감독인지에 대해 열어놓고 생각하고 있더라.
정우성_ 임필성 감독님은 결이 섬세한 연출자다. 고민하는 결이 너무 섬세해서 저 섬세함의 깊이는 뭐지. 그 낯선 섬세함이 분명히 이 감독님의 장점이고 그게 언젠가 크게 빛을 발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진정한 배우는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마음에 이끌려가는 게 아니라 자신이 관객을 끌고 가고 싶은 욕구도 분명 있다. 그리고 이 감독은 어떻다 구분짓는 건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늘 새로운 작업에 있어서의 예상치 못했던 마술 같은 순간들이 있다. 그런 것들은 언제나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새삼스럽고 새롭게, 스스로에게 채찍질 할 수 있는 그런 시간도 되는 거고.
김성수_ 충무로에 숫자로서의 천만이 아니라 대단한 작품이 임감독한테서 나올 거라는 속설이 있다. (웃음) 마치 <씨네21> 별점처럼 임필성 감독이 우리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도 감독들한테는 중요하다. 우성씨도 그런 걸 보지 않았을까. 정우성을 20년 넘게 가까이서 보니까 우성씨가 배우로 괜찮은 지점이 용감하게 선택한다는 거더라. 이길 싸움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꼭 이 싸움을 해보고 싶다는 싸움을 계속 하는 거다. 1, 2년에 이렇게 한 작품씩 꼬박꼬박 내놓는 배우가 많지 않다. 우성씨는 스크린에서 자기 싸움을 해나가는 것 같다. 가령 <강철비>를 하면서 본인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거다. 사투리는 배우들한테 외국어를 습득하는 거와 똑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마담뺑덕>이나 <더 킹>(2016)을 보면 우성씨가 캐릭터에 접근해서 연기하는 패턴을 바꾸더라. 앞서 말한 것처럼 본인이 어떤 도전을 할 때 대중은 덜 호응할 수도 있다. 게다가 우성씨는 자기 무기(외모)가 있지 않나. 그런데 그 무기를 활용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의식이 있는 것 같다.
임필성_ <마담뺑덕>에서 후반부에 가면 눈이 멀고 파괴된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성씨한테 “정우성이라는 배우가 이렇게 무너진 걸 관객이 보고 싶어 할까?” 물었더니 더 심하게 가도 된다고 하더라. 같이 작업하다보면 그런 게 뭉클하다. 난 정우성이라는 배우가 작품마다 항상 어떤 기대지점 이상을 보여줬는데 외모 때문에 늘 역차별을 받는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나는 <똥개>(2003)에서의 연기가 상당히 뛰어나다고 본다. 그 이후에도 우성씨가 빛나는 연기를 했다. <더 킹>이나 <감시자들>(2013)은 심지어 주연이 아닌데도 선택했다. 우성씨가 <더 킹> 때 “이 영화는 조인성의 영화이기 때문에 충실히 백업을 하겠다”고 한 말이 기억난다. 스타의 위상이 있는데 우성씨는 내려놓고 배려할 줄 안다. <더 킹>도 보면 잔인하고 사악한 검사의 모습, 관객이 낯설어하는 모습을 연기한다. 스테이크를 엄청 사악하게 썰다가 점집에서 나오고, 자자의 <버스 안에서> 노래에 맞춰 춤추는 모습. 그런 게 쉽지 않다. 기존에 형성된 배우로서 본인의 이미지를 파괴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런 모습을 즐기는 것 같더라. 받아들여지든 그렇지 않든 나의 길을 가겠다는 뚝심이 있다.
정우성_ 아무것도 없는 애가 영화판에 들어와서 모든 걸 얻었다. <구미호> 현장 때부터 그랬는데,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게 재밌었다. 스탭들이 고생하는 걸 보면서 내가 이렇게 행복한데 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다 좋아야 할 텐데 하는 마음이 컸다. 어떻게 보면 순진한 생각이 들었다. 사실 덥석 시도했을 때 나 스스로가 그 과정을 이겨내야 하고, 관객에게 타협점을 주지 못해서 그게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게 성공했을 때 내가 고민했던 과정이 온전히 내 것이 되니까, 주변의 감독님들이 그 결과를 보고 칭찬을 해주면 그게 기운이 돼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다. 그러니 도전하는 게 나에게는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도전 자체가 중요하지 성공은 큰 의미가 아닌 것 같다. 배우로서 지금도 나는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고 그 과정 속에서 끊임없는 시도들이 나를 탄탄하게 하는 벽돌이 되는 것 같다.
양우석_ 정우성 배우를 보면서 내가 뭉클했던 부분이 배우로서의 책임감이다. 인성이 훌륭한 배우를 만나서 운이 좋았다, 가 끝이 아니라 그가 현장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자신이 현장의 전 스탭을 총괄해서 모범을 보여야 할 영화계 선배라고 인식한다. 회사(아티스트컴퍼니)를 차려서 동료 배우들과 함께 가는 것도 그런 연장선처럼 보인다. 지치지 않고 나아가는 모습이 동료들에게 큰 힘을 준다.
<아수라>는 존경하는 동료에게 건넨 헌사다
-양우석 감독은 비교적 최근에 정우성씨를 만났는데, 어떤 지점에서 정우성 배우를 평가했나. 특히 <강철비> 이전에 <변호인>(2013) 때부터 인연이 있었다고 알고 있다.
양우석_ 나는 드라마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2011)를 너무 좋게 봤다. 거기서의 말기암 환자의 인간적인 고뇌, 작은 것들을 찾아가는 모습이 좋았고 정우성 배우에게 매료됐던 것 같다. 직접 만난 건 <강철비> 이전에 <변호인> 시나리오를 개발할 때 만났는데, 그땐 이 영화가 아직 투자사도 안 붙고 어려울 때였다. 카페에서 미팅을 했는데 아주 평범하게 하고 왔더라. 이후에 같은 헬스클럽을 다녀서 몇번 봤는데, 거듭 보니 그때 나와 만날 때 역할에 맞게 일부러 평범하게 하고 온 거라는 걸 알겠더라. 물론 그래도 빛이 나긴 했지만. (웃음) 비록 <변호인>은 함께하지 못했지만 나 역시 두편의 영화를 정우성 배우와 함께할 생각을 하면서 어찌됐든 정우성 배우를 미남배우의 카테고리에 넣고 싶진 않다. 미남이라는 수식보다는 나는 몇 안 되는 스타배우라고 생각한다. 나의 전술적인 방법은 배우 정우성이 가진 스타성을 관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장치를 만들고 어떻게 디졸브할 거냐였다.
김성수_ <강철비>에서 철우의 모습을 나도 좋아하고, 관객의 호응도 컸다. 특히 마지막에 죽어갈 때, <강철비>란 영화가 우성씨랑 맞는 게 있다. 꾸밈없고 솔직하고, 따뜻하고. 자기를 위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런 사람의 마지막 순간의 눈물을 볼 때, 그런 장면을 연기할 때 정우성이 최고이지 싶다. 양 감독이 그걸 너무 잘 찍었다. 그때 모든 관객이 넘어간 것 같다. 그 순간의 진정성을, 그걸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관객이 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사실 영화감독들에게는 좋은 배우를 데려다가 흐릿한 윤곽 위에 어떤 모양을 만들어내는 게 자기만의 행복인데, 잘생긴 배우들은 너무 선이 뚜렷해서 아무리 색을 칠해도 선이 지워지지 않는다. 우성씨가 가지고 있는 근사함을 이용하면 다른 영화보다 앞에서 출발할 수 있는데, 그게 아닌 새로운 역할일 때 우성씨도 힘들어하고 감독들에게도 어려운 도전이다. 항상 시나리오를 쓰면 우성씨를 일순위로 생각하지만 우성씨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고민이 된다. 그래서 우성씨한테 거절도 여러 번 당했다. (웃음) 다들 오해하는 모양인데, 나도 우성씨한테 결재를 맡기가 쉽지 않다. (웃음) 우성씨는 자기의 배우로서의 큰 행보 안에서 작품을 결정해나가는데, 저 사람이 저런 역할을 하는 게 맞을까 하는 고민이 있다. 사실 <아수라> 역할을 건넬 때 우성씨가 “이거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냐”고 물었고, 나는 “우성씨가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어렵게 결정한 이후에 막상 시작하면 또 너무 열심히 해주니까. 아, 진짜 이래서 다들 정우성, 정우성 하는구나. 아마 이 자리에 없는 감독님들, 다른 충무로 사람들도 ‘저래서 정우성이구나’ 하는 생각들을 한번씩은 했을 거다.
임필성_ <마담뺑덕> 때도 우성씨가 아무리 일상성을 보여주려고 해도, 촬영하면서 현장에서 굉장히 신기했다고 해야 할까. 모니터를 보면 항상 신기했다. 정우성의 연기나 정우성의 피지컬, 얼굴을 지켜본다는 게. 가끔 우성씨한테도 얘기했는데, 그 영화에 미술이나 의상이나 조명을 안 해도 그냥 마스크가 풍기는 것 자체가 엘프더라. (웃음) 탐미주의를 추구하는 감독한테, 우성씨만큼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배우는 없다.
한재덕_ 다들 정의를 잘해주셔서 끼어들 틈이 없는데, 정말 말 그대로 용비어천가네. (웃음)
김성수_ 우성씨가 사실은 보통 사람으로 변장을 해도 변장술이 잘 안 먹힌다.
한재덕_ 잘생김이 핸디캡이 된 배우다. 감정이입이 잘 안 되는 거다. <강철비>에서 초반에 빵떡모자 같은 걸 쓰고 나오는데 북한사람이 다 굶는데 저렇게 키가 크고 잘생긴 게 말이 안 되지 않나. <아수라> 때도 저렇게 키 크고 잘생긴 형사가 어디 있냐고 내가 막 뭐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웃음)
김성수_ 내가 분장팀에 분장을 ‘한재덕처럼 해달라’고 했다. (일동 웃음) 우성씨도 그 딜레마는 해결이 안 될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우성씨가 앞으로도 그 장점은 가져갔으면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활용한 장르영화, 대중적 영화를 하다가, 또 그것과 싸우는 영화도 찍고.
한재덕_ 사실 이전까지 난 조금 평범하게 생긴 배우가 더 생명력이 오래간다고 생각해왔는데, <아수라>를 함께하면서 완전히 바뀌었다. <아수라>를 보면 굉장히 빛나는 연기가 많은데, 마지막에 한도경(정우성)이 박성배(황정민)에게 총을 쏘기 전에 기괴하게 웃는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그걸 현장에서 직접 봤다는 게, 영화하면서 훈장을 받은 느낌이다.
김성수_ 사실 우성씨가 생각하지 않은 뜻밖의 카드가 <아수라>였을 거다. 영화 결과가 좋질 않아 얘기하기가 뭣하지만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동료에 대한 내 선물, 우성씨한테 건넨 헌사같은 거였다. ‘나 당신을 위해서 이런 시나리오를 썼고 이걸 꼭 해달라’라는. <비트>에서 내가 20대의 정우성을 찍었다. 그 20대, 30대를 지나 <아수라>에서 이상하게 살고 있는 40대의 우성씨가 보여져서 좋았다. 기회가 되면 더 나이 먹은 우성씨에게 나는 어떤 시나리오를 건넬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내 영화도 나이를 먹고 나도 나이를 먹고, 우성씨도 나이를 먹었을 때 내가 어떤 걸 권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임필성_ 사적 활동도 언급할 만하다. 유엔난민홍보대사를 한다든지, 오지를 매니저도 없이 혼자 간다든지. 그런 걸 어디 가서 얘기하지도 않는다. 정말 고행이다. 영화계라는 곳이 내일을 예측할 수가 없는데 이런 점이 선배의 모습이고 존경해야 할 면이구나 싶다. JTBC <뉴스룸>과 KBS 뉴스에 나가 소신 발언을 하는 등 자연인의 모습으로 정우성은 지금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성수 감독님이 60대의 우성씨에게 시나리오를 건네실 때 감독님은 칠순이 되시겠지만, 보다 젊은 제가 더 많은 시나리오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동 웃음)
한재덕_ 생각하고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걸 실천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 후배 배우들에게도 그런 모습이 귀감이 된다고 생각한다. <강철비> 뒤풀이 때는 우성씨가 (조)인성씨를 끝까지 챙기더라. 레전드 스트라이커가 있는데 요즘 골 많이 넣는 선수가 있으면 인정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선배로서 우성씨가 그걸 하고 있다.
임필성_ (주)지훈이가 그러더라. ‘우성이 형처럼 잘생겼고 열심히 하는 형도 저렇게 하는데 제가 뭐라고 까불겠어요’라고.
한재덕_ 젊은 배우들한테는 이제 ‘우성이 형처럼’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롤모델이 된 거다. 오죽하면 해외에서도 인정하지 않나. 우성씨랑 <호우시절>을 같이 찍은 배우 고원원이랑 시남생(서극 감독의 부인이자 홍콩 전영공작실 대표)이 <아수라> 촬영장에 왔었다. 내가 배우 양조위를 캐스팅하고 싶다고 했더니, 시남생이 “내가 도와줄게. 너 정우성 친구잖아.” 정우성 친구면 자기 친구라고. 그때 정말 나 쓰러졌다. 정우성 얘기를 듣다가 눈물이 날 뻔했고, 지금은 어지럽네. 여기서 사라지고 싶다. (웃음) 그런데 다 영화와 관련된 일이지 않나. 나와 관련된 사람들이고. 나한테는 다 똑같은 하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김성수_ 유행가가 대단하지만 시절이 지나면 사라진다. 우성씨가 자기가 가진 장점만 팔아먹었으면 이렇게 오래 못 갔을 거다. 자기가 자기 장점을 즐기지 않았기 때문에 오래가고 있는 게 아닐까.
정우성이라는 이름이 넓혀간 세계
-배우로서의 모습뿐만 아니라 최근에 정우성의 보폭은 점차 넓어지고 있다. <나를 잊지 말아요> 출연 겸 제작자로도 참여하고 엔터테인먼트사 아티스트컴퍼니 대표로 경영에도 참여하고 있다. <소공녀>(2017)의 이솜, <바람 바람 바람>(2018)의 이엘이 소속사 배우라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을 보인다. 연극 <모럴 패밀리>는 연극을 본 정우성의 제작비 지원으로 재공연이 가능해진 경우다. 늘 밝히는 꿈인 연출 계획도 진행 중인 걸로 알고 있다.
한재덕_ 얼마 전 <바람 바람 바람> VIP 시사 후에 회사 소속사 배우가 있으니 우성씨가 회식 끝까지 있더라. 대표로서의 책임감이 보였다. 어찌됐건 자기 회사 배우에 대한 책임감으로 그렇게 하는 게 되게 피곤한 일인데. 사람이 적당히 하는 일이 없다. 제작자로 보자면 경쟁자이기도 하고. (웃음)
정우성_ 제작할 생각은 없었는데, 후배가 영화를 가지고 왔고, 먼저 영화 일을 한 선배가 후배에게 가진 걸 나눈다는 차원이었다.
임필성_ 이런 게 그냥 말로만이 아니다. 매니저하는 친구한테 물어봤다. 우성씨가 회사 매일 나오냐고. 진짜 매일 나온다더라. 그 와중에 본인이 쓰는 대본도 여럿 된다. 다 재밌더라. 시류를 따라가는 스토리가 아니다. 빨리 데뷔하라는 말을 그래서 내가 자주 한다. 할리우드에 보면 배우 출신 감독들이 영화를 잘 찍는다. 같이 영화를 만들어가는 필름메이커 입장에서도 기다려지는 감독이다.
한재덕_ 다 잘한다니 그건 반칙이다. 나도 기대한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우성씨가 영화 편수가 제일 많다. 경험이 많기 때문에 휘뚜루마뚜루 절대 안 찍을 거다.
정우성_ 아직은 막연하다. 사실은 한편을 해봐야 알 것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확실히 김성수 감독님 스타일일 것 같다.
한재덕_ 현장에서 못되지겠다는 뜻인가? (웃음)
정우성_ 리더십을 발휘하겠다는 거다. (웃음)
한재덕_ 빨리 영화 찍길 바란다. 프로듀서는 내가 할 테니.
임필성_ 일단은 연기도 기대된다. 코미디나 SF 장르, 실제 인물인데 선한 역, 이런 거는 배우 정우성에게 앞으로 보고 싶은 역할이다. 미남배우 브래드 피트가 <번 애프터 리딩>(2008)이나 <오션스> 시리즈 같은 데 나오면 웃기지 않나. 본인은 진지한데 관객은 웃긴, 그런 역할을 보고 싶다. 한편으로는 가장 영화적인 배우니 최고로 양식적인 모습도 보고 싶다. 우성씨가 등장했을 때 영화라는 느낌을 주거든. 옆집에 이런 사람이 살지 않잖아.
김성수_ 그 옆집에 이정재가 산다. (일동 웃음) 나는 우성씨의 지금도 좋은 것 같다. 정우성이라고 해서 꽃길만 걸어오지 않았다. 배우로서 좌절과 힘든 점도 있었지만 그걸 극복하고 여기까지 왔다는 점에서 박수를 주고 싶다.
양우석_ 나는 한 가지는 확실히 단언할 수 있다. 아직 정우성의 전성기는 오지 않았다. 아직도 계속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한재덕_ 정우성의 전성기는 오지 않았다. 이번 기사 제목을 쓰셨다. (웃음)
정우성_ 작업을 같이해도 ‘너를 어떻게 생각해 이런 말은 하기 힘든데, 이렇게 이야기를 들으니 쑥스럽다. 내 연기력이 부족해서 그렇지, 다 차고 넘치는 관찰이다. 오늘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긴장이 많이 됐는데, 다들 정말 감사하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