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챔피언> 권율 - 웃음 참기의 기술
2018-04-24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백종헌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생각했어요. 이건 권율 배우가 해야 한다고.” 이소영 사람엔터테인먼트 대표의 말이다. 배우 권율을 잘 아는 지인들은 <챔피언>의 진기가 그와 닮은 점이 많은 캐릭터임을 입을 모아 말한다. 팔씨름의 팔자도 모르면서 마크(마동석)의 팔뚝에 자신의 미래를 건 자칭 ‘스포츠 에이전트’이자 임기응변의 달인인 진기가 반듯하고 세련된 이미지의 배우 권율과 닮았다고? 아마 <챔피언>은 대중이 미처 알지 못했던 권율의 쾌활한 모습을 확장된 버전으로 목격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지난해 SBS 연기대상 월화드라마 우수상을 수상한 <귓속말>의 입체적인 악역 강정일, <최악의 하루>(2016)의 뻔뻔한 남자친구 현오 등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최선’의 폭을 확장하고자 하는 권율은 “코미디와 드라마, 애절함을 함께 표현해야 했던” <챔피언>의 진기가 “버라이어티한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인물”로 기억될 거라 말한다.

-축구 전문 기자, 해설가를 꿈꿨을 정도로 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스포츠영화에 대한 갈망이 있었을 법하다.

=맞다. 스포츠영화에 출연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선수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 그들이 어떤 노력과 마음으로 혹독한 훈련 과정을 이겨나가는지 알고 싶었는데, <챔피언>이 많은 도움이 됐다.

-‘팔씨름’도 스포츠 경기에 속한다는 사실이 생소하더라.

=나 역시 생소했다. TV 쇼 프로그램에서 팔씨름 챔피언으로 출연하는 분들을 보긴 했지만 팔씨름에도 리그나 프로팀이 있다는 생각은 못해봤으니까. 알고 보니 팔씨름은 연맹에 의해 굉장히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스포츠였다. 팔씨름에 우리가 상상할수도 없는 수많은 기술이 있다는 점도 알게 됐다. 힘이 압도적으로 차이나는 상대도 이길 수 있게 하는 다양한 기술이 존재하더라.

-영화에서 진기는 팔씨름 대회에 나서는 마크의 에이전트를 자처한다. ‘팔씨름 에이전트’의 역할은 뭔가.

=다른 스포츠 에이전트의 역할과 크게 다를 건 없다. 선수가 가장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며 경기를 펼칠 수 있게 판을 깔아주는 역할을 한달까. 그런 에이전트의 역할이 내 주변의 매니저 분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분들을 생각하며 연기했다.

-진기는 <챔피언>에서 가장 말이 많고 호들갑스러운 인물이다. 그의 말투를 어떻게 만들어갔나.

=캐릭터의 성격에 걸맞게 좀 가볍고 리드미컬한 말투를 구사하려 했다. 대사의 톤도 평소보다 높였다. 진기는 오랫동안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한 사람이기에 “컴 온~” 같은 영어 추임새를 자연스럽게 구사할 거라 생각했다. 마동석 선배님의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됐다. 미국 생활을 오래 하셨기에 교포들이 어떤 말투를 쓰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이 쓰는 말투의 억양이나 뉘앙스를 현장에서 많이 잡아주셨다.

-이렇게 본격적인 코믹 연기는 처음인 것 같다.

=코믹 연기가 정말 어렵더라. 마동석 선배님과 평소 친하다는 점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워낙 코믹한 장면에 대한 경험도 많고 호흡도 좋은 분이지만, 내가 마음껏 던져볼 수 있게 다 받아주셔서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함께 연기하다가 현장에서 웃음을 참기 어려운 순간들이 많았는데, 꾹 참고 그대로 살려서 오케이를 받아내곤 했다. 마크가 얼굴에 침을 맞는 장면이 있는데, 한의사 선생님이 놔 준 침이 자꾸만 눈가로 내려가는 거다. 마동석 선배님은 그걸 살려내더라. 눈 근육을 움찔움찔하시며. (웃음)

-얼마 전 우연히 출연한 작품들을 다시 돌려보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시작은 <너를 노린다>라는 SBS 단막극이었다. 집에서 인터넷으로 드라마를 보는데 추천 영상으로 내가 출연한 작품이 계속해서 뜨더라. 결국 2부작 드라마인 <너를 노린다>로 시작해서 드라마 <귓속말> 전편을 다 돌려 보았다. 그 당시에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니 그게 과연 최선이었을까 싶더라.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예전에는 0에서 100까지 끌어올렸으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0이 시작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100까지 미치지 못하더라도, 마이너스 40에서 시작해 90까지 갔다면 어땠을까. 최선의 폭을 그렇게 넓혀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전작을 돌려보며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최근 벌크업을 하고 있다고.

=작품을 하다보면 살이 많이 빠지는 편이다. 쉬는 동안 건강미를 갖추고 싶다는 생각에 운동을 시작했다.

-다음엔 액션영화에 출연하는 거 아닌가. (웃음) 마동석이 맡을 법한 박력 넘치는 캐릭터로.

=억지로 하면 탈난다. (웃음) 파격적 변신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음 작품에선 또 다른 권율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조금씩 준비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염두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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