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바다>가 개봉한 지 5일 만에 무려 20만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세월호가 침몰된 지 4년이 지났는데도, 세월호 정부합동 추모식이 처음으로 치러지고, 아이들의 분향소가 정리됐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이 세월호 사건에 관심이 많은 건 드러나야 할 진실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지영 감독이 연출하고, 프로젝트 부가 제작한 영화 <그날, 바다>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진실인 세월호의 침몰 원인을 사실만 가지고 과학적으로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다. 다큐멘터리로서 이 영화가 거둔 성취를 살펴보고, 지난 3년 반 동안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데이터와 씨름하며 이 프로젝트를 이끌어온 김지영 감독을 만났다.
배가 움직이면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배와 관련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선명, 선박 길이와 너비, 선종 및 안테나 위치 같은 배의 고유 정보는 물론이고, 선박 위치, 침로(배의 선수가 향하는 방향. 헤딩(Heading)이라고도 한다), 대지침로(배가 실제로 움직인 방향. 코스(Course)라고도 한다), 속력 같은 선박 운항 정보도 알 수 있다. 그 흔적을 ‘AIS’(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 선박자동식별시스템)라고 한다(침로는 배의 현재고, 대지침로는 배의 과거라 할 수 있다. 배가 어떤 경로로 움직였는지 정확히 알고 싶다면 대지침로를 보면 된다).
4년 전 침몰된 세월호 또한 AIS를 남겼다. 그런데 당시 정부는 침몰 직전, 그러니까 4월 16일 오전 8시48분37초부터 8시52분13초까지 3분36초 구간만 쏙 빼놓은 채 세월호의 항적도를 공개했다. 이후 누락된 구간의 AIS가 공개됐지만 “배의 속도와 기울기를 가리킨 숫자들이 (현실적으로) 나올 수 없는 데이터”였다. 정부가 거짓말을 했다. 누군가가 진짜 AIS를 추적했고, AIS를 해도 위에 그려본 결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세월호가 급격하게 우회전해 전복되기 전에 몇 차례 지그재그로 운항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왜 이 사실을 감췄을까. 세월호는 왜 지그재그로 움직였을까. 그리고 침몰한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프로젝트 부가 제작한 <그날, 바다>는 김지영 감독이 세월호의 진짜 AIS를 찾아내 과학적으로 분석한 뒤 침몰 원인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다(프로젝트 부는 2012년 대선 개표 부정 의혹을 다룬 <더 플랜>(감독 최진성)과 주진우 <시사IN> 기자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자금 저수지를 추적하는 <저수지 게임>(감독 최진성) 등 다큐멘터리 두편을 제작해 이미 개봉시켰다. <그날, 바다>의 원래 제목은 <인텐션>이었다.-편집자). 총 6개 챕터로 구성된 이 작품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제작진이 세월호의 AIS를 살펴보니 침몰 직전에 지그재그로 운항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침몰 원인이 정부 발표대로 단순사고였는지 의문을 던지며 시작된다(챕터1(단순 사고의 증거는 진짜일까?)). 사고 지점인 맹골수도 근처를 지나다가 세월호를 처음으로 발견한 유조선 둘라에이스호의 문예식 선장은 제작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세월호가 침몰 직전 급격히 (병풍도가 있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증언을 포함한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전한다.
영화는 ‘(정부가 발표한 대로) 사고 시점을 8시40~50분 전후로 확정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도 던진다(챕터2(4·16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발견한 진실), 챕터3(비밀을 푸는 열쇠)). 세월호 AIS를 살펴보면 배가 정상적인 속도로 운항하다가 8시30분쯤 이상증세를 보인다. 그쯤 특별 메시지가 세월호 AIS에 전달됐다. 특별 메시지가 전달되는 건 배가 정상적으로 운항되고 있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손지태 세월호 1등 기관사 또한 “8시26분쯤 배가 15도 넘게 한순간에 기울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손 기관사는 국정원 단독 수사를 받은 뒤 배의 이상 증후 시점을 기존의 8시26분에서 8시50분으로 말을 바꾸었다. 그가 바꾼 사고 시점은 정부가 발표한 내용과 일치한다. 어쨌거나 <그날, 바다>는 이런 근거로 세월호가 8시30분쯤부터 이미 정상 범주를 벗어난 운항을 했고, 8시40~50분 전후로 갑작스럽게 침몰했다는 정부 발표는 결코 사실이 아님을 밝힌다.
그러면서 이 영화는 4월 15일 밤 9시39분 세월호가 인천항에서 출항해 다음날 침몰 직전까지의 과정을 차례로 복기하며 배가 언제, 어떻게 이상 징후를 보였는지 보여준다(챕터4(인천에서 마지막 섬까지)). 앞에서 짧게 언급했듯이 배가 운항하는 과정에서 특별 메시지가 서너 차례 세월호에 전달됐는데 그때마다 배의 속력이 떨어지거나 배가 좌우로 기울어졌다. 4월 16일 새벽 1시50분쯤 특별 메시지가 왔을 때 세월호는 23노트 속력으로 가다가 갑자기 속력이 떨어졌다. 다음날 아침인 7시~7시30분 사이에도 특별 메시지가 출현했는데 그때는 배가 급격히 기울었다.
AIS라는 팩트와 생존자, 선원 등 관계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사실들을 쌓아올리는 가운데, 영화는 챕터5(마지막 퍼즐)와 챕터6(그날 우리는 진실을 목격했다)에 이르러 ‘배가 진짜 침몰한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세월호가 침몰 직전, 급격히 좌회전을 하면서 배가 왼쪽으로 기울어지는 지점을 두고 당시 진도 VTS(배가 오가는 것을 살피고 충돌, 좌초 등의 위험을 감지하는 24시간 관제센터)는 보고계통에 “(북위) 34도10분, (동경) 125도57분”이라고 세월호의 변침좌표를 전달했다. 하지만 세월호가 변침하는 과정을 지켜본 문예식 둘라에이스호 선장은 진도 VTS의 보고 내용을 듣고선 “(북위) 34도11.4분, (동경) 125도 57.3분”이라고 정보를 바로잡았다. 제작진은 세월호 AIS를 분석한 결과 세월호의 정확한 침몰 지점이 문예식 선장이 가리킨 좌표임을 사실로 확인했다. 세월호의 침몰 지점이 정부 발표와 다른 이유가 무엇일까. 누군가가 데이터를 조작했다면 누가 무슨 목적으로 조작했을까. 배가 급좌회전을 했는데 오른쪽이 아닌 왼쪽으로 기운 이유는 무엇일까(자동차 운전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운 관성의 법칙인데 좌회전을 하면 몸이 오른쪽으로 기운다). 배가 왼쪽으로 기울기 위해서는 배의 오른쪽에서 외력이 작용해야 하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외력의 정체는 무엇일까.
영화 <그날, 바다>는 철저히 사실을 검증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가설을 던진다. 그게 다큐멘터리로서 이 영화가 사실만으로 얻어낸 성취다. 세월호가 바다 아래로 가라앉은 지 4년이나 지났음에도 진실과 거짓이 여전히 혼재돼 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진실도 많다. 이제는 정부가 이 질문들에 대답을 내놓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