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뉴욕에서 영화 <원더스트럭>의 토드 헤인즈 감독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이 작품은 브라이언 셀즈닉의 동명 소설과 그의 각본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1970년대 소년 벤과 1920년대 소녀 로즈를 주인공으로 한 이 작품은 헤인즈 감독이 처음으로 연출한 어린이들을 위한 영화이기도 하다. 특히 두 캐릭터가 모두 청각장애인이고, 50년이란 시간 차를 교차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다른 작품보다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했다고 한다. 90년대 초 필자의 영화적 성향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던 헤인즈 감독에게 ‘뉴욕을 위한 러브레터’로 불리는 <원더스트럭>의 제작 과정에 대해 설레는 감정을 애써 참으며 들어봤다.
-아역배우들의 연기력이 대단하다. 모두 어떻게 찾았나.
=남자 아역배우들은 일반 오디션 과정으로 찾았지만, 청각장애인 로즈 역은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결국 유타주에 있는 한 장애인 학교에서 밀리(밀리센트 시먼스)를 찾았다. 밀리를 보는 순간 “찾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밀리는 내면에 자신만의 나침반이 있는 것 같더라.
-왜 로즈 역을 실제 청각장애인이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나.
=그 역할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청각장애인들과 작업하면서 다른 배우들과 스탭 모두 그들의 생활방식에 조금이라도 익숙해지고 그들을 이해하기 바랐다. 로즈 역 외에도 연극 무대 출신의 배우 6명도 청각장애인이다. 그들은 모두 장애인이 아닌 다른 역할을 한다.
-줄리언 무어와 또다시 작업하게 됐는데.
=브라이언(각본가 브라이언 셀즈닉)의 각본을 보면서 줄리언에게 꼭 어울리는 역할이라 생각했다. 자세히 말하면 <원더스트럭>에서 줄리언은 1인3역을 하는 셈이다. 물론 브라이언이 줄리언의 ‘빅 팬’인 영향도 있었지. (웃음) 그리고 그녀의 캐릭터 모두가 말을 하지 않는다.
-줄리언 무어가, 이젠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별다른 대화가 필요 없었다던데.
=그것도 사실이지만, 줄리언은 내가 디렉션을 줘야 할 필요가 없는 배우다. 어떤 배우는 자세한 연기 방향을 알려줘야 하지만 줄리언은 그런 타입이 아니다. 리허설하는 것도 싫어하거든. 준비를 모두 마치고, 실제 촬영까지 그 감정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내 연출 방식은 유연한 편이다. 배우마다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되도록 지지해주려 한다.
-대부분 작품의 각본까지 담당하는 편인데, 각본가가 있는 이 작품을 택한 이유는 뭔가.
=전작 2편 역시 다른 각본가가 있는 작품이었다. 모든 것을 혼자 하기엔 너무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마음에 든다면 다른 작가의 작품도 연출하고 싶어졌다. 이번 작품의 경우, 서로 다른 두 시대의 이야기를 동시에 들려주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도 생각했고.
-어린이들에게 특히 어떤 것을 말해주고 싶었는지.
=우선 시대적인 차이점을 표면적인 곳으로부터 시작해서 교차편집을 통해 동질성과 이질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20년대에는 부모들이 청각장애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몰랐다. 수화도 가르치지 않았고. 사회로부터 격리됐지. 70년대에는 사회적인 문제가 많았지만, 반면 청각장애인 교육 면에서는 진보적이었다.
-사운드트랙에 대해 말해줄 수 있나.
=대부분 곡들은 원작 소설과 각본에 명시돼 있었다. 데이비드 보위의 <Space Oddity> 역시. 멋진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영화와 어울릴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줄리언 무어의 70년대 캐릭터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음악이 너무 잘 맞았다. 에스터 필립스의 <All the Way Down>이란 곡도 벤이 버스터미널을 나오며 뉴욕과 첫 대면하는 순간을 잘 표현해줬다.
-벤 역의 오크스 페글리와 함께 소음제거 특수 헤드폰을 착용하고 뉴욕을 투어했다던데.
=물론 작품을 위해서였지만, 청각을 제외한 후 일상적이었던 많은 느낌이 새로웠다. 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햇살조차 날카롭게 기억에 남더라. 투어를 끝낸 후 헤드폰을 벗었을 때 모든 것이 회색으로 보였다. 벤의 경험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뉴욕 자연사박물관에서의 촬영은 어땠나.
=촬영시간이 한정돼 있어 어려웠다. 촬영기기를 박물관 내에 보관했는데, 촬영 때마다 움직이는 시간도 있지만 아역배우들과의 쵤영 시간도 한정돼 있어 더 힘들었다. 아역배우들은 하루 8∼9시간 이상 촬영이 불가하고, 하루 스케줄은 12∼14시간 촬영이거든. 매일 20년대와 70년대 촬영을 병행해야 했다. 상상이 가시는지? 영화 자체가 퍼즐 같은데, 프로덕션 면에서는 차원이 다른 퍼즐이었다. 진짜 영웅은 조감독이다. 나와 프로덕션팀 모두를 늘 안심시켜야 했으니까. (웃음) 여기에 날씨 변수까지 더해진다고 생각해봐라. 에러를 낼 시간적인 여유가 전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