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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풀2>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 - 고통이 커질수록 오락성도 높아진다
2018-05-10
글 : 김소미

<데드풀2>(2018)의 개봉을 앞두고 라이언 레이놀즈가 생애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저스트 프렌드>(2005) 같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유쾌하고 섹시한 아이콘인 동시에 액션과 범죄, 스릴러에도 친숙한 다재다능형 배우지만 그 어떤 라이언 레이놀즈도 <데드풀> 시리즈의 웨이드 윌슨에 대적하긴 어려워졌다. 데드풀은 복수와 순애보, 액션과 수다, 혹은 재생과 수다의 기막힌 멀티플레이를 자랑하는 B급 슈퍼히어로다. 카메라를 쳐다보며 관객에게 끊임없이 말을 거는 영웅에게 관객은 곧바로 열광했고, 덕분에 오리지널이 등장한 지 2년 만에 거침없이 더럽고 야한 농담의 귀재가 돌아왔다. 배우는 물론 제작과 각본에도 참여한 라이언 레이놀즈가 짧은 만남에도 불구하고 영화 바깥의 진지한 생각까지 아낌없이 들려줬다.

-전작의 성공에 더해 제작비가 조금 늘었고, 팬들의 기대치도 함께 높아졌다. 촬영 과정이 한결 수월해진 동시에 1편과의 차별화를 위해 제작자로서 더욱 고심한 지점도 있었을 것 같은데.

=팬들이 사랑하는 데드풀만의 미학, 특히 캐릭터의 즐거움이 생생하길 바랐다. 가능한 한 스펙터클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인물에 집중할 수 있는 영화가 되는 것이 목표였다. 조금 더 크고 다양해진 이야기 구조, 여름 시장을 노리는 영화에 필요한 일정치의 볼거리와 스케일을 위해 자연스럽게 제작비가 늘어난 정도일 뿐 여전히 <데드풀2>의 예산은 일반적인 대형 마블 영화의 절반 수준이다. 나는 이게 아주 멋진 일이라고 본다. 박스오피스 순위에 얽매이지 않고 사람들에게 고유한 매력을 어필할 수 있고, 보다 혁신적인 영화 제작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지 않나.

-2년 사이에 슈트는 좀더 편해졌나.

=그렇다. (웃음) 편안한 착용감을 위해 슈트가 업그레이드됐기 때문에 이제는 꽤 몸에 잘 맞는다. 물론 8월 중순의 날씨에 불타는 세트에서 슈트를 입고 있으면 마냥 좋을 리는 없다. (웃음) 조금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그럼에도 데드풀 슈트를 입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것에 매우 감사함을 느낀다. 이 일과 캐릭터를 사랑하는 만큼 날씨가 어떻든 매번 행복하게 슈트 속에 몸을 집어넣는다.

-엑스포스의 등장이 특히 팬들의 기대를 모은다. 촬영장 분위기도 전보다 훨씬 시끌벅적했을 텐데, 본격적인 팀플레이를 해본 소감은 어떤가. 특히 케이블(조시 브롤린)은 만만찮은 상대였겠다.

=엑스포스로 합류한 배우들이 모두 훌륭했던 건 물론이고, 모두 촬영 내용의 비밀을 지키는 데 열심이어서 재미있었다. 촬영 중에 트레일러 밖에서 배역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오! 안녕하세요? 저 <데드풀2>에 출연해요. 원작 만화에 나오는 아주 중요한 캐릭터랍니다”라고 하나 마나 한 말들을 어찌나 즐겁게 하던지. (일동 웃음) 그리고 조시 브롤린은 내게 진정한 ‘챔피언’이고 ‘레전드’다. 케이블에게 시간 여행 능력이 있는 것처럼, 조시 브롤린 또한 ‘불변’의 배우다. 무엇 하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법 없이 매사 노력형이고 근면 성실한 성격인데, 이 분야에서 누군가가 그렇게 꾸준히 뛰어난 기량을 유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는 하루에 4시간씩 매일 운동해서 11주 만에 완벽한 케이블의 몸으로 변신했다.

-<아토믹 블론드>(2017)를 만든 데이비드 레이치 감독이 합류해 액션 시퀀스가 더욱 리드미컬하고 화려해졌다. 준비 과정이나 현장에서 데드풀의 몸놀림에 구체적인 변화를 꾀한 지점이 있나.

=데이비드 레이치 감독은 액션 연출의 장인이다. 그에게 내 의견을 보태는 건 믹 재거에게 록에 관해 조언하는 것과 비슷한 거라고 생각했다. (웃음) 대부분의 경우 그의 구체적인 지시를 따랐고, 레이치 감독 또한 두 각본가가 시나리오에 기재한 것들을 중시하면서 자기만의 액션을 더했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데드풀2>를 만들면서 유독 팀플레이의 즐거움을 크게 느낀 부분이다. <데드풀>은 주류 영화가 그어놓은 안정적인 경계선을 최대한 밀어붙이고 건드리려 하는 영화인데, 레이치 감독은 액션에 있어서도 독창적인 방식으로 이를 성취했다.

-각본가들과 적극적으로 협업하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렛 리스와 폴 워닉, 두 각본가의 공이 크다. 나는 1편부터 각본에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특히 1편은 대부분 구두로 먼저 이야기를 나눈 뒤 시나리오로 옮겨 적는 식이었고, 그 과정에서 어떤 것이 데드풀다운 행동인지 편하게 의견을 보탤 수 있었다. <데드풀2>를 준비할 땐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1편의 경우 제작에 착수하기까지 11년의 긴 시간이 걸렸다) 이번엔 나도 노트북을 들었다. (웃음) 시나리오 3막이론에 의거해 각본가들과 서로 왔다갔다하며 시나리오를 주고받았다. 평소에도 필요하다면 내가 출연하는 영화에 아이디어를 보태려고 하는 편인데 <데드풀2>에서 각본의 공식 자격을 얻은 건, 앞서 말했듯 제작 과정이 짧았던 이유가 크다.

-<데드풀> 시리즈는 R등급 안티히어로 무비에 환호를 보내는 시대와 절묘하게 호흡하며 진가를 더욱 인정받는 작품이다. 당신의 배우 인생에서 <데드풀>은 현재 어떤 위치에 놓여 있나.

=1편의 개봉 후 <데드풀>의 출현이 일종의 문화적 현상처럼 받아들여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제작비를 회수하고 속편을 제작할 형편이 되기만을 바랐는데, 관객과 이토록 끈끈하게 연결될 줄 누가 알았겠나. 앞으로 내가 데드풀로부터 절대 달아날 수 없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데드풀과 그를 둘러싼 동시대 문화의 특성을 기꺼이 사랑하고 끌어안으려 한다. 물론 한편으론 다른 배역을 선택하는 데 약간의 어려움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한동안 데드풀이 내 삶을 삼킨 것 같다. 단순하게는 영화가 만들어지고, 세상 밖으로 나와 극장에 걸려 있는 몇주가 끝날 때까지의 긴 과정 동안 물리적으로 다른 무언가를 할 여유가 없기도 했다. 직업적인 면에서 <데드풀> 시리즈가 내 모든 걸 바꿔놓은 것은 분명하고, 나는 데드풀과 관련한 그 어떤 것도 거부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행복함을 즐기려 한다.

-기자간담회에서 스스로 데드풀 캐릭터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말하지 않았나. 당신 자신과 데드풀이 보다 공유하는 지점은 어떤 것들이 있나.

=‘무엇이 근본적으로 데드풀을 웃기게 만드는가’와 관련된 부분이다. 어렸을 때부터 고통을 유머로 여과시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있는 그대로 아프고 속상하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상처에 대해서 농담을 하는 것이 쉬웠다. 데드풀의 진정한 매력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에게 데드풀이 사랑스럽게 느껴진다면 아마도 그런 부분이 아닐까. 그는 사실 꽤 지난한 고통에 처한 인물이고, 겪어야 할 감정이나 사랑의 장애물도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원하는 것을 쉽게 갖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매우 심각해질 만한 순간에도 농담을 만들고 있는 남자가 데드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데드풀이 고통스러워질수록 영화의 오락성은 점점 높아진다. 어쩌면 나란 사람이 작동하는 방식도 이와 비슷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건강한 방식은 아닌 것 같지만. (웃음) 점점 더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소리내어 말하려는 노력을 통해 균형을 잡고 있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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