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칸국제영화제 개막식의 주인공, 케이트 블란쳇
2018-05-10
글 : 송경원
케이트 블란쳇.

71회 칸국제영화제의 개막식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 해도 케이트 블란쳇이었다. 8일 저녁 7시(현지시각)부터 1시간 가량 진행된 개막식 오프닝 행사의 마지막, 개막 선언을 위해 깜짝 게스트로 등장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굳이 케이트 블란쳇을 무대 가운데로 초청해 함께 개막을 선포했다. 이 장면은 올해 칸국제영화제 전반부를 장악할 상징적인 순간이라 할만하다. 올해 칸의 키워드를 하나만 꼽으라면 여성영화인에 대한 존중일 것이다.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범죄로 인해 촉발된 미투 운동은 칸에도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고, 이를 공고히 하기 위해 여성영화인의 권리를 위해 선봉에 서 왔던 케이트 블란쳇에게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맡겼다. 요청을 받은 케이트 블란쳇은 “성적, 인종적으로 평등하게 구성되길 바란다”는 조건을 걸었고 그 바람대로 7개국 출신의 다양성을 대표하는 심사위원이 꾸려졌다. 비록 경쟁부문에는 여성 감독이 3명(<걸스 온 더 선> 에바 위송 감독, <가버나움> 나딘 라바키 감독, <라자르 펠리체> 앨리스 로르와처 감독)밖에 초청되지 못했지만 이는 영화계의 구조적 불균형에 따른 결과다. 케이트 블란쳇은 “이들은 성별이 아닌 작품성으로 선정됐다. 우리는 그들을 여성이 아니라 감독으로 마주할 것이다. 영화제가 한순간에 바뀔 순 없다”며 굳이 이 점을 지적, 이제 시작임을 강조했다.

이 날 레드카펫에 4년 전 골든글로브시상식 때 입은 블랙 드레스를 입고 나온 것도 눈길을 끌었다. 환경보호를 위한 패션운동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선택한 의상 덕분에 케이트 블란쳇의 행동하는 지성이 더욱 빛나는 자리였다. 케이트 블란쳇은 8일 열린 심사위원 기자회견에서 “변화는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이뤄진다. 성차별과 다양성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 곧 변화에의 길”이라며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 할 수 있는 방식으로의 동참을 호소했다. 칸영화제 역시 이런 그의 행동에 화답하듯 케이트 블란첸을 위한 헌정 영상을 제작해 오프닝 행사에서 상영했다. 가히 공로상 수상 현장을 방불케 하는 존경과 헌사의 순간들이 이어졌지만 마치 원래 이 순간을 위해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아무런 위화감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케이트 블란쳇은 71회 칸국제영화제 개막의 주인공, 칸의 여신으로 거듭났다. 이전까지 ‘칸의 여신’이라는 수사 한 구석에 남성을 위해 아름답게 전시된 대상이란 뉘앙스가 깔려있었다면 올해는 견고한 남성 중심적 구조에 균열을 낼 빛나는 걸음, 그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만이 가득했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